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성사의 경륜
- 제 2 부 교회의 일곱 성사
- 제 2 장 치유의 성사들
- 제4절 고해성사(告解聖事)
제 2 부 교회의 일곱 성사
- 1422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은 하느님께 끼친 모욕에 대하여 그분의 자비로 용서를 받으며, 또한 동시에 범죄로 상처를 입혔던 교회, 사랑과 모범과 기도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와 화해를 한다.”(3)
- I. 이 성사는 어떻게 불리는가-
- 1423 이 성사는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호소와(4) 죄 때문에 떠나 있던 아버지께 돌아옴을(5) 성사적으로 실현하므로 회개의 성사라고 불린다.
- 이 성사를 참회의 성사라고 부르는 까닭은, 죄인인 그리스도인의 회개와 참회와 보속(補贖)이라는 개인적이며 교회적인 과정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424 이 성사를 고백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제 앞에서 죄를 자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성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 깊은 의미로는 이 성사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죄인에 대한 자비를 알아 뵙고 찬미하는 하나의 ‘고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이 성사를 용서의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제의 성사적 사죄(赦罪)를 통하여, 참회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용서와 평화”(6) 를 주시기 때문이다.
- 이 성사는 화해시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죄인에게 베풀어 주기 때문에 화해 성사라고 부른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 하신 예수님의 요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 II. 세례를 받은 뒤에 고해성사가 왜 필요한가-
- 1425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11).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은(7)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 선물의 위대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성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1요한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희의 죄를 용서하소서.”(루카 11,4) 하고 기도하라고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며,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과 우리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밝히셨다.
- 1426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에페 5,27) 모습으로 서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 돌아서는 회개, 세례를 통한 새로운 탄생, 성령을 받음, 양식으로 받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우리를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하여 당신 앞에 설 수 있게”(에페 1,4)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여 받은 새 생명이 인간 본성의 불안정함과 나약함을 없앤 것은 아니며, 전통적으로 사욕이라고 부르는 죄로 기우는 경향을 없앤 것도 아니다. 세례 받은 사람에게 사욕이 남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싸움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8) 이 싸움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가는 회개를 위한 싸움이다.(9)
- III. 세례 받은 이들의 회개
- 1427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호소하신다. 이 호소는 하느님 나라 선포의 핵심 요소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는 우선적으로 아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한다. 그러므로 세례는 처음으로 근본적 회개가 이루어지는 으뜸 자리다. 사람들은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10) 악을 버리고 구원을 얻게 된다. 곧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의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 1428 회개하라는 그리스도의 호소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안에서도 계속 들려온다. 이 제2의 회개는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므로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하는”(11) 온 교회의 부단한 임무다. 이 회개의 노력은 단순히 인간의 일만은 아니다. 이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12)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응답하도록 은총으로 이끌려 고무된(13) “뉘우치는 마음”의(14) 움직임이다.
- 1429 베드로 사도가 자기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다음 회개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예수님의 한없이 자비로운 눈길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했으며,(15)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에는 당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세 번 확언하게 하신다.(16) 제2의 회개에는 공동체적 차원도 있다. 이는 어떤 교회 전체에 대해 “회개하여라!”(묵시 2,5.(16) 하시는 주님의 호소에서 드러난다.
- 암브로시오 성인은 두 가지 회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교회 안에는 “물과 눈물이 있으니 세례의 물과 참회의 눈물이다.”(17)
- IV. 내적 참회
- 1430 이미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회개하고 참회하라는 예수님의 호소는 외적 행위, 곧 “자루 옷과 재”, 단식과 고행이 아니라, 마음의 회개, 내적 참회가 그 우선 목표이다. 마음의 회개 없는 참회 행위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짓된 행위에 불과하다. 반대로 내적 회개는 이러한 태도를 가시적 표지와 속죄의 행위로 표현하게 한다.(18)
- 1431 내적 참회는 삶 전체의 근본적 방향 전환이며,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은 악행을 혐오하고 악에서 돌아서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내적 회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믿고 생활을 바꾸겠다는 의향과 결심을 포함한다. 이러한 마음의 회개에는 교부들이 “영혼의 고뇌”, “마음의 회한”이라고 했던 구원에 유익한 고통과 슬픔이 따른다.(19)
- 1432 인간의 마음은 무디고 완고하다. 하느님께서 새 마음을 주셔야 한다.(20) 회개는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다.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애가 5,(21)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롭게 시작할 힘을 주신다. 우리 마음은 하느님 사랑의 위대하심을 알게 됨으로써 죄의 두려움과 무게 때문에 떨게 되고, 죄를 지어 하느님을 모욕하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의 죄로 찔리신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회개하게 된다.(21)
-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보고, 그 피가 성부께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읍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흘리신 그 피는 온 세상에 회개의 은총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22)
- 1433 주님의 부활 후부터 성령께서는 죄에 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신다. 죄는 세상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을 믿지 않는 것이다.(23) 그런데 죄를 밝혀 주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참회와 회개의 은총을 주시는 ‘변호자’(24) 이시기도 하다.(25)
- V. 그리스도인 생활의 다양한 참회 형태
- 1434 그리스도인의 내적 참회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성경과 교부들은 그중에서 특히 단식, 기도, 자선의 세 가지 형태를 강조한다.(26) 이 셋은 각각 자신에 대한 회개, 하느님에 대한 회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회개를 나타낸다. 성경과 교부들은 죄의 용서를 얻는 방법으로, 세례와 순교를 통한 근본적인 정화 외에, 이웃과 화해하려는 노력, 참회의 눈물, 이웃의 구원에 대한 관심,(27) 성인들의 전구, 그리고 “많은 죄를 덮어 주는”(1베드 4,8) 사랑의 실천 등을 들고 있다.
