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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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19년 1월 18일 금요일

[(녹)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일치 주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간다며,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힘쓰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다며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8(77),3과 4ㄱㄹ.6ㄴ-7.8(◎ 7ㄴ)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 우리가 이미 들어 아는 것을,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을 전하리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권능을, 다가올 세대에게 들려주려 하노라. ◎
○ 그들이 일어나서, 제 자손들에게 들려주라 하심이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않으며, 당신 계명을 지키라 하심이네. ◎
○ 고집부리고 반항하던 세대, 그 조상들처럼 되지 말라 하심이네. 마음이 흔들렸던 그 세대, 그들의 정신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않았네.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사람이 중풍 병자 한 사람을 데려온 것을 보시고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분명 이들은 병을 치유해 주시기를 원했을 테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계기로 ‘죄를 용서하는 것과 병을 치유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병을 치유하는 힘이나 죄를 용서해 주는 힘은, 다 같은 ‘성령’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다면, 성령으로 죄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만 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10만 원 짜리 선물도 줄 수 있습니다. 보기에는 달라도 같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기적의 힘은 주셨는데 용서의 힘은 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성령께서는 죄도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따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오늘 독서 말씀처럼, 기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 말씀을 믿음으로 결합시키지 않아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시며 세상으로 파견하십니다(요한 20,23 참조). 만약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교회가 죄를 용서하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수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시며 당신 성령을 부어 주셨듯이, 예수님께서도 교회를 파견하시며 당신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