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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우리는 신앙 고백을 할 때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경으로 고백하고 전례 안에서 기념하며, 계명과 기도의 실천으로 생활화하는 신앙을 설명하기 전에, 우선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신앙이란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내어 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이와 같은 인간의 추구를(제1장), 이어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계시를(제2장), 끝으로 신앙의 응답을 고찰하고자 한다(제3장).
  • 제 1 장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인간
  • I. 하느님을 향한 갈망
  • 27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시며,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1)
  • 28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행위들(기도, 제사, 예배, 묵상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찾는 길을 표현해 왔다. 이러한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내포할 수 있기는 하지만,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므로 인간을 종교적인 존재라고 일컬을 수 있다.
  •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6-28).
  • 29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2) 을 종종 망각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백하게 거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매우 다양한 근원에서 비롯될 수 있다.(3) 곧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4)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 그리고 끝으로,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5) 그분의 부름을 듣고 달아나는,(6) 죄인인 인간의 태도 등이다.
  • 30 “주님을 찾는 이들의 마음은 기뻐하여라”(시편 105[104],3). 비록 인간은 하느님을 잊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모든 이를 끊임없이 부르신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찾으려면 자신의 모든 지성적 노력, 올바른 지향, ‘바른 마음’, 그리고 하느님을 찾도록 가르치는 다른 이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 “주님, 주님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기림직하옵시며, 그 힘은 능하시고 그 지혜로우심은 헤아릴 길 없나이다.” 당신께서 내신 한 줌 창조물인 인간이, 죽을 운명을 지녔으며, 자신의 죄와 “당신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증거를 스스로 지닌 바로 그 인간이 당신을 기리려 하나이다. 당신의 한 줌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찬미하여 기쁨을 누리도록 인간을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7)
  • II. 하느님 인식에 이르는 길
  • 31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름 받아, 하느님을 찾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이르는 몇 가지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길은,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 얻어진 증거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참된 확실성에 이르게 하는 ‘일관성과 설득력을 가진 논증’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존재 증명’이라 하기도 한다.
  •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이러한 ‘길’들은 창조계, 곧 물질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 32 세계: 운동과 변화, 우연,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는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
  • 바오로 사도는 이교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1,19-20).(8)
  • 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땅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바다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드넓게 퍼져 가는 대기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하늘의 아름다움에게 묻고……이 모든 실재하는 것에게 물어보십시오. 모든 것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들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고백입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들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9)
  • 33 인간: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영원의 씨앗은 한갓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10) 이므로, 이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 34 세계와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여러 가지 ‘길’을 통하여 “모두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11) 제1원인이며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 35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친밀해지도록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럼에도 하느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은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으며,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 III. 하느님 인식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 36 “우리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는, 인간이 이성의 타고난 빛을 통하여 피조물로부터 출발하여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가르친다.”(12)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37 한편 인간이 처한 역사적 조건들 안에서 이성의 빛만으로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 간단히 말해서, 실제로 인간 이성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빛으로써, 당신 섭리로 세상을 보호하고 다스리시는 인격적인 하느님과, 창조주께서 우리 영혼 안에 심어 놓으신 자연법에 대한 참되고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본성적 능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결과를 얻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리들은 감각적인 사물들의 질서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진리들이 구체적인 행동에 적용되고 삶을 형성하게 될 때에는 자기를 바치고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진리들을 얻기 위해서 인간의 정신은 감각과 상상력의 충동뿐 아니라, 원죄에서 발생한 그릇된 욕망들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일들에서, 스스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들이 거짓이거나 적어도 불확실한 것이라고 쉽게 믿어 버립니다.(13)
  • 38 그러므로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들뿐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 가능한 종교적 윤리적 진리들도 현재의 인간 조건에서도 더 쉽게, 확실히, 오류 없이 알기 위해서는”(14) 하느님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
  • IV.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 39 교회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옹호함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또 모든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확신은 다른 종교, 철학, 과학, 그리고 또 믿지 않는 사람이나 무신론자들과 나누는 대화의 출발점이 된다.
  • 40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말로 하느님을 표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단지 피조물들로부터 출발하여, 그리고 인식과 사고의 한계를 가진 인간적 방식으로만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41 피조물들은 모두 하느님과 어떠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더욱더 그러하다.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진·선·미)은 하느님의 무한한 완전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조물의 완전성을 근거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
  • 42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신다. 따라서 “형언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15) 하느님을 우리의 인간적인 표현으로 뒤바꾸지 않으려면,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와 상상과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정화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은 언제나 하느님의 신비에 미치지 못한다.
  • 43 이처럼 하느님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언어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하느님께 실제로 다다르기는 하지만 그분의 무한한 순수성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참으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그 차이점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16) “우리는 결코 하느님께서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무엇이 아닌지 알 수 있을 뿐이며, 다른 존재들이 그분과 관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17)
  • 간추림
  • 44 인간은 그 본성으로나 소명으로나 종교적인 존재이다.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은 오직 하느님과 맺는 관계 안에서 자유로이 살아갈 때에만 그 삶이 충만해진다.