- 1435 일상생활에서 회개는 화해의 행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정의의 실천과 타인의 권리 옹호,(28) 형제들에게 잘못을 고백함, 형제적인 충고, 생활에 대한 반성, 양심 성찰, 영적 지도, 고통을 받아들임, 정의를 위해 박해를 견딤 등으로 실현된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회개의 길이다.(29)
- 1436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일상적인 회개와 참회는 성체성사가 그 원천이며 양식이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은 성체로 양육되고 굳세어진다. 성체는 “날마다 짓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고 죽을죄에서 보호해 주는 해독제이다.”(30)
- 1437 성경 읽기, 시간 전례와 주님의 기도, 모든 참된 예배와 신심 행위는 우리 마음에 회개와 참회의 정신을 되살려 주고, 죄의 용서를 받는 데 도움이 된다.
- 1438 전례력에서 참회의 날과 시기(사순 시기와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매주 금요일)는 교회가 참회를 특별히 실행하는 때이다.(31) 이 시기는 영성 수련, 참회 예절, 참회의 표시인 순례, 단식과 자선 같은 자발적인 절제, 형제적 나눔(자선 활동과 선교 활동) 등을 위하여 특히 적절한 때이다.
- 1439 예수님께서는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회개와 참회의 과정을 잘 묘사하시는데, 이 비유의 중심인물은 ‘자비로운 아버지’이다.(32) 거짓 자유의 미혹, 아버지의 집을 떠남, 아들이 재산을 탕진한 다음에 빠진 극도의 비참, 돼지를 칠 수밖에 없게 된 수치, 더 나아가 돼지가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주림, 재산을 탕진해 버린 데 대한 반성, 뉘우침과 아버지 앞에 가서 잘못을 고백하겠다는 결심, 집으로 돌아옴, 아버지의 너그러운 환영, 아버지의 기쁨 등, 이러한 것들이 회개하는 과정의 특징적인 모습들이다. 아름다운 옷과 가락지와 즐거운 잔치는 하느님과 교회라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의 생명인 깨끗하고 품위 있고 기쁨 가득한 새 생활의 상징들이다. 당신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를 아시는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아버지의 끝없는 자비를 이렇게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우리에게 알려 주실 수 있었다.
- VI. 참회와 화해의 성사
- 1440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교회와 화해를 이루게 하며, 고해성사는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한다.(33)
- 하느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신다
- 1441 하느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신다.(3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마르 2,10)고 말씀하셨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35) 하시면서 이 신적 권한을 행사하신다. 나아가 당신의 신적 권위로 이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며(36) 당신의 이름으로 행사하게 하신다.
- 1442 그리스도께서는 온 교회가 기도와 생활과 실천으로써, 몸소 당신 피로 값을 치르고 얻어 주신 용서와 화해의 표지와 도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의 행사는 사도직을 맡은 이들에게 위임하셨다. 사도들은 “화해의 직분”(2코린 5,18)을 받았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견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하고 간곡히 권유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다.
- 교회와 이루는 화해
- 1443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이 용서의 결과도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죄 때문에 멀어졌거나 추방되었던 그들을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안으로 다시 받아들이셨다. 이 사실을 보여 주는 명백한 표지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당신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게 하시고, 더구나 그들의 식탁에 함께 앉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느님의 용서와,(37) 하느님 백성의 품으로 돌아오는 복귀를(38) 동시에 표현하는 놀라운 행위이다.
- 1444 주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고유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시면서, 죄인들을 교회와 화해시키는 권한도 주신다. 사도들이 지닌 교회 차원의 이 임무는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엄숙한 말씀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었음이 분명하다(마태 18,18; 28,16-20 참조).”(39)
- 1445 “매고 푼다”는 말의 의미는, 교회가 그 친교에서 제외시키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친교에서도 제외될 것이고, 교회가 친교 안에 다시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당신과 이루는 친교 안에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교회와 이루는 화해와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는 분리될 수 없다.
- 용서의 성사
- 1446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모든 지체, 누구보다도 우선 세례 후 대죄에 떨어져 세례로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의 친교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을 위하여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의화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어버린 난파 후 두 번째 구명대”(40) 라고 소개한다.
