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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8.12)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8.12)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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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Jane Frences de Chantal)
축일 8월 1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수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572-1641년
같은이름 방지가, 샹딸,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프란체스카, 후아나
성인 기본정보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Joanna Francisca de Chantal)은 1572년 1월 23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디종(Dijon)에서 귀족 가문의 둘째 딸로 태어나 18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가톨릭적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에게 폭넓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살 때에 크리스토프 드 샹탈(Christophe de Chantal) 남작과 결혼한 그녀는 충실한 아내이자 헌신적인 어머니요 검소하고 알뜰한 주부로서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城)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관례를 만들었고, 다른 성의 신심 활동을 도입해 소개하면서 자선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둘은 유아 때 사망하였다. 게다가 1601년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시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사는 몽틀롱(Monthelon)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손자들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할 수 없이 몽틀롱으로 가서 7년 동안 인내와 겸손의 덕을 실천하며 자녀교육에 힘쓰며 살았다.

   1604년 사순시기 동안 친정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디종을 방문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마침 그곳을 방문한 제네바(Geneva)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Franciscus Salesius, 1월 24일) 주교의 설교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아 그에게 영적 지도를 청하였다. 처음에 다소 망설이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결국 그녀의 간청을 받아들였고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 영적인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것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에게 순종할 것을 서약하였다. 디종의 가르멜회 수녀들과의 만남을 통해 큰 영향을 받은 그녀는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하길 원했으나 주교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의지에 순종하는 길과 겸손의 길로 그녀를 인도하고자 했다.

   1607년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그녀에게 영성적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드러났던 덕들을 따르고, 활동적으로는 노인들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헌신하는 수도 공동체를 세우려는 계획을 설명하였다. 이에 뜻을 같이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주교의 도움으로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한 후 안시(Annecy)로 떠났는데, 그곳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가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1610년 6월 6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안시 수도원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녀와 2명의 동료가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해 주교로부터 정식으로 회칙을 받았고, 이듬해에 그들 모두 수도 서원을 하고 그녀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회의 이름과 회헌은 여러 번 바뀌다가 마침내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공식 명칭으로 확정하였다. 이 수도회는 1612년 1월부터 병자방문을 시작해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이듬해 그녀는 시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후 더욱 영성적 성숙에 힘쓰며 수도회의 새로운 분원 설립에 주력하였다.

   1614년 리옹(Lyon)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면서는 많은 난관을 겪기도 했다. 리옹의 대주교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가 계획했던 수도원의 모습과는 달리 봉쇄 수도원의 형태를 강요했고, 수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결국 1618년 리옹 수도원은 리옹 대주교의 의도대로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인가를 받았다. 이런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을 급속히 확장해 나갔고 많은 여성이 입회하였다. 이러한 성공적인 확장은 육체적인 고행보다는 겸손과 온화함을 강조한 주교의 가르침과 그녀의 신중함과 헌신 덕분이었다. 1619년에 그녀는 파리(Paris) 분원을 설립하면서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 신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초기 정신과 활동 방향을 옹호했을 뿐 아니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가 선종한 후에 그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주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가 선종한 1622년 당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분원은 13개였는데,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하면서 그녀가 선종할 즈음에는 약 86개의 분원으로 성장하였다.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은 수도회 안팎으로 주어진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계속해서 분원을 설립하기 위해 거처를 옮겨 가며 생활하였다. 1627년 아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슬픔을 겪고, 1628년 흑사병으로 많은 수도자가 사망하자 다시 안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장상직을 역임하다가 1641년 마지막으로 파리에 가서 성 빈첸시오 드 폴을 만나고 돌아온 후 느베르(Nevers)에서 병을 얻었다. 결국 물랭(Moulins)의 분원에서 몸져누운 그녀는 1641년 12월 13일에 물랭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안시 수도원으로 옮겨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무덤 곁에 묻혔다. 그녀는 1751년 11월 21일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라 1769년부터 로마 보편 전례력에 포함되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가 쓴 “신심 생활 입문”(The Introduction to the Devout Life)에 잘 나와 있다. 그 뒤에 17세기와 19세기에 그녀의 전기가 발행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3일 목록에서 프랑스의 물랭에서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설립자이자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고, 그녀의 유해가 안시로 옮겨져 첫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음을 전하며, 교황 클레멘스 14세에 의해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8월 21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1969년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그녀의 축일은 선종 전날인 12월 12일로 옮겨 기념하였다. 2001년 12월 18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에 의해 성녀 요한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의 축일은 다시 12월 12일에서 8월 1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1999년 3월 25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로 선포한 ‘과달루페(Guadalupe)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과 같은 날이어서 전례적 기념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2월 13일 목록에서 그녀의 천상 탄일을 언급하며 8월 12일로 옮겨 보편 교회에서 그녀의 축일을 경축한다고 했다. 그리고 8월 12일 목록에서 그녀가 결혼 생활을 통해 여섯 자녀를 경건하게 교육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지도를 받아 완덕의 길을 걸으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한 자선 사업에 힘쓰고,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해 헌신하다가 프랑스 물랭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86-28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 - '샹탈, 잔 프랑수아즈 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9년, 4299-4301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녀 요안나 프란체스카 드 샹탈 수도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309-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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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안나 프란치스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독서기도|1| 주호식 2006/07/19 163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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