  • 45 인간은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으며,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제가 온전히 당신 안에 있을 때 더 이상 고통도 시련도 없을 것이며, 당신으로 충만할 때 제 삶은 완성될 것입니다.”(18)
  • 46 피조물들의 알림과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을 때, 인간은 만물의 원인이며 목적이신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
  • 47 교회는, 인간이 타고난 이성의 빛의 도움으로 우리의 창조주이고 주님이시며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을 그분의 업적을 통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가르친다.(19)
  • 48 비록 한정된 우리의 언어가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에 대한 유사성을 지닌 피조물들의 다양한 완전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49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진다.”(20)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과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느님의 빛을 가져다주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들을 재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 제 2 장 인간을 만나러 오시는 하느님
  • 50 자연적 이성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업적으로부터 확실하게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인식의 질서, 곧 신적 계시의 질서가 존재한다.(1) 하느님께서는 완전히 자유로운 결정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내어 주신다. 이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마련하신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과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파견하시어 당신의 계획을 충만히 계시하신다.
  • 제1절 하느님의 계시
  • I.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 계획’을 알려 주신다
  • 51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2)
  • 52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1티모 6,16)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자유로운 인간들을 당신의 외아들 안에서 자녀로 삼으시려고 (3) 당신의 신적 생명을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인간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서서 당신께 응답하고, 당신을 깨닫고, 사랑할 수 있게 하신다.
  • 53 이 계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계획은 “서로 긴밀히 결합된 행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4) 이 계획에는 독특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이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점진적으로 인간에게 당신을 알려 주시며,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명 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될 초자연적 계시를 받아들이도록 단계적으로 인간을 준비시키신다.
  •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은 이러한 하느님의 교육 방법을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친해지는 모습으로 거듭 표현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부의 뜻에 따라 인간 안에 머무르셨고, 인간이 하느님을 깨닫는 데 익숙하게 하고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계시는 데에 친숙하게 하시려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5)
  • II. 계시의 단계
  • 처음부터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신다
  • 54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에 관한 영원한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고 천상적 구원의 길을 터 주시고자 하셨을 뿐 아니라, 원조(元祖)들에게 처음부터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6)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빛나는 은총과 정의를 입혀 주시어 당신과 이루는 긴밀한 일치로 초대하셨다.
  • 55 이러한 계시는 원조들의 죄로 단절되지 않았다. 실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구속을 약속하시어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 주셨고, 선업(善業)에 항구하며 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끊임없이 인류를 돌보셨다.”(7)
  • 비록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잃었으나 죽음의 세력 아래 버려두시지 않고……또한 사람들과 거듭 계약을 맺으셨나이다.(8)
  • 노아와 맺으신 계약
  • 56 죄 때문에 인류의 단일성이 깨어진 뒤, 하느님께서는 먼저 갈라진 민족들 하나하나를 구원하고 인류 전체를 구원하고자 하셨다. 대홍수 이후 노아와 맺으신 계약은(9) “지방과 각 언어와 씨족과 민족에 따라 퍼져 나간 백성들”(창세 10,5)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낸다.(10)
  • 57 우주적이며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다양한 민족들의 이 질서는(11) 타락한 인류의 교만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교만하게도 바벨 탑 사건에서처럼, 한마음으로 악을 꾸며(12) 스스로 일치를 이루려 하였다.(13) 인류의 죄 때문에, 이 질서는 다신교라든가, 국가와 왕의 우상화 등 이교도적인 타락으로 끊임없이 위협받게 되었다.(14)
  • 58 노아와 맺은 계약은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15) 곧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될 때까지 유효하였다. 성경은 이러한 “이방 민족들”의 몇몇 위대한 인물들을 공경한다. “의인 아벨”, 그리스도의 예표이며(16) 임금이자 사제인 멜키체덱,(17) “노아, 다니엘, 욥”(에제 14,14)과 같은 의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러”(요한 11,52)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노아의 계약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드높은 성덕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다
  • 59 하느님께서는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모으시고자,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 하고 아브람을 부르심으로써 그를 선택하시어 아브라함, 곧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창세 17,5) 삼으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18)
  • 60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백성은 성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어받는 선택된 백성이 될 것이며,(19) 장차 교회의 일치 안에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모을 준비를 하도록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20) 그 백성은 이방인들이 신앙인으로 접목될 뿌리가 될 것이다.(21)
  • 61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다른 위대한 인물들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교회의 모든 전례 전통에 따라 성인으로 공경받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다
  • 62 성조들 이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당신 백성으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내려 주심으로써 당신만이 살아 계신 참하느님이시요 섭리의 아버지이시며 정의의 판관이심을 알도록 하셨고, 약속된 구세주를 기다리게(22) 하셨다.
