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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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0년 6월 19일 금요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시작하여 점차 퍼지면서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입당송

시편 33(32),11.19 참조
주님의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지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성심을 통하여
저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리며 기뻐하오니
이 사랑의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7,6-11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6-7.8과 10(◎ 17ㄱㄴ)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 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제2독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주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심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속죄의 제사로 받아 주시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4 :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예수 성심 대축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7,37-3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또는>

요한 19,34 참조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큰 사랑의 성사로 저희에게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자를 사랑하며
형제들 가운데서 그분을 알아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신학교에서 사제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을 양성하면서 답답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양성을 담당하는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자녀를 둔 부모들은 철없는 자식들 때문에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본디 가르치고 기르는 처지에서는 배우는 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겠지요.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깨치고 성숙해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려 주려고 애를 씁니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예수님께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그분께서도 제자들을 ‘철부지’라고 부르고 계시니 말입니다.
사실 복음서에는 제자들의 철없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마귀를 쫓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이 부족하여 악령에 시달리는 아이를 구하지 못합니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두고 논쟁을 하는가 하면, 야고보와 요한은 출세할 생각에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 옆에 있게 해 달라고 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철부지 제자들을 두고 오늘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은 놀랍습니다. 한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계시니 말입니다. 왜 그러실까요? 지혜롭다는 자들,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적인 지혜는 오히려 장애가 될 뿐입니다. 비록 철없고 부족하지만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드러낼 때 그분의 권능이 그 사람 안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정녕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2코린 12,9)해야 할 철부지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