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을 해주세요.

로그인
닫기
크게 원래대로 작게
글자크기
  • 1322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완결 짓는다. 세례성사로 왕다운 사제 품위에 올려지고,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게 된 사람들은 성찬례를 통하여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
  • 1323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145)
  • I. 교회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
  • 1324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146) “교회의 모든 직무나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다. 곧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다.”(147)
  • 1325 “교회의 존재 자체를 이루고 있는 하느님 생명의 친교와 하느님 백성의 일치는 성찬례로 적절히 상징되고 놀랍게 실현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성화하시는 하느님의 활동과, 인간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예배는 성찬례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148)
  • 1326 끝으로, 우리는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이미 천상 전례와 결합되며,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코린 15,28)이 되실 그때의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본다.
  • 1327 한마디로,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성체성사와 일치하며, 성체성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확인해 준다.”(149)
  • II. 이 성사는 어떻게 불리는가-
  • 1328 성체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은 이 성사를 부르는 여러 가지의 이름들에서 나타난다. 이 이름들은 각기 성체성사의 어떤 측면들을 환기시킨다.
  • 성찬례(Eucharistia: 감사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행위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감사한다”(eucharistein, 루카 22,19; 1코린 11,24)와 “찬미한다”(eulogein, 마태 26,26; 마르 14,22)는 말은 창조와 속량과 성화의 하느님 업적을 선포하는 유다인들의 감사 기도를 상기시킨다. 이 기도는 특히 식사 중에 바치는 것이었다.
  • 1329 주님의 만찬.(150)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난 전날 밤에 드신 최후의 만찬과 관계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151) 미리 맛보는 것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 빵 나눔. 예수님께서 특히 최후의 만찬 때(152) 유다인 고유의 이 예식을 행하시면서, 만찬의 주재자로서 빵을 축복하여 나누어 주셨기 때문이다.(153)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은 이 행위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고,(15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 모임을 이 명칭으로 불렀다.(155) 이렇게 부름으로써, 이 나누어진 유일한 빵 곧 그리스도를 받아 먹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며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156) 나타낸다.
  • 성찬 모임(synaxis). 교회의 가시적인 표현인 신자들의 모임에서 성찬례가 거행되기 때문이다.(157)
  • 1330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
  • 거룩한 희생 제사. 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사성제(聖祭), “찬양 제물”(히브 13,15),(158) 영적 제물,(159) 깨끗하고(160) 거룩한 제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제사가 구약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이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 모든 교회의 모든 전례가 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집약적인 표현이 이 성사 거행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거룩한 신비들의 거행이라고도 한다. 지극히 거룩한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성사가 성사들 중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특히 감실 안에 모셔 둔 성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 1331 친교(영성체).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161) 그리고 거룩한 것(ta hagia),(162) ─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성인의 통공’이 지닌 첫 번째 뜻은 이 거룩한 것의 공유(共有)이다. ─ 천사들의 양식, 하늘의 양식, 불사 약,(163) 노자(路資) 성사……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 1332 거룩한 미사(Missa). 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는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 III. 구원 경륜에서 본 성체성사
  • 빵과 포도주의 표징
  • 1333 성찬례 거행의 중심에 놓여 있는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주님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념하면서, 주님께서 수난 전날 밤에 행하신 의식을 계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들어……”,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빵과 포도주의 표징은 신비롭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면서도 창조계의 좋은 생산물이라는 의미도 잃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봉헌’ 때에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창조주께 감사드린다.(164) 빵과 포도주는 땅을 가꾼 ‘인간 노동’의 결과일 뿐 아니라 창조주께서 주신 ‘땅’과 ‘포도나무’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창세 14,18) 왕이며 사제인 멜키체덱의 행위를 교회는 자신이 드리는 봉헌의 예표로 본다.(165)
  • 1334 구약 시대에는 창조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땅에서 나는 맏물들 가운데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마다 파스카 때에 먹는 누룩 없는 빵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떠났음을 기념하는 것이며, 광야에서 먹은 만나에 대한 기억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말씀의 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늘 상기하게 한다.(166) 그들이 날마다 먹는 빵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시다는 보증으로 주신 약속된 땅의 산물이다. 유다인들이 파스카 식사 끝에 마시는 “축복의 잔”(1코린 10,16)은 포도주가 지닌 축제의 기쁨에 종말론적 차원, 곧 예루살렘을 재건할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소망을 더한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축복에 새롭고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 1335 주님께서 군중을 먹이시려고 빵을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을 시켜 나누어 주신 빵의 기적은, 당신 성찬의 이 유일한 빵이 말할 수 없이 풍요함을 예시한다.(167) 카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표징은(168)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때’를 이미 예고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게 될(169) 하느님 나라 혼인 잔치의 실현을 나타낸다.
