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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세례
  • 535 예수님의 공생활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251) 시작된다.(252)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루카 3,3). 수많은 죄인들, 세리와 군사들,(253)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사람들,(254) 창녀들이(255)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요한을 찾아가셨다.” 세례자 요한은 망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굳이 세례를 받으신다. 이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마태 3,13-17)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하느님 아들로서 드러난 예수님의 공현(Epiphaneia)이다.
  • 536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는 종”이라는 당신의 사명을 수락하시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으며,(256) 이미 그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피 흘리는 죽음의 ‘세례’를 미리 받으셨다.(257)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기”(마태 3,15) 위하여 오신다. 곧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따르신다. 몸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사랑으로 죽음의 세례를 받아들이신다.(258) 이러한 수락에 성부의 목소리가 당신 아들이 마음에 든다고 응답한다.(259) 예수님께서 잉태 때부터 충만하게 지니셨던 그 성령께서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르신다.”(260)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한 성령의 원천이 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담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마태 3,16), 예수님과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물이 거룩하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창조의 서막이다.
  • 537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당신 세례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미리 겪으시는 예수님과 성사적으로 비슷하게 된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속죄하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겼다가 그분과 함께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로마 6,4).
  •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 세례를 통해 우리 자신을 그분과 함께 묻읍시다. 그분과 함께 높이 올려지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내려갑시다. 그분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올라갑시다.(261)
  • 그리스도께 일어난 모든 일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물로 씻은 뒤에 하늘 높은 곳에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시고, 성부의 음성을 통해 입양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262)
  • 예수님께서 겪으신 유혹
  • 538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직후 광야에서 홀로 계셨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르 1,12).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머무르신다. 들짐승과 함께 지내셨으며,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263) 이 시기가 끝 날 무렵, 사탄은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자녀다운 자세를 변질시키려고 세 번 유혹을 시도한다. 예수님께서는 낙원에서 아담이 받은 유혹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유혹이 집약된 공격을 물리치신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루카 4,13) 예수님을 떠나간다.
  • 539 복음사가들은 이 신비한 사건이 지닌 구원적 의미를 가리키고 있다. 첫 아담은 유혹에 넘어졌으나, 예수님께서는 꿋꿋하게 서 계시는 새 아담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완전하게 수행하신다. 그 옛날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하느님께 대들었던 사람들과는(264)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하느님의 종’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로써 악마를 이기셨으며, 그의 전리품을 다시 빼앗아 오시고자 “힘센 자를 묶어 놓으셨다.”(265)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자를 물리치신 것은 당신의 수난, 곧 아버지에 대한 자녀다운 사랑으로 바친 최고의 순종을 통한 승리의 예고이다.
  • 540 예수님께서 겪으신 유혹은 하느님의 아들이 어떤 식으로 메시아이신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사탄이 제시하는 것이나, 사람들이 그분께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266)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유혹자를 이기셨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5). 교회는 해마다 40일간의 사순 시기를 통하여 광야의 예수님 신비와 결합한다.
  •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541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늘 나라를 시작하셨다.”(267)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268)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심으로써 이를 행하신다. 이 모임이 바로 교회이며, 이는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이 된 것이다.”(269)
  • 542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가정’ 안에 모인 사람들의 중심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징표들과 제자들의 파견을 통해서 사람들을 당신께 불러 모으신다.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당신 파스카의 위대한 신비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실현하실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요한 12,32).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이렇게 일치되도록 불리었다.(270)
  • 하느님 나라의 선포
  • 543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먼저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전해진 이 메시아의 나라는(271) 모든 민족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272) 이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 주님의 말씀은 밭에 심은 씨앗과 비슷하여, 그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그리스도의 작은 양 떼에 들게 된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인 것이며, 그런 다음에 씨앗은 저절로 싹이 터 수확 때까지 자라난다.(273)
  • 544 이 나라는 가난하고 미소한 자들, 곧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루카 4,18)(274) 파견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시는데 그것은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마태 5,3)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진 것을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275)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셨다. 배고픔과(276) 목마름과(277) 궁핍을(278) 겪으셨으며, 더 나아가 여러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신다.(279)
  • 545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하느님 나라의 식탁에 초대하신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28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회개를 호소하시지만, 또한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그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자비와(281)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임”(루카 15,7)을 그들에게 보여 주신다. 이러한 사랑의 최상 증거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마태 26,28) 당신의 목숨을 바치시는 일이 될 것이다.
  • 546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의 전형적 형식인 비유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오도록 부르신다.(282)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하시지만,(283) 한편 근본적인 선택도 요구하신다.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한다.(284) 말만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285) 비유는, 사람들이 마치 단단한 땅처럼 말씀을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좋은 땅처럼 받아들이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과 같다.(286) 저마다 받은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287) 이 세상에 계신 예수님과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이 비유 안에 은밀하게 들어 있다. “하늘 나라의 신비”(마태 13,11)를 알아들으려면 그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곧,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저 바깥”(마르 4,11)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것이다.(288)
  • 하느님 나라의 표징
  • 547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가 당신 안에 현존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많은 “기적과 이적과 표징”(사도 2,22)도 행하신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께서 바로 예고된 메시아시라는 것을 증명한다.(289)
  • 548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징들은 성부께서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을 증명한다.(290) 이 표징들은 예수님을 믿도록 권유한다.(291) 그분께서는 그분을 믿고 청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청하는 것을 주신다.(292) 그러므로 기적들은 성부의 일을 수행하시는 분에 대한 신앙을 굳건하게 한다. 기적들은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언한다.(293)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걸려 넘어지는(294)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기적은 호기심이나 마술적인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한 것들이 아니다. 그렇게 분명한 기적들을 보여 주셨음에도,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으며(295) 심지어 마귀의 힘을 빌려 행동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296)
  • 549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주림,(297) 불의,(298) 병과 죽음(299) 등 현세의 불행에서 해방시키심으로써 메시아의 표징을 보이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없애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300) 하느님 자녀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게 하거나, 모든 인간적인 예속을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노예 상태, 곧 죄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301) 오셨다.
