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저는 믿나이다” - “저희는 믿나이다”
-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제 1 장 천주 성부를 믿나이다
- 제1절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제4단락 창조주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 279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이러한 장엄한 말로 성경은 시작된다. 신경은 이 말을 인용하여 “천지의 창조주”,(101)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102) 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창조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피조물을, 끝으로 죄에 떨어짐에 대하여 다룰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러 오셨다.
- 280 창조는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모든 계획’의 기초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이르는 “구원 역사의 시작”(103) 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는 창조의 신비를 비추는 결정적인 빛이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창세 1,1) 창조의 목적을 밝혀 준다. 한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창조의 영광을 의중에 두셨던 것이다.(104)
- 281 이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를 기리는 부활 성야의 독서는 창조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잔틴 전례에서 창조 이야기는 항상 주님의 대축일 전야의 첫 번째 독서가 된다. 옛 증언에 따르면, 세례를 위한 예비 신자들의 교육도 이와 같은 방법을 취했었다.(105)
- I. 창조에 관한 교리 교육
- 282 창조에 관한 교리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이 교리는 인간과 그리스도인 삶의 근본 그 자체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창조 교리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모든 시대에 걸친 인간들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기원과 목적에 대한 두 질문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둘은 우리의 삶과 행동 방식의 의미와 방향을 결정짓는다.
- 283 세계와 인간의 기원 문제는 많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연구는 우주의 생성 시기와 크기, 생명체의 등장, 인간의 출현 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발견으로 우리는 더욱더 창조주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그분의 모든 업적과, 학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주신 지능과 지혜에 대해 감사한다. 그들은 솔로몬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께서 만물에 관한 어김없는 지식을 주셔서 세계의 구조와 기본 요소들의 활동을 알게 해 주셨다.……나는 감추어진 것도 드러난 것도 알게 되었으니, 모든 것을 만든 장인인 지혜가 나를 가르친 덕분이다”(지혜 7,17-21).
- 284 이러한 연구에 큰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자연 과학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질문들로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된다. 이 질문은 단순히 언제 어떻게 우주가 물질적으로 생겨났는지, 또는 인간은 언제 발생했는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기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 기원이 우연이나, 맹목적인 운명이나, 이름 모를 필연성의 지배를 받는지, 또는 하느님이라고 불리는, 지성을 지닌 선한 초월적 존재의 지배를 받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만일 세계가 하느님의 선과 지혜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 악은 어디에서 오는지, 악은 누구의 책임인지, 악에서 해방될 수는 있는지 하는 것들을 묻는 것이다.
- 285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은 기원에 대한 교회의 대답과는 다른 많은 대답에 직면하였다. 예컨대, 고대의 종교와 문화에는 기원을 다룬 많은 신화가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만물이 신이고, 세계는 신이라고, 또는 세계의 변화는 신의 변화라고 하였다(汎神論). 다른 철학자들은 세계가 신의 필연적인 유출이며, 세계는 그 근원에서 흘러나왔다가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영원히 투쟁하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두 근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二元論, 마니교). 이러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세계는(적어도 물질적인 세계는) 타락의 산물이므로 악하며, 따라서 이는 버리거나 초월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靈智主義). 다른 이들은 세계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은 세계를 마치 시계처럼 움직이도록 창조했고, 일단 창조한 뒤에는 나름대로 움직이도록 방치한다고 한다(理神論). 그리고 끝으로 어떤 이들은 세계의 어떠한 초월적 기원도 인정하지 않으며, 이 세계에서 항상 존재하는 단순한 물질의 작용만을 볼 뿐이다(唯物論). 이러한 시도들은 기원에 관한 질문이 언제 어디서나 제기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탐구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다.
- 286 인간의 지성이 이미 기원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는, 비록 종종 모호하거나 오류로 왜곡될 수도 있지만, 인간 이성의 빛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업적을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다.(106) 그러므로 신앙은 이러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을 비추어 주고 견고하게 한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3).
- 287 창조의 진리는 모든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하므로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이, 이 주제에 대해 깨닫는 데 유익한 모든 것을 당신 백성에게 계시하고자 하셨다. 모든 인간이 창조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연적인 지식을 넘어서서,(10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창조의 신비를 점진적으로 계시하셨다. 성조들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을 선택하시어 당신 백성으로 만드신(108) 그분께서, 땅의 모든 백성과 온 땅이 당신에게 속해 있으며, 당신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시편 115[113 하],15; 124[123],8; 134[133],3) 분이심을 알려 주신다.