  • 1336 수난 예고가 제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듯이, 성체성사에 대한 첫 번째 예고도 제자들을 분열시켰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성체와 십자가는 걸림돌이다. 그것은 동일한 신비이며 끊임없이 분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주님의 이 질문은 오랜 세월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질문은 또한 당신만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 6,68)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이 주시는 성찬의 선물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으라는 사랑에 찬 권유이다.
  • 성체성사의 제정
  • 1337 제자들을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신 주님께서는 식사를 하시던 중에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170) 이러한 사랑의 보증을 제자들에게 남겨 주시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기 위해, 그들이 당신의 파스카에 참여하게 하시고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으로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사도들을 “신약의 사제들로 임명하시어”(171)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를 거행할 것을 명하셨다.
  • 1338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은 성체성사를 제정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다.(172)
  • 1339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예고하신 대로, 당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주시기 위해 파스카라는 때를 택하셨다.
  •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 하고 이르셨다.……그들은 가서……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7-20).(173)
  • 1340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식사 중에 당신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유다인들의 파스카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과연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부께 건너가신 새 파스카는 최후의 만찬에서 앞당겨 이루어졌고, 성찬례 안에서 거행되었다. 성찬례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루어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미리 거행한다.
  •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1341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1코린 11,26) 당신의 행위와 말씀을 계속하라고 하신 이 명령은 단순히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요구만이 아니다. 이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 그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부께 드리신 간구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거행하라는 명령이다.
  •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다(사도 2,42-46).
  • 1342 교회는 처음부터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1343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주간 첫날’,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빵을 떼어 나누려고”(사도 20,7) 한자리에 모였다. 그때부터 우리 시대까지 성찬례는 계속 거행되어, 오늘날 교회 어디에서나 근본 구조가 동일한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다. 성찬례는 언제나 교회 생활의 중심이다.
  • 1344 이처럼 순례 길의 하느님 백성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1코린 11,26) 계속되는 성찬례의 거행으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전하면서, 선택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식탁에 앉게 될 천상 잔치를 향하여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간다.”(174)
  • IV. 성찬례의 거행
  • 모든 세기에 걸쳐 거행되어 온 미사
  • 1345 우리는 순교자 유스티노 성인의 증언으로 2세기 때부터의 개략적인 성찬례 거행 과정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모든 전례 전통에까지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다음은 155년경 유스티노 성인이 이교도 황제인 안토니누스(138-161년)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쓴 글이다.
  •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날, 도시나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곳에 모입니다.
  •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도들의 기록과 예언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 독서가 끝나면,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그 훌륭한 일들을 본받으라고 권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 그다음에는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를 합니다.(175) 우리가 삶과 행동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계명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 되어 영원한 구원을 얻도록, 우리 자신과……다른 사람들과, 또 그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이든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 입맞춤을 합니다.
  • 다음에 형제들의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에게 빵과, 물과 포도주를 섞은 잔을 가져다줍니다.
  • 그 사람은 이것을 받아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주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우리가 이 선물들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뽑힌 데 대하여 오랫동안 감사(그리스 말 eucharistia)를 드립니다.
  • 그 사람이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나면 모든 참가자들은 “아멘.” 하고 환호성을 올립니다.
  •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감사 기도를 드리고 회중이 응답하고 나면, 부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든 참석자들에게 ‘축성된’(eucharistethentos) 빵과 물 탄 포도주를 나누어 주고, 그곳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가져다줍니다.(176)
  • 1346 성찬례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기본 구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 전례는 기본적으로는 하나를 이루는 두 가지의 주요 부분으로 진행된다.