  • 63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신명 28,10)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제적 민족이다.(23) 그들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을 건네신”(24)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신앙 안에서 ‘맏형’격인 백성이다.(25)
  • 64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구원의 희망을 간직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26)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질,(27)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기다리라고 가르치신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백성이 완전히 속량되고, 그들의 모든 불성실이 정화되며,(28) 모든 민족을 망라할 구원을 선포한다.(29) 이러한 희망은 특별히 주님의 가난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30) 사라, 레베카, 라헬, 미르얌, 드보라, 안나, 유딧, 에스테르 등과 같은 거룩한 여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생생한 희망을 간직했었다. 이 희망의 가장 순수한 모습이 마리아이다.(31)
  • III. “모든 계시의 중개자이시며 충만”32)이신 예수 그리스도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 65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이시다. 성부께서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많은 사람의 뒤를 이어 이러한 사실을 히브리서 1장 1-2절의 주석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주실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 당신 아드님 전체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예언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던 것들을 당신 아드님 안에서는 전부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그리고 단 한 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다시 그분께 문의한다든지 또는 어떤 환시나 계시를 바란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지 않고 그분과는 다른 것이나 어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33)
  •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 66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34) 그러나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대를 살아가며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
  • 67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중의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서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교도권의 인도에 따라, 신자들은 신앙 감각으로 이러한 계시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나 성인들께서 교회에 하신 진정한 호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의 완성이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벗어나거나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계시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스도교가 아닌 일부 종교들과 신흥 종파들은 바로 이런 부류의 ‘계시들’에 근거하여 세워진 경우이다.
  • 간추림
  • 68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 주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는 인간의 질문에 결정적이고도 풍부한 답을 주신다.
  • 69 하느님께서는 업적과 말씀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당신 신비를 알리시어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셨다.
  • 70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통하여 당신 자신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셨으며, 더 나아가서 우리 원조에게 당신 자신을 보여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건네셨고, 그들이 죄를 지은 뒤에는 구원을 약속하셨으며(35)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 71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사이에 영원한 계약을 노아와 맺으셨다.(36) 이 계약은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 7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그와 그 후손들과 계약을 맺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당신의 율법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 7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완전히 계시하셨고, 그분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다. 그 아들이 바로 성부의 결정적인 말씀이시므로, 그분 이후에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 제2절 하느님 계시의 전달
  • 7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1티모 2,4).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3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셔야 하며, 계시는 세상 끝까지 전해져야 한다.
  •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계시하신 모든 것이 영구히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매우 자비로이 배려하셨다.”(38)
  • I. 사도전승
  •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39)
  • 사도들의 복음 선포
  • 76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다.
  • - 구두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 -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40)
  • 사도적 계승으로 지속되는 복음 선포
  • 77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41)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42)
  • 7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생생한 전달은 성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성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성전’(聖傳)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을 통해서, “교회는 그 교리와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43) “거룩한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안으로 이 성전의 풍요로움이 흘러 들어온다고 가르친다.”(44)
  •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45)
  • II. 성전과 성경의 관계
  • 하나의 공통적 원천
  • 80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46) 이 둘은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 81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47)
  •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는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48)
  • 사도전승과 교회 전승들
  •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 III.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 전체 교회에 맡겨진 신앙의 유산
  • 84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은(49)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졌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50)
  • 교회의 교도권
  •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51)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 86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52)
  • 87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53)
  • 신앙의 교의
  • 88 교회의 교도권이 교의(敎義)를 정의할 때, 곧 하느님의 계시에 담긴 진리나 이 진리와 필연적인 관계에 있는 진리들에 관한 번복할 수 없는 신앙의 동의를 그리스도 백성에게 의무적인 형태로 요구할 때, 이는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받은 권위에 근거한다.
  • 89 우리의 영적인 삶과 교의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교의는 우리 신앙의 길을 비추는 빛으로서 이 길을 밝혀 주고 확실하게 해 준다. 거꾸로 우리의 삶이 올바르면 우리의 지성과 마음은 개방되어 신앙 교의의 빛을 받게 될 것이다.(54)
  • 90 교의들 사이의 상호 관계와 일관성은 그리스도 신비의 계시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55)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이루는 관계는 서로 다르므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56)
  • 초자연적 신앙 감각
  • 91 모든 신자는 계시된 진리의 이해와 전달에 참여한다. 그들은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고”(요한 16,13)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57)
  • 92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58)
  • 93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 온전히 지키며,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서 더욱 충만히 적용한다.”(59)
  • 신앙 이해의 발전
  • 94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 유산의 실재에 대한 이해와 그 언어에 대한 이해는 교회의 삶에서 발전할 수 있다.
