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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카시아노(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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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요한 카시아노 (John Cassian)
축일 7월 2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신부, 수도원장
활동지역 마르세유(Marseille)
활동연도 360?-435년경
같은이름 가시아노, 가시아누스,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카시아누스, 카시안, 한스, 후안
성인 기본정보

   성 요한네스 카시아누스(Joannes Cassianus, 또는 요한 카시아노)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있지만, 대체로 360년경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스키티아(Scythia Minor, 오늘날 루마니아 남동부와 불가리아 북동부에 걸친 역사적 지방인 도브루자[Dobruja] 지역)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본다. 그는 라틴어 문화와 그리스어 문화를 익히는 정규 과정을 마치고, 젊은 나이에 친구인 게르마누스(Germanus)와 함께 고향을 떠나 팔레스티나(Palestina)로 순례를 떠났다. 382년경 베들레헴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 생활을 시작한 후 385년경에 은수 생활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게르마누스와 함께 이집트 북부의 스케티스(Scetis, 오늘날의 와디 엘 나트룬[Wadi El Natrun]) 사막으로 가서 10여 년 정도 은수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켈리아(Kellia) 사막에서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를 만나 그의 제자이자 동료가 되어 이론적으로 체계적인 수도 생활을 배웠다.

   그런데 성 요한 카시아노는 오리게네스(Origenes) 논쟁에 휘말려 더는 이집트 사막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고, 399년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ysostomus, 9월 13일)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404년 그는 에우독시아 황후의 사치와 탐욕을 비판하고 부패한 성직자들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다가 박해를 받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총대주교의 보호를 교황에게 요청하기 위해 게르마누스와 함께 로마(Roma)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다른 논쟁에 휘말렸는데, 원죄로 인해 죄의 지배에 놓인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와 인간의 자유 의지만으로도 구원 가능하다는 펠라기우스(Pelagius) 사이의 논쟁에서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신학적 견해를 약간 달리했다. 즉 오랜 수도 생활을 경험한 그는 인간 구원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할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미 펠라기우스주의는 단죄받았고, 그는 오해를 피하려고 로마를 떠나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로 이주해 수도원을 설립하고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갈리아 지방 마르세유에 정착한 성 요한 카시아노는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이 조잡하고 미성숙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남녀 수도원을 세우고 프랑스 지역 수도자들에게 이집트 수도승들의 생활과 정신 그리고 영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지역 주교의 요청으로 수도자들의 수덕 생활과 관상 생활 교육을 위한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421년에 저술한 “공주 수도 생활과 여덟 가지 악습들에 대한 제도서”(De Institutis coenobiorum et de octo principalium vitiorum)에서는 수도 생활과 성무일도 그리고 악습과 싸우는 내적 투쟁 등에 대해, 426년에 저술한 “교부들의 담화집”(Collationes Patrum)에서는 수도자의 관상 생활을 주로 다루었다. 이를 통해 갈리아 지방 수도자들에게 이집트에서 자신이 체험한 바와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전달해주었다.

   이 책들은 또한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 베네딕토(Benedictus, 7월 11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를 통해 서방 교회에서 수도 생활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430년에 “네스토리우스 이단에 반대하는 주님의 강생에 대하여”(De incarnatione Domini contra Nestorium)라는 글을 썼는데, 이것은 나중에 교황이 된 성 대 레오 1세(Leo I the Great, 11월 10일)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마르세유에서 435년경 선종한 그는 동방과 서방 교회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3일 목록에 그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마르세유에 남녀 수도원을 설립하고 오랜 수도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도자들을 위한 “제도서”와 “담화집”을 쓴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윤년에는 2월 29일에, 윤년이 아닌 해에는 2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다.♣

참고자료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역, 수도생활 역사 I - '요한 카시아노, 동방과 서방 수도원의 다리', 서울(성바오로), 2001년, 230-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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