  • - 모임과, 독서와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로 이루어지는 말씀 전례.
  • - 빵과 포도주의 봉헌, 축성의 감사 기도,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성찬 전례.
  •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함께 “하나의 예배 행위를”(177) 이룬다. 실제로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진 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을 받아 먹는 식탁이기 때문이다.(178)
  • 1347 이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하신 파스카 식사가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던 도중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설명해 주셨으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루카 24,30).(179)
  • 성사 거행의 과정
  • 1348 모두 모임.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위하여 한곳에 모인다. 성찬례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모임을 앞장서 이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대사제이시다. 모든 성찬 거행을 보이지 않게 주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주교나 사제는 그분을 대신하여(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in persona Christi Capitis) 모임을 주재하고, 독서 후에는 강론을 하며, 봉헌물을 받아들이고, 감사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모두들, 곧 독서자, 예물 봉헌자, 성체 분배자, 그리고 ‘아멘’으로 참여를 표현하는 전체 회중은 각자 나름대로 전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 1349 말씀 전례는 ‘예언자들의 문헌’인 구약 성경과, ‘사도들의 비망록’, 곧 서간문들과 복음서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말씀을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180) 실천하도록 권고하는 강론에 이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청원 기도를 바친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1티모 2,1-2).
  • 1350 예물 봉헌. 이때, 흔히 행렬을 지어,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바친다. 사제는 이 빵과 포도주를 성찬의 희생 제사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치는데, 여기에서 이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빵과 잔을 받아 드신” 바로 그 행위이다. “오직 교회만이 창조주께 흠 없는 제물을 바친다. 창조주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와 더불어 바치는 것이다.”(181) 제물을 제대에 바치는 것은 멜키체덱의 행위를 떠맡아,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물을 봉헌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당신의 희생 제사 안에서 완전하게 하신다.
  • 1351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을 위한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도 가지고 모였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헌금(182) 관습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지키는 것이다.(183)
  • 부유하고 뜻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정한 대로 내어 놓습니다. 거두어진 것을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면, 그는 고아, 과부, 질병이나 그 외에 다른 이유로 재산이 없는 사람들과, 옥에 갇힌 사람들, 이민 온 사람 등 한마디로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입니다.(184)
  • 1352 감사 기도(anaphora), 곧 감사와 축성의 기도로 성찬례 거행이 그 핵심과 정점에 이르게 된다.
  • 교회는 감사송(praefatio)으로 그분의 모든 업적, 곧 창조, 속량, 성화에 대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감사를 드린다. 이 때 전체 공동체는 천사들과 모든 성인의 천상 교회와 더불어 하느님께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하고 노래하면서 끊임없는 찬미를 드린다.
  • 1353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에서 교회는, 성부께서 성령(또는 성부의 강복하시는 능력(185) )을 빵과 포도주 위에 보내시어, 그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시고,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오직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청한다(일부 전례 전통들은 이 성령 청원 기도를 ‘기념’ 다음에 하기도 한다).
  • 성찬 제정 축성문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힘과 성령의 권능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곧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바쳐진 당신의 희생 제물을 성사적으로 현존하게 한다.
  • 1354 그 뒤에 이어지는 기념(anamnesis)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념하며, 우리를 성부와 화해시키려고 자신을 봉헌하신 성자를 성부께 드린다.
  • 전구(intercessiones)에서 교회는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이 하늘과 땅의 온 교회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목자인 교황과 교구 주교와 사제단과 부제들, 온 세상의 모든 주교가 그들의 교회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성찬례가 거행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 1355 주님의 기도와 빵을 쪼갠 뒤 영성체(Communio)에서 신자들은 ‘하늘의 빵’과 ‘구원의 잔’,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요한 6,51) 당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 이 빵과 포도주는 옛 표현대로 “축성되었기”(186) 때문에, 우리는 이 음식을 성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가르치는 진리를 믿고, 죄의 용서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사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여기에 참여할 자격이 없습니다.(187)
  • V. 성사적인 희생 제사: 감사, 기념, 현존
  • 1356 그리스도인들이 초기부터, 다양한 시대와 전례들을 거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형태로 성찬례를 거행해 온 것은, 수난 전날 저녁에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25) 하신 주님의 명령에 우리가 매여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1357 우리는 주님의 희생 기념제를 거행하여 이 명령을 수행한다. 이를 행함으로써 우리는 성부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 곧 창조의 선물, 그리고 성령의 힘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를 성부께 드린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또 신비로이 현존하신다.