  • - “마음 깊이 그것을 새겨 간직하는 신자들의 명상과 공부”(60) 를 통하여; 특히 “계시 진리의 깊은 이해는……신학적 탐구로 이루어진다.”(61)
  • - “영적인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인식”(62) 을 통해 쌓이는 신자들의 경험으로;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는 사람과 함께 성장한다.”(63)
  • - “주교직 계승을 통해 확고한 진리의 은사를 받은 이들의 설교”(64) 를 통하여 그 이해가 깊어진다.
  • 95 “그러므로 성전과 성경과 교회 교도직은 하느님의 지극히 지혜로우신 계획에 따라 각기 독립되어 존립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셋 모두 함께 고유한 방식대로 성령의 활동 아래 영혼의 구원에 효율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65)
  • 간추림
  • 96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맡겨 주신 것을, 성령의 감도를 받아, 설교와 글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까지 모든 세대에 전달하였다.
  • 97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66) 순례자인 교회는 이를 통하여,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의 모든 풍요로움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관상한다.
  • 98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과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그 자신의 모든 것과 그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67)
  • 99 하느님 백성 전체는 초자연적 신앙 감각을 통하여 하느님 계시의 선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더욱 깊이 이해하며, 더욱 충실히 생활화하게 된다.
  • 100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곧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 제3절 성경
  • I. 그리스도 - 성경의 ‘유일한 말씀’
  • 101 하느님께서 선하신 자비로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신다. “예전에 영원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취하여 인간들을 닮으셨듯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말씀들이 인간의 말과 같아졌다.”(68)
  • 102 성경의 모든 말씀으로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한 ‘말씀’을 하신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당신 전체를 표현하신다.(69)
  • 여러분은 상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동일한 한 ‘말씀’이 성경 전체에 펼쳐져 있으며, 그 ‘말씀’은 바로 여러 성경 기록자들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진 동일한 한 ‘말씀’이시고,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그분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한마디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70)
  • 103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71)
  • 104 교회는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는다.(72) 왜냐하면 교회는 성경에서 인간의 말뿐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7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74)
  • II. 성경의 영감과 진리
  • 105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저자이시다. “하느님의 계시는 성령의 감도로 성경에 글로 담겨지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사도의 신앙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을 그 각 부분과 함께 전체를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것이고, 하느님께서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75)
  • 106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신다.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다.”(76)
  • 107 영감 받은 책들은 진리를 가르친다.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경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되기를 원하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 없이 가르친다고 고백해야 한다.”(77)
  • 108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이다. 그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78) 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79) 한다.
  • III. 성경의 해석자이신 성령
  • 109 하느님께서는 성경에서 인간의 방식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셨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성경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80)
  • 110 성경 저자들의 진술 의도를 알아내려면 그들의 시대와 문화의 상황뿐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유형’과 이해·표현·서술 방식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81)
  • 111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므로,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앞의 원칙만큼 중요하며 이 원칙이 없다면 성경은 “죽은 문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82)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을 따르는 성경 해석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83)
  • 112 1. 우선 “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특히 유의할 것. 왜냐하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실제로 성경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밝혀진 그 계획의 중심이시며 심장이시다.(84)
  • 그리스도의 마음을(85)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경이 모호하였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는 성경이 열렸다. 이때부터 성경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고찰하고 식별하였기 때문이다.(86)
  • 113 2. 그리고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에 따라 성경을 읽을 것. 교부들의 격언에 따르면, 성경은 물질적인 수단들(문서나 기록)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마음 안에 적혀 있다.(87) 실제로 교회는 성전 안에 하느님 말씀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교회에 성경의 영적 해석을 내려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성령께서 교회에 주시는 영적 의미에 따라……”(88) ).
  • 114 3. “신앙의 유비”에(89) 유의할 것. “신앙의 유비”란 신앙 진리들 서로의 일관성과 계시의 전체 계획 안에 있는 신앙 진리의 일관성을 말한다.
  • 성경의 의미
  • 115 성경의 의미는 오랜 전통에 따라 자구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중에서 후자는 우의적(寓意的) 의미, 도덕적 의미, 신비적 의미로 다시 세분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읽기는 이 네 가지 의미들의 심오한 조화로써 더욱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진다.
  • 116 자구적 의미. 자구적 의미는 성경의 말씀으로 나타내고, 올바른 해석 원칙에 따른 주석으로 밝혀 낸다. “성경의 모든 의미는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다.”(90)
  • 117 영성적 의미.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성경 본문뿐 아니라, 그 본문이 말하는 실재와 사건들도 표징이 될 수 있다.