- 288 이처럼 창조 계시는,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맺으시는 계약에 대한 계시나 그 계시의 실현과 분리될 수 없다. 창조는 이 계약을 향한 첫걸음으로서, 또 하느님의 전능하신 사랑에 대한 첫 번째 보편적 증거로서 계시되었다.(109) 따라서 창조의 진리는 예언자들의 메시지와,(110) 시편의 기도와(111) 전례, 그리고 선택된 백성의 지혜로운 성찰 안에서(112) 점점 더 힘차게 표현된다.
- 289 창조를 다룬 성경의 모든 말씀 가운데 창세기의 처음 세 장(章)은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본문들은 다양한 원천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감도를 받은 성경 저자는 이 본문들을 성경의 시작 부분에 배치하였다. 그리하여 그 장엄한 말로 창조의 진리, 하느님 안에 있는 창조의 기원과 목적, 그 질서와 선(善), 인간의 운명, 그리고 끝으로 죄의 비극과 구원의 희망까지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성경의 단일성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 안에서 읽을 때, ‘창조’, ‘타락’, ‘구원의 약속’ 등의 말들은 ‘한처음’의 신비에 대한 교리 교육의 주요 원천이 된다.
- II. 창조 -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업적
- 290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성경의 이 첫 말씀은 세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의 모든 것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셨다. 당신 홀로 창조주이시다(‘창조하다’ - 히브리 말로 ‘bara’ - 라는 말은 언제나 하느님만을 주체로 한다). 존재하는 것 전체(‘하늘과 땅’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는 그것들에게 존재를 주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다.
- 291 “한처음에……말씀이 계셨다. 말씀은……하느님이셨다.……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신약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곧 영원한 말씀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계시한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콜로 1,16-17). 교회의 신앙은 또한 성령의 창조적 활동도 언명한다. 그분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113) “창조주 성령”(“오소서 성령이여 창조주시여” - 성무일도 찬미가), “모든 선의 원천”(114) 이시다.
- 292 구약 성경 안에 암시되고(115) 새로운 계약 안에 계시된, 성부의 창조 활동과 분리될 수 없는, 성자와 성령의 창조 활동은 교회의 신앙 규범으로 분명하게 확언된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그분은 아버지이시고,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그분은 주인이시며, 그분은 만드는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 자신, 곧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지혜’를 통하여”,(116) “당신의 두 손”이신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117)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조는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공동 업적이다.
- III.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 293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118) 이것은 성경과 성전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찬미하는 진리이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이다.”(119) 하느님께는 당신의 사랑과 선하심 이외에 창조를 위한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쇠가 만물을 창조할 손을 열었다.”(120) 그리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당신의 선하심으로,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유일하신 참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당신의 완전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부여하신 선을 통하여 당신의 완전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가장 자유로운 계획 안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한처음에, 유형무형의 피조물 하나하나를 무에서 창조하셨다.(121)
- 294 이렇게 당신 선하심을 드러내고 나누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며, 이를 위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에페 1,5-6).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창조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가 벌써 지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하물며 ‘말씀’을 통한 성부의 드러나심이야 하느님을 뵙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생명을 주는 일이 되겠습니까.”(122)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서 마침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코린 15,28)이 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우리의 행복을 돌보시는 것이다.”(123)
- IV. 창조의 신비
-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사랑으로 창조하신다
- 295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124) 그러므로 세계는 어떤 필연성이나, 맹목적 운명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피조물들을 당신의 존재와 지혜와 선에 참여시키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세계가 생겨났음을 우리는 믿는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묵시 4,11). “주님, 당신의 업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당신 슬기로 이루셨습니다”(시편 104[103],24).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네”(시편 145[144],9).
-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신다
- 296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위하여 이미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125) 창조가 신적 실체의 필연적인 유출은 더욱 아니다.(126) 하느님께서는 자유로이 ‘무에서’ 창조하셨다.(127)
- 하느님께서 이미 존재하는 물질로 세계를 만드셨다면 특별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장인(匠人)도 재료를 주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전능은 바로 무로부터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만드신다는 데서 드러납니다.(128)
- 297 성경은 ‘무에서’ 창조하신다는 신앙을 가능성과 희망이 넘치는 진리로서 증언한다. 이를테면 일곱 아들의 어머니는 그 아들들에게 순교의 용기를 이렇게 북돋아 준다.