  • 1358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례를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 - 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
  • - 그리스도와 그 몸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
  • -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
  • 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
  • 1359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우리 구원의 성사인 성찬례는 창조 사업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찬미의 제사이기도 하다. 성찬의 희생 제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부께 바쳐진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만물과 인류 안에 만드신 좋고 아름답고 올바른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찬미의 제사를 그리스도를 통해 드릴 수 있다.
  • 1360 성찬례는 성부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창조와 속량과 성화로 이루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로, 교회가 드리는 찬미이다. 성찬례는 무엇보다도 ‘감사’를 의미한다.
  • 1361 성찬례는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미의 제사이기도 하다. 이 찬미의 제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찬미와 전구에 신자들을 결합시키신다. 이로써 성부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봉헌된다.
  •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
  • 1362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며, 그분의 몸인 교회의 전례 안에서 그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현재화하고 성사적으로 봉헌한다. ‘감사 기도’의 각 양식들 안에는 성찬 제정의 말씀 후에 아남네시스 또는 기념이라고 부르는 기도가 있다.
  • 1363 성서적 의미의 기념은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것이다.(188) 이러한 사건들을 전례적으로 기념할 때, 그 사건들은 어떤 방식으로 현재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해방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파스카를 기념할 때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은 믿는 이들의 기억 속에 현존하게 되고, 그 사건에 삶을 일치시키도록 한다.
  • 1364 신약 성경에서는 이 기념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성찬례를 거행할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억하며, 이 파스카는 현재화한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언제나 현재적인 것으로 존속한다.(189)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신’(1코린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190)
  • 1365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것이므로 희생제사이기도 하다. 성찬례가 지닌 제사적 성격은 성찬 제정 말씀, 곧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바로 그 몸과,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마태 26,28)를 성찬례에서 주신다.
  • 1366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고, 이를 기념하며, 그 결과를 실제로 적용시키기 때문에 희생 제사이다.
  • 우리 하느님이시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속량을 실현하시려고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중개자로서 돌아가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단 한 번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셨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으로 그 사제직이 끝나서는 안 되었으므로(히브 7,24.27), “잡히시던 날 밤”(1코린 11,23) 최후의 만찬에서 사랑하는 당신 신부인 교회에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눈에 보이는 제사를 남겨 주고자 하셨다. 그 제사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적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191)
  • 1367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례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이다. “제물은 유일하고 동일하며, 그때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셨던 분이 지금 사제의 직무를 통해서 봉헌하시는 바로 그분이시다. 단지 봉헌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192) “십자가 제단 위에서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봉헌하신’ 저 그리스도께서 그 똑같은 제사를, 미사로 거행되는 이 신적 희생 제사에서 피 흘림 없이 제헌하고 계시기 때문에……이 희생 제사는 참으로 속죄의 제사이다.”(193)
  • 1368 성찬례는 교회의 희생 제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 머리와 함께 봉헌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 교회는 성부께 드리는 그분의 전구와 결합된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신비체의 지체들의 제사이기도 하다.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며,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 제대 위에서 바치는 그리스도의 제사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의 봉헌과 결합될 가능성을 준다.
  • 지하 묘지(카타콤바)에서 흔히 교회는 두 팔을 널리 펴 들고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팔을 벌리신 그리스도와 같이, 교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며 전구한다.