  • 1. 우의적 의미. 사건들의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음으로써 더욱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홍해를 건넌 일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표징이며, 그로 말미암아 세례의 표징이 된다.(91)
  • 2. 도덕적 의미. 성경이 전하는 사건들은 우리를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 사건들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도록’(1코린 10,11 참조) 기록된 것이다.(92)
  • 3. 신비적 의미(anagogia).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그리스 말 anagoge는 ‘위로’라는 뜻의 ana와, ‘인도하다’는 뜻의 agoge의 합성어이다.) 영원의 의미에서 실재와 사건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예컨대, 지상 교회는 천상 예루살렘의 표징이다.(93)
  • 118 중세의 한 이행시(二行詩)는 이러한 네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글자는 행한 것을 가르치고, 우의는 믿을 것을 가르치며,
  • 도덕은 행할 것을 가르치고, 신비는 향할 것을 가르친다.(94)
  • 119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95)
  • 만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96)
  • IV. 정경
  • 120 교회는 사도전승에 따라서 어떤 문서들이 성경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하였다.(97)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경의 ‘정경’(正經)이라고 부른다. 이 목록에는 구약 성경 46권과 신약 성경 27권이 들어 있다.(98)
  • 구약 성경: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 역대기 상·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
  • 신약 성경: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1·2서, 요한 1·2·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
  • 구약 성경
  • 121 구약은 성경의 사라지지 않을 한 부분이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책들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99) 옛 계약은 결코 철회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 122 사실 “구약의 경륜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구약 성경은 비록 불완전하거나 일시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교육 방법 전체를 증언한다. “구약 성경은 하느님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하느님에 관한 숭고한 가르침과 인생에 관한 건전한 지식과 기도의 놀라운 보물을 담고 있으며, 그 안에 구원의 신비가 감추어져 있다.”(100)
  • 123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성경을 참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존중한다. 교회는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무효화하였다는 구실로 구약 성경을 배척하려는 생각(마르키온 이단)을 항상 강력히 물리쳐 왔다.
  • 신약 성경
  • 124 “믿는 모든 이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힘인 하느님의 말씀은 신약 성경 안에서 탁월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그 능력을 드러내신다.”(101) 이 기록들은 하느님 계시의 궁극적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신약 성경의 중심 주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 가르침, 수난과 영광 받으심, 그리고 성령의 활동을 통한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 등이다.(102)
  • 125 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 사람이 되신 말씀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으뜸가는 증언이기 때문에”(103) 모든 성경의 핵심이다.
  • 126 복음서의 형성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 1.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교회는 네 복음서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시는 동안, 승천하신 그날까지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실제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이 복음서들이 충실히 전해 주고 있음”을 확고하게 주장한다.
  • 2. 구전(口傳). “사도들은 주님 친히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들을 주님의 승천 후에 충분히 깨달아 청중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와 같이 깨닫게 된 것은 사도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사건들을 직접 겪고 진리이신 성령의 빛으로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다.”
  • 3. 복음서의 기록. “성경 저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참되고 바른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어떤 것은 말이나 이미 쓰여진 글로 전해지는 많은 전승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어떤 것은 종합하고, 또 어떤 것은 교회의 상황과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선포 양식으로 네 복음서를 썼다.”(104)
  • 127 네 복음서는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전례에서 복음서들이 존중되고, 모든 시대의 성인들이 복음서에 비할 데 없는 매력을 느껴 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 복음서보다 더 훌륭하고 소중하며 더 빛나는 교리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행동으로 실현하신 것을 직접 보고 간직하기 바랍니다.(105)
  • 기도 중에 내가 머무는 곳은 무엇보다도 복음서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내 불쌍한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습니다. 복음서에서 나는 늘 새로운 빛과 감추어진 의미와 신비의 의미를 발견합니다.(106)
  • 구약 성경와 신약 성경의 단일성
  • 128 교회는 이미 사도들 시대에(107) 그리고 그 후에도 성전(聖傳) 안에서 일관되게 예형론(typologia)에 의거하여 신·구약에서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을 천명해 왔다. 예형론은, 때가 찼을 때 강생하신 당신 아드님의 인격 안에서 이루신 일들의 예형(豫形)을 구약의 하느님의 업적에서 식별해 낸다.
  • 12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비추어 구약 성경을 읽는다. 이러한 예형론적인 성경 읽기는 구약 성경의 고갈되지 않는 내용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때문에, 나중에 우리 주님께서 친히 재확인해 주셨듯이, 구약 성경이 자신의 고유한 계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108) 한편 신약 성경 역시 구약 성경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리 교육은 끊임없이 구약 성경을 활용하였다.(109) 옛 격언에 따르면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In Vetere Novum lateat et in Novo Vetus pateat).(110)
  • 130 예형론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때 이루어질 하느님 계획의 완성을 향한 역동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성조들에 대한 부르심이나 이집트 탈출 사건이 하느님 계획의 중간 단계라고 해서, 하느님 계획에서 그 고유한 가치를 잃지는 않는다.