-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2마카 7,22-23.28).
- 298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으시므로,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심으로써(129) 그들에게 영혼 생명을 주실 수도 있으며,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로마 4,17)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하여 육신 생명을 주실 수도 있다. 또,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어둠에서 빛이 생기게 하실 수 있으므로(130)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빛을 주실 수 있다.(131)
- 하느님께서는 질서 있고 선한 세상을 창조하신다
- 299 하느님께서는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시기 때문에 만물에는 질서가 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하셨습니다”(지혜 11,20).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신 영원한 ‘말씀’ 안에서 그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 창조는,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로 부름을 받은, “하느님의 모습”을(132) 닮은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향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 지성의 빛을 나누어 받은 우리의 지성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133)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겸손의 정신과,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에 대한 존경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134) 하느님의 선에서 태어난 피조물은 이러한 선을 나누어 받는다(“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참 좋았다.”, 창세 1,4.10.12.18.21.31).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이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고, 인간을 위하여 인간에게 맡기실 유산으로 삼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물질세계를 포함한 창조계가 선하다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변호해야만 하였다.(135)
-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초월하시며, 또 그 안에 현존하신다
- 300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업적보다 무한히 위대하시다.(136) “주님께서는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시편 8,2), “그 위대하심은 헤아릴 길 없어라”(시편 145[144],3). 그러나 그분께서는 지고하고 자유로우신 창조주이시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첫 원인이시므로, 당신의 피조물들 안에 가장 깊숙이 현존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머리보다 높이 계시고 내 깊은 속보다 더 깊이 계십니다.”(137)
-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지탱하고 이끌어 가신다
- 301 창조하신 뒤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단순히 존재와 실존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을 매 순간 존재하도록 지탱해 주시고, 행동할 수 있게 하시며, 완성으로 이끌어 가신다. 창조주에 대한 이러한 완전한 의존성을 깨닫는 것은, 지혜와 자유, 기쁨과 신뢰의 원천이 된다.
-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24-26).
- V.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신다 - 하느님의 섭리
- 302 만물은 고유의 선과 완전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창조주의 손에서 완결된 상태로 나온 것은 아니다. 만물은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아직도 다다라야 할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진행의 상태’로 창조되었다. 당신의 피조물을 이러한 완전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배려를,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부른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당신의 섭리로 보호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하신다”(지혜 8,1). 피조물의 자유로운 행동에 의해서 발생하게 될 것까지도 “하느님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기”(히브 4,13) 때문이다.(138)
- 303 성경의 증언은 한결같다. 하느님의 섭리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서 미소한 것에서부터 세계와 역사의 큰 사건들까지 모두 보살핀다. 성경은 사건들의 흐름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힘주어 말한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이루셨네”(시편 115[113 하],3).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묵시 3,7)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
- 304 이처럼 성경의 참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자주 어떤 행위들의 부차적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 행위를 하느님의 행위로 돌리신다. 그것은 하나의 옛날 ‘어투’가 아니라 역사와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우선권과 절대적인 주권을 환기시키고,(139)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는 심오한 방법이다. 시편의 기도들은 이러한 신뢰를 가르치는 위대한 학교이다.(140)
- 305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사소한 필요도 돌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자녀답게 의탁할 것을 요구하신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141)
- 섭리와 이차적 원인들
- 306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획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하여 인간의 협력도 이용하신다. 이는 무능력의 표지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위대함과 선함의 표지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단순히 거기 있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과 근원이 되며, 이로써 하느님 계획의 실현에 협력하는 품위도 주셨기 때문이다.
- 30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온 땅을 ‘지배’하고 다스릴 책임을 맡기시어(142) 자유로이 당신의 섭리에 참여할 권한도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창조 활동을 완성하고, 자신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조화를 완성시키는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원인이 되게 하신다.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 기도,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143) 이 때 인간은 “하느님의 협력자”(1코린 3,9)가(144) 되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협력하게 된다.(145)
- 308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들의 모든 활동에 작용하신다는 사실은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분리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분은 이차적 원인들 안에서, 그것들을 통해서 작용하시는 첫 번째 원인이시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3).(146) 이 진리는 피조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높여 준다.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지기 때문에”,(147)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함으로 무에서 존재하게 된 피조물은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은총의 도움 없이 자신의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148)
- 섭리 그리고 악의 문제
- 309 만일 질서 있고 선한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계시다면 어째서 악이 존재하는가- 절박하고도 피할 수 없으며, 고통스럽고도 신비한 이 질문에 그 어떤 성급한 대답도 충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창조의 선성(善性), 죄의 비극,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계약, 구원을 위한 당신 아드님의 강생, 성령의 파견, 교회의 형성, 성사의 효력으로써, 그리고 자유로이 응할 수 있는 인간을 행복한 삶에 초대함으로써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고통스러운 사랑이 그 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두려운 신비 때문에 이 초대를 회피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메시지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어느 모로든 악에 대한 대답 아닌 것이 없다.