  • 1369 온 교회는 그리스도의 봉헌과 전구에 결합된다. 교회 안에서 베드로의 직무를 맡은 교황은 모든 성찬례의 거행과 결합되어, 성찬례에서 보편 교회가 지닌 일치의 표지와 봉사자라고 일컬어진다. 사제가 성찬례를 집전하더라도, 그 성찬례는 지역 주교의 책임 아래 집전되는 것이다. 주교가 사제단 안에서 부제들의 보좌를 받으며 개별 교회를 주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찬례 중에 주교의 이름을 부른다. 또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위하여 그 공동체와 함께 성찬의 제사를 드리는 모든 사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 주교나 주교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주재하여 행하는 성찬례만이 합법적인 것이다.(194)
  • 신자들의 신령한 제사는 사제의 직무를 통하여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되며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바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사제들의 손을 통하여 온 교회의 이름으로 성찬례 안에서 피 흘림 없이 성사적으로 봉헌된다.(195)
  • 1370 아직 이 세상에 있는 지체들뿐 아니라 이미 하늘의 영광 중에 있는 지체들도 그리스도의 봉헌에 결합된다.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을 기억하고 또 그분들과 일치하여 성찬의 제사를 드린다. 성찬례 중에 교회는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 서서 그리스도의 봉헌과 전구에 결합된다.
  • 1371 성찬의 제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196) 죽은 신자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 이 몸을 아무 곳에나 묻어 다오. 이 몸 때문에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것은 오직 너희가 있을 그곳의 주님의 제대에서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197)
  • 우리는 [감사 기도에서] 잠든 거룩한 교부들과 주교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잠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거룩하고 경외스러운 희생 제물이 여기 계시므로, 그들을 위해 바치는 간절한 기도가 영혼들에게 매우 큰 유익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인이라고 해도, 죽은 이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간구할 때, 우리는……우리 죄 때문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도, 우리도 너그럽게 대해 주시도록 청합니다.(198)
  • 1372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찬례에서 거행하는 구세주의 제사에 점점 더 완전하게 참여하도록 우리를 독려하는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요약하였다.
  • 온전히 속량된 이 도성, 성도들의 모임과 공동체가 대사제를 통하여 보편적 희생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된다. 이 대사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를 위해 수난으로 자신을 바치기까지 하시어 우리를 그토록 위대한 머리의 몸이 되게 하셨다.……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제사이다.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로마 12,5)인 것이다. 교회는 이 제사를 신자들이 잘 알고 있는 제대의 성사로 끊임없이 재현하며, 교회가 봉헌하는 그것 안에서 교회 자체가 봉헌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199)
  •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
  • 1373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로마 8,34)께서는 다양하게 교회에 현존하신다.(20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교회의 기도 안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마태 18,20)에,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201) 몸소 세우신 성사들 안에, 미사성제와 사제의 인격 안에 계신다. 그리고 “특별히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202)
  • 1374 성체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식은 독특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모든 성사 위에 들어 높이시고 “영성 생활의 완성과 모든 성사가 지향하는 목적으로”(203) 삼으신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하나 된 몸과 피가,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204) “이 현존이 ‘실재적’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다른 현존 방식이 실재적이 아니라는 배타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현존이 탁월하게 실체적이라는 의미이다. 분명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또 완전하게 현존하신다.”(205)
  • 1375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 교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효력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예컨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봉헌물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말을 하지만, 그 말의 효력과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이는 내 몸이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킵니다.(206)
  • 암브로시오 성인도 이 변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는 자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축성된 것임을 믿고, 축복을 통해서 본성까지도 변하므로 축성의 힘이 자연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믿읍시다…….(207)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무에서 만드신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그 말씀이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던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사물에 처음으로 본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 본성을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208)
  • 1376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톨릭 신앙을 요약하여 선포한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내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교회는 항상 이러한 확신을 지녀 왔으며 본 공의회는 이를 다시금 선포하는 바이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불러 왔다.”(209)
  • 1377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신다.(210)
  • 1378 성체 공경. 우리는 미사 전례 중에 특히 무릎을 꿇거나, 주님에 대한 흠숭의 표시로 깊이 몸을 숙여 절함으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표현한다. “가톨릭 교회는 성체성사에 바쳐야 할 이 흠숭 예절을 미사 중에는 물론이고 미사가 끝난 뒤에도 실천하여 왔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축성된 제병(성체)을 아주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장엄한 흠숭을 위하여 신자들에게 현시하며, 또 백성들의 기쁨에 찬 행렬 중에 함께 모심으로써 이 흠숭 예절을 실천한다.”(211)
  • 1379 거룩한 안치소(감실)는 본래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모시고 갈 성체를 품위 있게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교회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침묵 속에 경배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감실은 성당의 특별히 품위 있는 장소에 두어야 하며, 거룩한 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
  • 1380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특별하게 당신 교회에 현존하기를 원하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시적인 형상으로는 당신 제자들을 떠나실 것이었으므로, 성사적으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려고 하셨으므로, 당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정도로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그 사랑의 기념을 우리가 간직하기를 원하셨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212) 분으로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계속 신비롭게 머물러 계시며, 이러한 사랑을 표현하고 전해 주는 표징 안에 계신다.