  • V. 교회 생활과 성경
  • 131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다.”(111)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112)
  • 132 “성경 연구는 신학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 말씀의 봉사직, 곧 사목적인 복음 선포, 교리 교육과 모든 그리스도교 교육은 성경 말씀으로 구원의 양식과 거룩한 힘을 얻는다. 그리스도교 교육에서는 전례적 설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113)
  • 133 교회는 “모든 신자가……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필리 3,8)를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한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114)
  • 간추림
  • 134 “성경 전체는 단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115)
  • 135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다.”(116)
  • 136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참저자로서,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이 구원의 진리를 오류 없이 가르친다는 사실을 보증하신다.(117)
  • 137 영감을 받은 성경을 해석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거룩한 성경 저자들을 통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에게서 오는 것은 오로지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118)
  • 138 교회는 구약 성경 46권과 신약 성경 27권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저술된 책으로 받아들이고 받든다.
  • 139 네 복음서는 성경의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이시기 때문이다.
  • 140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단일성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과 그분 계시의 단일성에서 비롯된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을 준비하며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완성한다. 둘은 서로를 밝혀 주며, 둘 다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 141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119) ‘성경’과 ‘주님의 몸’은 그리스도인 삶 전체를 양육하고 인도한다.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 [118],105).(120)
  • 제 3 장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
  • 142 계시로써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1) 이러한 초대에 합당한 응답이 바로 신앙이다.
  • 143 신앙으로써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복종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동의를 드리는 것이다.(2) 성경은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응답을 “믿음의 순종”이라고 부른다.(3)
  • 제1절 저는 믿나이다
  • I. 믿음의 순종
  • 144 믿음의 순종이란(‘순종하다’라는 라틴 말 oboedire는 ob[에게]와 audire[듣다]의 합성어이다.)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순종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이러한 순종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하셨다.
  • 아브라함 - “모든 믿는 이의 조상”
  • 145 히브리서는 조상들의 믿음을 찬양하면서 특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 11,8).(4)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에서 이방인으로 또 순례자로 살았다.(5) 믿음으로, 사라도 약속된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6)
  • 146 이처럼 아브라함은 히브리서가 제시하는 믿음의 정의(定義)를 그대로 실현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 4,3).(7) “믿음으로 더욱 굳세어진”(로마 4,20) 아브라함은 “믿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로마 4,11.1(8) (8) 되었다.
  • 147 구약 성경에는 이러한 신앙에 대한 증언이 풍부하다.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인정을 받을”(히브 11,2.39) 만한 조상들의 모범적인 신앙을 찬양한다. 한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는데”(히브 11,40), 그것은 바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 12,2)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은총이다.
  • 마리아 -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 II.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2티모 1,12)
  • 148 동정 마리아께서는 가장 완전하게 믿음의 순종을 실천하신 분이시다. 마리아께서는 믿음 안에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9) 는 말씀을 믿으시고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주님의 탄생 예고와 약속을 받아들이시며,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동의하신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께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하고 인사하였다.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에 모든 세대가 마리아를 행복하다고 일컫는 것이다.(10)
  • 149 일생 동안, 그리고 극도의 시련,(11) 곧 그 아드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끝까지 믿으셨다. 그래서 교회는 마리아를 가장 순수한 믿음을 실현하신 분으로 공경한다.
  • 하느님만을 믿음
  • 150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하여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 인격적으로 귀의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동의하는 것이므로, 인간을 믿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러한 믿음을 피조물에 두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12)
  •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 151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보내 주신 아들, “그분의 마음에 드는 아들”을(13) 믿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고 우리에게 명하신다.(14)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이시며 강생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8). 그분께서는 “아버지를 본”(요한 6,46) 분이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보여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15)
  • 성령을 믿음
  • 152 그분 성령의 도움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기”(1코린 12,3) 때문이다.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려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0-11). 하느님 홀로 하느님을 온전히 아신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 교회는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을 끊임없이 고백한다.
  • III. 신앙의 특성
  • 신앙은 은총이다
  • 153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마태 16,(17) 라고 밝히신다.(16)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으려면 하느님의 도움의 은총이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느님께로 회개시키시며,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진리에 동의하고 믿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에게 베푸신다.’”(17)
  • 신앙은 인간 행위이다
  • 154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은총과 내적인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믿는 것이 참으로 인간적 행위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따르는 것이 인간의 자유나 지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조차 우리가 상호 일치를 위해 타인이나 그 의향을 믿고,(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가 혼인할 때처럼) 그 약속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인간적 품위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우리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신앙을 통하여 드러내고”,(18) 하느님과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일은 결코 우리의 품위를 해치는 것이 아니다.
  • 155 신앙 안에서, 인간의 지성과 의지는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한다.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이다.”(19)
  • 신앙과 지성
  • 156 계시된 진리들이 우리의 자연적 이성에 비추어 참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 신앙의 동기는 아니다. “스스로 그르칠 수 없고 우리를 그르치게 하지도 않으시는, 계시하시는 하느님 바로 그분의 권위 때문에”(20) 우리는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적 동의가 이성에도 부합하도록,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내적 도움이 당신 계시의 외적 증거들과 함께 주어지도록 하셨다.”(21) 예를 들어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기적,(22) 예언, 교회의 확산과 그 거룩함, 그 풍요함과 확고함은, “모든 이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계시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이며”,(23) 신앙의 동의가 “결코 정신의 맹목적인 작용이 아니라는 것”(24) 을 보여 주는 믿음의 동기들이다.