- 310 하느님께서는 왜 악이 존재할 수 없는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으셨을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항상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창조하실 수 있다.(149) 그러나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궁극적 완성을 향해 가는 ‘진행의 상태’로서 자유로이 세상을 창조하기로 하셨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이러한 변화는 어떤 존재들의 출현과 더불어 다른 존재들의 소멸을, 더 완전한 것과 더불어 덜 완전한 것을, 자연의 건설과 더불어 파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이 그 완성에 도달할 때까지는, 물리적 선은 물리적 악과 공존한다.(150)
- 311 지성과 자유를 지닌 피조물인 천사와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과, 더 나은 것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죄를 지었다. 그리하여 물리적 악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중대한 윤리적 악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윤리적 악의 원인일 수 없다.(151)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의 자유를 존중하여 악을 허락하시는 것이며, 신비로운 방식으로 악에서 선을 끌어내신다.
-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최상의 선이시므로, 만일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당신의 피조물들 안에 어떠한 악도 존재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152)
- 312 이리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능하신 섭리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에서 야기된 악의 결과에서, 물론 윤리적 악의 결과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45,8; 50,20).(153) 이제까지 저지른 가장 큰 윤리 악은 모든 인간의 죄로 일어난 하느님 아들의 배척과 살해였다. 이 악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충만한 은총으로(154) 그리스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을 끌어내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이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 313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성인들도 이것이 사실임을 계속 증언해 왔다.
-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는 ‘자신들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문제를 삼고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나오며, 모든 것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목적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155)
- 토마스 모어 성인은 순교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딸을 위로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 비록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이 우리 눈에 매우 나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이다.”(156)
- 또 노리치의 줄리언 여사는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신앙을 굳게 지켜야 하며,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다 선하리라는 사실도 굳게 믿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당신도 모든 일이 선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157)
- 314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그 섭리의 길을 알 수가 없다. 종말에, 우리의 부분적인 인식이 끝나고 하느님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1코린 13,12) 보게 될 때, 비로소 이러한 길을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길을 통해서, 심지어 악과 죄의 비극을 통해서까지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결정적인 안식(Sabbath)으로(158) 이끄신다. 이 결정적인 안식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간추림
- 315 하느님께서는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 안에 당신의 전능하신 사랑과 지혜에 대한 첫 번째이며 보편적인 증거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목표로 하는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안배해 두셨다.
- 316 창조의 업적을 성부께 돌리기는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께서 창조의 유일하고 분리될 수 없는 근원이시라는 것 역시 신앙의 진리이다.
- 317 하느님 홀로 자유로이, 직접적으로, 어떤 도움도 없이 세계를 창조하셨다.
- 318 어떤 피조물도 말 그대로 ‘창조’에 필수적인 무한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 곧,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존재를 부여하고 만들어 내는 능력(‘무에서’ 존재를 불러낼 능력)이 피조물에게는 없다.(159)
- 3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시려고 세계를 창조하셨다. 당신의 진선미에 참여하는 바로 이 영광을 위하여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 320 세계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시는”(히브 1,3) 분이신 당신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이신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이 세계를 계속 존재하게 하신다.
- 321 하느님의 섭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궁극 목적에까지 이끌어 가시는 배려이다.
- 3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섭리에 자녀답게 우리를 맡기도록 권고하시며,(160) 성 베드로 사도는 이를 다시 반복한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 5,7).(161)
- 323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섭리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롭게 당신의 계획에 협력하게 하신다.
- 324 하느님께서 물리적 악과 윤리적 악을 허락하시는 것은 신비이다. 이 신비는 악을 물리치려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혀진다. 만일 영원한 생명 안에서만 완전히 깨닫게 될 그러한 길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악에서조차 선을 끌어내지 않으신다면 악을 허락하실 리 없다는 것을 우리는 신앙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