  • 교회와 세상은 마땅히 성체를 공경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숭 안에서, 신앙으로 충만하며, 중대한 잘못과 세상의 죄를 속죄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드리는 묵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을 거부하지 맙시다. 우리의 흠숭이 중단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213)
  • 1381 “토마스 성인은 그리스도의 참다운 몸과 그리스도의 참다운 피가 이 성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한 신앙으로써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치릴로 성인은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라는 루카 복음 22장 19절의 말씀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말이 참말인지를 의심하지 말고 차라리 신앙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진리이신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214)
  •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215)
  • VI. 파스카 잔치
  • 1382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영속되는 제사적 기념이며, 동시에 또 이와 분리할 수 없이,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이다. 그러나 성찬례 거행은 영성체를 통하여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내적인 친교를 전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영성체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다.
  • 1383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교회가 그 둘레에 모이는 제대는 한 신비가 지닌 두 가지 측면, 곧 주님께서 희생되신 제단과 주님의 식탁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제대가 상징하는 것이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해를 위해 바쳐진 제물로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천상 음식으로서 당신 신자들의 모임 가운데 현존해 계시는 것이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사실 그리스도의 제단이란 그리스도의 몸의 형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216) 하고 말했고, “제대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성체는 제대 위에 계신다.”(217) 고도 말했다. 전례는 수많은 기도들에서 이러한 희생 제사와 영성체의 불가분적 관계를 표현한다. 로마 교회는 감사 기도 제1양식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 전능하신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 거룩한 천사의 손으로 이 제물이 존엄한 천상 제대에 오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제대에서 성자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마다 하늘의 온갖 은총과 축복을 가득히 내려 주소서.(218)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 영성체
  • 1384 주님께서는 성체성사에서 당신을 받아 먹으라고 간절하게 초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 1385 우리는 이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 이 위대하고도 거룩한 순간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하여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양심 성찰을 권고한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 1386 이 위대한 성사 앞에서 신자는 겸손하게, 열렬한 신앙으로 백인대장의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219)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220) 그리고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거룩한 전례에서 신자들은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 오 하느님의 아드님, 오늘 당신의 신비한 만찬에서 성체를 모시게 해 주소서. 저는 주님의 비밀을 주님의 원수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주님께 유다의 입맞춤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그저 주님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서 저를 기억하소서.”(221)
  • 1387 이 성사를 받기 위한 적절한 준비로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정한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222) 몸가짐(행동, 복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님이 되시는 그 순간에 걸맞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을 나타내야 한다.
  • 1388 신자들이 마음 준비가 되어 있으면,(223) 미사에 참례할 때, 성체를 모시는 것이 성찬례의 의미에 합당한 것이다.(224) 공의회는 “사제의 영성체 후에 신자들이 같은 희생 제사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더욱 완전한 미사 참여는 크게 권장된다.”(225) 고 말한다.
  • 1389 교회는 신자들에게 “주일과 축일에 거룩한 전례에 참여”할 의무와,(226)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가능한 한 부활 시기에 고해성사로 준비를 하고 성체를 모실(227)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들에게 주일과 의무 축일에, 나아가 더 자주, 매일이라도 성체를 모실 것을 간곡히 권고한다.
  • 1390 그리스도께서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성사적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에, 빵의 형상으로만 하는 영성체로도 성체성사 은총의 모든 열매를 받을 수 있다. 라틴 교회에서는 사목적인 이유로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영성체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확립되었다. 그러나 “양형 영성체는 표징이라는 이유에서 가장 완전한 영성체 형태이다. 양형 영성체로써 성찬(聖餐)의 표징이 더욱 완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228) 이것이 동방 예법의 통상적 영성체 형태이다.