  • 157 신앙은 확실한 것이며, 그것이 거짓 없으신 하느님의 말씀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인식보다 더 확실하다. 물론 계시된 진리들이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에 비추어 모호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자연적 이성의 빛이 주는 확실성보다 하느님의 빛이 주는 확실성이 더 크다.”(25) “만 가지 어려움도 하나의 의심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26)
  • 158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27)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는 분을 더 잘 알고자 하며 그분의 계시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 더 깊은 이해는 다시금 더 강하고 점점 더 사랑에 불타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신앙의 은총은 “마음의 눈”(에페 1,18)을 열어 줌으로써 계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한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계획 전체, 신앙의 신비, 신비들의 상호 관계, 계시된 신비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이루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항구히 신앙을 완성시켜 주신다.”(28)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금언대로 “믿기 위하여 이해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29)
  • 159 신앙과 과학.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신앙과 이성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는 있을 수 없다. 신비를 계시하고 신앙을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시거나 진리가 진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30) “그러므로 모든 분야의 방법론적 탐구가 참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도덕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코 신앙과 참으로 대립할 수 없을 것이다.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실재는 다 똑같은 하느님에게서 그 기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겸허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사물의 비밀을 탐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만물을 보존하시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손에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31)
  • 신앙의 자유
  • 160 신앙이 인간적인 응답이 되려면, “인간이 하느님을 자유로이 믿고 응답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억지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사실 신앙 행위는 그 본질상 자유로운 것이다.”(32)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당신을 섬기도록 부르시므로 인간은 이에 양심으로 매이지만 강제당하지는 않는다.……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33)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앙과 회개로 초대하시지만 결코 이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진리를 증언해 주셨지만, 반대자들에게 그 진리를 힘으로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의 나라는……진리를 증언하고 들음으로써 굳건해지며 사랑으로 넓혀진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랑으로 인간을 당신께 이끌어 들이신다.”(34)
  • 신앙의 필요성
  • 161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보내신 분을 믿는 신앙이 필요하다.(35)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고’(히브 11,6), 하느님 자녀의 신분을 얻지 못하며, ‘끝까지 견디지’(마태 10,22; 24,13)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36)
  • 신앙의 항구함
  • 162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이 선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훌륭한 전투를 수행하십시오. 믿음과 바른 양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파선당하였습니다”(1티모 1,18-19). 신앙 안에서 살고, 성장하고 마지막까지 항구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앙을 키워야 하며, 주님께 신앙을 키워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37) 이 신앙은 “사랑으로 행동”(갈라 5,6)하고,(38) 희망으로 지탱되며,(39) 교회의 신앙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 신앙 - 영원한 생명의 시작
  • 163 신앙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순례해 가는 목표인 ‘지복 직관’(visio beatifica)의 기쁨과 빛을 미리 맛보게 해 준다. 그때에 우리는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1코린 13,12), “그분을 있는 그대로”(1요한 3,2)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이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 우리가 비록 지금은 신앙의 축복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바라보지만, 그것은 장차 누리도록 신앙이 우리에게 보증해 주는 놀라운 것들을 이미 소유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40)
  • 164 한편 지금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며”(2코린 5,7),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1코린 13,12) 하느님을 알 뿐이다. 우리가 믿는 그분께서 신앙을 비춰 주신다 해도 우리의 신앙은 종종 어둠 속을 지나기도 한다. 신앙은 시련에 처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흔히, 신앙이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악과 고통, 불의와 죽음의 경험은 ‘기쁜 소식’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며, 때로 신앙을 흔들기도 하고, 유혹이 될 수도 있다.
  • 165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증인들, 곧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믿은 아브라함, “신앙의 나그넷길에서”(41)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그 무덤의 어둠을 함께함으로써(42) “신앙의 어두운 밤”(43) 에까지 도달하였던 동정 마리아와 그 외의 많은 신앙의 증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의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 12,1-2).
  • 제2절 저희는 믿나이다
  • 166 신앙은 인격적인 행위이다. 곧, 먼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다. 그러나 신앙은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누구도 홀로 믿거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스스로에게 생명을 줄 수 없듯이 스스로에게 신앙을 줄 수 없다. 신앙인은 다른 이에게서 신앙을 받으며, 그 받은 신앙을 또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신앙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우리를 재촉한다. 각 신앙인은 마치 신앙인들이 이루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 하나하나와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으며, 또한 나의 신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지탱하는 데 이바지한다.