  • 550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바로 사탄 나라의 패배이다.(302)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예수님의 구마(驅魔)는 사람들을 마귀의 지배에서 해방시킨다.(303) 이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에(304) 대한 예수님의 위대한 승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세워질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무로 세상을 다스리셨네.”(305)
  • ‘하늘 나라의 열쇠’
  • 551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당신과 함께 머물며 당신의 사명에 동참할 열두 사람을 선택하셨다.(30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나누어 주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셨다”(루카 9,2).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시므로, 그들은 영원히 그리스도의 나라에 동참하고 있다.
  •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루카 22,29-30).
  • 552 이 열둘의 사도단 가운데 시몬 베드로가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30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유일한 임무를 맡기셨다. 성부의 계시에 힘입어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했다. 이에 우리 주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하고 선언하셨다. “살아 있는 돌”이신(308)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 위에 세우신 당신 교회에게 죽음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보장하신다. 베드로는 그가 고백한 신앙 때문에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는 어떤 쇠퇴로부터도 이 신앙을 보호하고, 형제들의 신앙을 굳세게 하는 사명을 맡게 될 것이다.(309)
  • 553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셨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이러한 ‘열쇠의 권한’은 하느님의 집, 곧 교회를 다스릴 권한을 가리킨다. “착한 목자”(요한 10,11)이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이 임무를 확인해 주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17). ‘매고 푸는’ 권한은 죄를 용서하고 교의에 관한 판단을 선포하며, 교회의 규율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직무를 통하여,(310) 특히 베드로의 직무를 통하여, 이 권한을 교회에 맡기셨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만 맡기셨다.
  •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봄 - 거룩한 변모
  • 554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베드로가 고백한 그날부터, 스승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태 16,21). 베드로는 이러한 예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311) 다른 제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312)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높은 산 위에서 예수님께서 택하신 세 증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일어난다.(313) 예수님의 얼굴과 옷이 빛나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1). 구름이 그들을 덮고 하늘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 555 예수님께서는 잠시 동안 하느님으로서 당신의 영광을 보이심으로써 베드로의 고백을 확인하신다. 또한 “영광 속에 들어가기”(루카 24,26)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수난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보여 주신다. 모세와 엘리야는 산 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고, 율법과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수난을 예고했었다.(314) 예수님의 수난은 물론 성부의 뜻이며, 성자께서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이를 행하신다.(315) 구름은 특히 성령의 현존을 가리킨다. “삼위께서 모두 나타나셨으니, 성부께서는 목소리로, 성자께서는 인간으로, 성령께서는 빛나는 구름으로 나타나셨다.”(316)
  • 당신께서는 산 위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시어, 가능한 한 당신의 제자들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당신의 영광을 바라보고, 당신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보게 될 때 당신의 수난이 스스로 원하신 것임을 깨닫고, 당신께서 참으로 성부의 빛이심을 세상에 선포하게 하셨나이다.(317)
  • 556 공생활 직전에는 세례가, 파스카 직전에는 거룩한 변모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의 세례인 ‘첫 번째 재생의 신비’를 드러냈으며, 거룩한 변모는 우리 자신의 부활인 ‘두 번째 재생의 성사’(318) 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부활에 참여한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필리 3,21)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우리가 미리 맛보게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사도 14,22)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도 한다.
  • 베드로가 산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를 바랐을 때, 그는 이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였습니다.(319) 베드로여,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신 다음에 주시려고 이것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지상에서 고생하고, 지상에서 봉사하고, 지상에서 멸시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내려가라. ‘생명’이신 분이 죽임을 당하기 위하여 내려오고, ‘빵’이신 분이 굶주리기 위하여 내려오고, ‘길’이신 분이 길 가느라 고단하기 위하여 내려오고, ‘샘’이신 분이 목마르기 위하여 내려오는데, 너는 고생하기를 싫다 하느냐-(320)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 557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321) 이 결심은 예수님께서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 반복해서 당신의 수난과 함께 부활을 예고하셨다.(322)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3) 하고 말씀하신다.
  • 558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살해된 예언자들의 죽음을 상기시키신다.(323) 그럼에도 예루살렘을 당신 곁에 모으시기 위하여 끈질기게 부르신다.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ㄴ). 예루살렘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시며(324) 다시 한 번 간절한 소원을 표현하신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루카 19,42).
  •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 559 예루살렘은 자신의 메시아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당신을 왕으로 모시려는 군중의 시도를 언제나 피해 오셨던 예수님께서는(325) “당신의 조상 다윗”(루카 1,32)의 도성에 메시아로서 입성하실 시기를 택하시고 그 세부적인 준비를 하신다.(326)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구원을 가져오실 다윗의 자손이라고 환호한다. (‘호산나’는 “구원하소서!” “구원을 주소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영광의 임금님”(시편 24[23],7-10)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즈카 9,9) 당신의 도읍으로 들어가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교회의 표상인 시온의 딸을 계략이나 폭력이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는(327) 겸손으로 정복하신다. 그러므로 그날 그 나라의 백성들은 어린이들과(328)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줄 때처럼 환호한다.(329)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시편 118[117],26) 하는 그들의 환호를, 교회는 주님 파스카의 기념을 시작하는 성찬 전례의 ‘거룩하시도다’에서 다시 반복한다.
  • 560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이신 메시아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통해 완성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 교회 전례는 성지 주일에 이 일을 기념하며 장엄한 성주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