  • 영성체의 효과
  • 1391 영성체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증진시켜 준다.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얻는 주요한 효과는 예수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토대는 성찬의 잔치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 신자들이 주님의 축일에 성자의 몸을 받을 때, 그들은 천사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셨다!” 하고 말했던 것처럼, 생명의 보증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서로 선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부활이 주어진다.(229)
  • 1392 물질적 양식이 육체에 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영성체는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인 생명에 그 효과를 가져온다. “성령 안에서 생명을 얻고, 또 성령 안에서 생명을 주는”(230)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살을 받아 먹는 영성체는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새롭게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나그넷길의 양식인 성체로 양분을 받아야 하며, 우리가 죽을 때에는 이 양식을 노자로 받게 된다.
  • 1393 영성체는 우리를 죄에서 떼어 놓는다. 영성체로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피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
  • 우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합니다.(231) 우리가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은 곧 죄의 용서를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흐를 때마다 그것은 죄의 용서를 위하여 흐르는 것이니, 나는 그리스도께서 늘 내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언제나 그분을 받아 모셔야 합니다. 늘 죄를 짓는 나는 이 약을 언제나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232)
  • 1394 육체의 음식이 잃어버린 기력을 회복시키듯이, 성체는 일상생활에서 약해져 가는 사랑을 북돋아 준다. 그리고 이처럼 생기를 되찾은 사랑은 소죄를 없애 준다.(23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의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시고, 피조물에 대한 그릇된 애착을 끊고 당신 안에 뿌리내리게 하신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미사성제 중에 그분의 죽음을 기념할 때, 성령께서 오시어 우리 안에 사랑을 부어 넣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성령의 은총을 받아, 우리에게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되고, 우리도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기를 청합니다.……사랑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고 하느님을 위해서 삽시다.(234)
  • 1395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미래의 죽을죄에서 보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와 우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죽을죄를 지어 그분과 관계를 단절하기는 어렵게 된다. 그러나 성체성사는 죽을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죽을죄의 용서는 오로지 고해성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특징은 그것이 교회와 완전하게 일치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성사라는 점이다.
  • 1396 신비체의 일치: 성찬례는 교회를 이룬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된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를 결합시켜 하나의 몸, 곧 교회를 이루신다. 영성체는 세례로써 이미 교회와 이룬 이 결합을 새롭게 하고, 굳건하게 하며, 깊게 한다. 세례 때 우리는 한 몸을 이루라는(235) 부름을 받았다. 성찬례는 이 부름을 이행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이고 지체라면, 주님의 식탁에 놓여 있는 것은 여러분의 성사이므로 여러분의 성사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는 것에 대해 “아멘.”(“예, 그렇습니다.”)이라고 대답하고, 거기에 동의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대의 ‘아멘’이 진실한 것이 되게 하십시오.(236)
  • 1397 성체성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투신하게 한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되게 받기 위해서는 그분의 형제들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한다.(237)
  • 그대는 주님의 피를 맛보았으면서도 그대의 형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이 식탁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그대의 음식을 함께 나눌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바로 이 식탁 자체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를 모든 죄에서 구해 주시고 이 식탁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더 자비로워지지 않았습니다.(238)
  • 1398 성체성사와 그리스도인의 일치. 이 신비의 위대함 앞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외친다. “오, 자비의 성사여, 오, 일치의 표징이여, 오, 사랑의 끈이여!”(239) 주님의 식탁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교회의 분열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질수록,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날이 다시 오도록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더욱 간절해진다.