  • 167 “저는 믿나이다.”(44) 이는 주로 세례 때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이다. “저희는 믿나이다.”(45) 이는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이, 더 일반적으로는 신자들의 전례 모임이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이다. “저는 믿나이다.” 이는 교회가 자신의 신앙으로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 하고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 또한 우리 어머니인 교회이다.
  • I. “주님, 당신 교회의 믿음을 보십시오.”
  • 168 교회가 먼저 믿고, 이로써 나에게 그 신앙을 전해 주고, 키워 주고, 지탱해 준다. 어디에서나 먼저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교회이며(“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당신을 찬미-고백-하나이다.” 하고 우리는 사은 찬미가(謝恩讚美歌)에서 노래한다.),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우리는 “저는 믿나이다.”, “저희는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도록 인도된다. 우리가 세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과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이다. ‘로마 예식서’에서 세례 집전 사제가 예비 신자에게 “당신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는 “신앙을 청합니다.” 하고 응답한다. “신앙이 당신에게 무엇을 줍니까-” 하고 물으면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46) 하고 응답한다.
  • 169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온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의 생명을 교회를 통하여 받게 되므로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교회를 새로운 생명의 어머니로 믿는 것이지, 교회를 우리 구원의 창시자로 믿지는 않는다.”(47)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므로 또한 우리 신앙의 스승이기도 하다.
  • II. 신앙의 언어
  • 170 우리는 신앙 조문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조문이 표현하고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실재를 믿는다. “신자의 (신앙) 행위는 진술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진술된) 실재에 머무른다.”(48) 우리는 이러한 신앙 조문(신경)의 도움으로 실재에 다가갈 수 있다. 이로써 신앙의 표현과 전달, 공동체의 신앙 거행(전례), 신앙의 생활화가 점점 더 가능하게 된다.
  • 171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인”(1티모 3,15) 교회는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해진 믿음”을(49) 충실히 지킨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기억을 지키는 것도 교회이고, 사도들의 신앙 고백을 대대로 전하는 것도 교회이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그 말을 통하여 깨닫고 그것을 나누도록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 어머니인 교회 역시 우리를 신앙의 이해와 삶으로 이끌고자 신앙의 언어를 가르친다.
  • III. 하나인 믿음
  • 172 교회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언어와 문화와 민족과 나라들을 거치면서 줄곧 한 분이신 주님께 받은 자신의 유일한 신앙을 고백해 왔다. 이 신앙은 하나의 세례를 통하여 전달되며, 모든 사람이 오로지 한 분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확신에 뿌리박은 신앙이다.(50) 이러한 신앙의 증인인 이레네오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173 “땅 극변에까지 온 세상에 전파된 교회가 사도들과 그 제자들에게서 이어받은 가르침과 신앙을……교회는 충실히 간직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온 세상 곳곳에 퍼져 있지만 같은 한집안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온 교회는 마치 한 영혼과 한마음만을 지니고 있듯 이것을 믿고, 또한 흡사 하나의 입만을 가진 듯 일치된 목소리로 그것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전수합니다.”(51)
  • 174 “세상의 언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앙 전승의 내용은 하나이며 같습니다. 게르마니아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이 믿고 또 전수하는 것과 켈트 지방이나 동방의 교회들, 이집트나 리비아의 교회들, 그리고 세계 중심에 있는 교회들이 믿고 전수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52) “그러므로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구원의 유일한 길이 교회 안에 있으므로 교회의 선포는 참되며 확고합니다.”(53)
  • 175 “우리는 교회로부터 받은 이 신앙을 정성스럽게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성령의 작용으로, 훌륭한 그릇에 담긴 값진 유산과 같은 이 신앙은 끊임없이 스스로 젊어질뿐더러, 그것을 담은 그릇 자체도 젊게 하기 때문입니다.”(54)
  • 간추림
  • 176 신앙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인격적으로 온전히 귀의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행위와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에 대해 밝혀 주신 계시를 지성과 의지로 따르는 것이다.
  • 177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인격과 진리, 이 두 가지와 관련되어 있다. 진리를 증언하는 인격에 대한 믿음을 통해 진리를 믿게 되는 것이다.
  • 178 우리는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만을 믿는다.
  • 179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다. 믿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 180 ‘믿는다는 것’은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인간 행위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한다.
  • 181 ‘믿는다는 것’은 교회의 행위이다. 교회의 신앙은 우리보다 앞서 가며, 우리의 신앙을 낳고, 지탱하고, 기른다. 교회는 모든 신자의 어머니이다. “교회를 어머니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을 수 없다.”(55)
  • 182 “우리는 문서와 구전으로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에 포함된 모든 것과, 교회가 거룩한 계시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믿는다.”(56)
  • 183 신앙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주님께서 몸소 이렇게 확언하신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 184 “신앙은 미래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앎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57)
  • 신앙 고백
  • 1. 사도신경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 2.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