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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문도 논나토(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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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라이문도 논나토 (Raymund Nonnatus)
축일 8월 3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추기경, 증거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204-1240년
같은이름 논나투스, 라이문두스, 레이먼드
성인 기본정보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포르텔라(Portella)에서 태어난 성 라이문두스 논나투스(Raymundus Nonnatus, 또는 라이문도 논나토)는 출산 중에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제왕절개 수술로 생명을 얻었다. 이 때문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논나투스’(Non-natus)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성장하면서 수도자의 꿈을 키워갔다. 가난한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자신의 농장을 물려받아 세속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랐고, 성 라이문두스는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 없어 집안일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산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음에 매우 행복해했다. 그는 시간만 나면 인근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을 찾아 성모상 앞에서 주님을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주시길 간청했다.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그는 기도 중에 받은 성모님의 권고대로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활동하던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가 설립한 메르체다리오회(Mercedarian Order)에 입회하였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지도를 받아 1222년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Algeria) 지방에서 모슬렘에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하던 신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는 가능한 많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이슬람교도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준비해온 대속금이 모두 바닥나자 그는 본국에서 돈이 올 때까지 자신이 볼모가 되어 인질로 잡히는 대신 더 많은 노예를 구출하고자 했다. 이런 그의 헌신에 모슬렘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노예 상인들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인질로 잡힌 그에게 온갖 형벌과 고문을 가했다. 배상금을 받기 위해 차마 죽이지는 않고, 더는 선교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불에 달군 꼬챙이로 입술을 뚫고 그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이렇게 8개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다가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에스파냐로 돌아올 수 있었다.

   123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모진 형벌과 노동으로 건강을 해친 그는 귀국 후 바로 열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교황의 초청으로 로마로 가던 중 1240년 8월 31일 바르셀로나 근교 카르도나(Cardona) 성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그가 어렸을 때 기도하러 즐겨 찾았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 안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의 시신을 어디에 모실까 고민하던 신자들이 말의 눈을 가리고 유해를 실어 보냈더니, 젊어서부터 즐겨 찾던 성 니콜라우스 성당 근처에서 말이 멈춰 섰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식적 공경은 1625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허용되었고, 1657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조산원의 수호성인이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라이문도 논나투스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47-149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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