  • 1399 가톨릭 교회와 온전하게 일치되어 있지 않은 동방 교회들도 크나큰 사랑으로 성찬례를 거행한다. “동방 교회들은 비록 (가톨릭 교회와)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240) 따라서 “적절한 상황에서 교회 권위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지는 어떤 성사 교류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것이다.”(241)
  • 1400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교단들은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242)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교회는 이들 교단들과 성찬례 공동 거행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교단들도 “거룩한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상징한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243)
  • 1401 교구장의 판단에 따라 절박한 필요성이 생겼을 때, 가톨릭 성직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지 않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사(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를 베풀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진하여 성사를 청해야 한다. 곧 이 성사들에 대하여 가톨릭적 신앙을 표명하고 올바른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244)
  • VII. 성찬례 - “다가올 영광의 보증”
  • 1402 교회는 옛 기도문에서 성찬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환호한다. “오, 거룩한 잔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며, 그분의 수난을 기념하고 은총으로 가득 차며, 다가올 영광의 보증을 받는도다.”(245) 성찬례는 주님 파스카의 기념이고, 우리가 제대에서 받아 모시는 성체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은총과 축복”(246) 을 가득히 받으므로, 성찬례는 천상의 영광을 미리 누리는 것이기도 하다.
  • 1403 최후의 만찬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시선을 하느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파스카의 완성으로 향하게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태 26,29).(247) 교회는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이 약속을 기억하며 “오실 분”(묵시 1,4)께 눈길을 돌린다. 교회는 “마라나 타!”(1코린 16,22),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하고 그분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은총은 오고 이 세상은 지나가기를!”(248)
  • 1404 교회는 주님께서 지금도 당신의 성체성사 안에 오시고, 성체 안에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현존은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249) 성찬례를 거행하며 기도한다. “저희도 거기서(당신 나라에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250)
  • 1405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251) 이 큰 희망에 대하여 성찬례보다 더 확실한 보증과 분명한 징표는 없다. 실로 이 신비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252) “영생을 위한 약이요 죽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며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는 빵을 나누어 먹는다.”(253)
  • 간추림
  • 140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그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1-56).
  • 1407 성찬례는 교회 생활의 핵심이며 정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성찬례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성부께 단 한 번 영원히 봉헌하신 찬미와 감사의 제사에 교회와 교회의 모든 지체를 참여시키시기 때문이다. 이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인 교회에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
  • 1408 성찬례 거행은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선포, 하느님 아버지의 모든 은혜와 특히 아드님을 주신 데 대한 감사, 빵과 포도주의 축성, 그리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전례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요소들은 하나이며 동일한 예배 행위를 이룬다.
  • 1409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한다. 곧,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 업적에 대한 기념인 것이다. 이 구원 업적은 전례 행위로 현재화한다.
  • 1410 새 계약의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제들의 직무를 통해서 활동하심으로써 성찬의 희생 제사를 드리신다. 그뿐만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는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희생 제사의 제물이 되신다.
  • 1411 유효하게 성품을 받은 사제들만이 성찬례를 집전할 자격이 있고,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도록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수 있다.
  • 1412 성체성사의 본질적인 표지는 빵과 포도주이다. 사제는 이 표지들에 대한 성령의 강복을 기원하며,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하신 축성의 말씀을 선포한다.
  • 1413 축성을 통해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실체 변화가 이루어진다.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는 살아 계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현존하신다.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분의 영혼과 천주성과 함께 현존한다.(254)
  • 1414 희생 제사로서 성찬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도 바치는 것이며, 하느님께 영적이거나 현세적인 은혜를 얻기 위해서도 바치는 것이다.
  • 1415 영성체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고자 하는 사람은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스스로 의식한다면, 먼저 고해성사로 죄의 용서를 받고 나서야 성체를 모실 수 있다.
  • 1416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거룩한 영성체는 주님과 이루는 친교를 증대시키며, 소죄를 용서해 주고, 대죄에서 보호해 준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굳건해지므로,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강화한다.
  • 1417 교회는 신자들이 성찬례 거행에 참여할 때마다 성체를 모실 것을 간곡히 당부하며,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성체를 모실 의무를 부과한다.
  • 1418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체성사 안에 계시므로 그분을 흠숭의 예로 공경해야 한다. 성체 조배를 할 때, “우리 주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표하고, 흠숭의 의무를 이행한다.”(255)
  • 1419 이 세상에서 성부께로 건너가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 곁에서 누릴 영광의 보증을 주신다.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심을 닮고, 이 세상의 순례 길에서 늘 힘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이미 천상 교회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과 결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