- 1447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교회가 주님께 받은 이 권한을 행사하는 구체적인 형태는 많이 변했다. 처음 수 세기 동안은 세례를 받은 뒤에 특수한 대죄(예를 들어 우상 숭배, 살인 또는 간통죄)를 지은 경우의 화해는 매우 엄중한 징계를 거쳐야 했다. 이에 따라,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기 전에, 흔히 여러 해 동안, 공적인 보속을 해야만 했다. (몇몇 대죄에만 해당되던) 이러한 ‘참회자 부류’에 속하는 것이 허용되는 일이 드물었고, 어떤 지방에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이러한 일이 가능했다. 7세기에 동방 수도회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아일랜드의 선교사들이 이른바 ‘사적인’ 속죄의 절차를 유럽 대륙에 전하였다. 이는 교회와 화해를 하기 전에 오랫동안 공적인 속죄 행위를 요구하던 종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 성사는 참회하는 사람과 사제 사이에서 비밀리에 행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관행은 반복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었으며, 이 성사를 정기적으로 자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는 한 번의 성사 거행으로 대죄와 소죄를 한 번에 용서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대체로 이러한 형태의 고해성사를 오늘날까지 행해 오고 있다.
- 1448 오랜 세월 동안 변화를 겪어 온 이 성사의 규칙과 거행을 통틀어 볼 때, 불변하는 기본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한결같이 두 핵심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성령의 감도로 회개하는 사람의 행위, 곧 통회와 고백과 보속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중개를 통한 하느님의 행위이다. 곧 교회는 주교와 사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해 주고, 보속의 방법을 정해 주고, 죄인을 위해 기도하며, 그와 함께 속죄한다. 이렇게 해서 죄인은 치유되고 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회복하게 된다.
- 1449 서방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죄경은 이 성사의 근본적인 요소들을 표현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용서의 근원이시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써, 교회의 기도와 직무 수행을 통하여 죄인과 화해를 이루신다.
-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 당신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시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의 직무 수행으로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41)
- VII. 참회자의 행위
- 1450 “죄인은 회개하기 위하여 기꺼이 다음과 같은 참회의 행위가 필요하다. 마음에는 통회가, 입에는 고백이, 행위에는 온전한 겸손과 유효한 보속이 있어야 한다.”(42)
- 통회
- 1451 참회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행위는 통회(痛悔)이다. 통회는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것이다.”(43)
- 1452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통회를 ‘완전한’ 통회(사랑의 통회)라 한다. 이 통회는 소죄를 용서해 주며, 가능한 한 속히 고해성사를 받겠다는 굳은 결심이 포함된 경우 죽을죄도 용서받게 해 준다.(44)
- 1453 ‘불완전한’ 통회(뉘우침)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께서 일으켜 주시는 것이다. 이 통회는 죄의 추악함이나 죄인을 위협하는 영벌과 다른 벌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다(두려움의 통회). 이러한 양심의 동요는 은총의 감도 아래 성사로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완성되는 내적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불완전한 통회는 그 자체로써는 대죄의 용서를 얻지 못하며, 고해성사로 용서받도록 준비시킬 뿐이다.(45)
- 1454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 성찰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적당한 성경 본문들은 십계명에서, 그리고 복음서와 사도들의 서한 가운데 윤리적인 부분, 예컨대 산상 설교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46)
- 죄의 고백
- 1455 죄의 고백(자백)은 단순히 인간적인 면에서도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며, 다른 사람들과 화해하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고백으로 자기가 지은 죄를 직시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진다. 그리고 책임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친교에 다시 마음을 열게 되어 새로운 미래가 가능해진다.
- 1456 사제에게 하는 고백은 고해성사의 핵심 부분이다. “참회자들이 고백할 때에는 진지하게 성찰한 뒤에 알아낸 모든 죽을죄들을 열거해야 한다. 그 죄들이 매우 은밀한 것이고 십계명의 마지막 두 계명만을 범한 것일지라도 그러하다.(47) 때로 이 죄들은 영혼에 더욱 심한 상처를 입히며, 공공연하게 지은 죄들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48)
-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기억나는 모든 죄를 고백하려고 애쓸 때, 자비로우시며 용서하시는 하느님 앞에 그 죄들을 모두 내놓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와는 달리 그중 몇몇을 고의로 숨기는 사람들은 사제를 통하여 용서해 주실 선하신 하느님께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만일 환자가 부끄러워서 자신의 상처를 의사에게 감춘다면, 의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치료할 수 없기”(49) 때문이다.
- 1457 교회의 계명에 따라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뒤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대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50) 죽을죄를 지었음을 의식하는 사람은 크게 통회를 했다고 해도, 성체를 모셔야 할 중대한 이유가 있고 또 고해 사제에게 갈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51) 먼저 고해성사로 사죄를 받지 않은 채 성체를 모셔서는 안 된다.(52) 어린이들은 첫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53)
- 1458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잘못(소죄)도 고백하도록 교회는 크게 장려한다.(54) 왜냐하면 정기적으로 소죄를 고백하는 것은 양심을 기르고, 나쁜 성향과 싸우며,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받고, 성령의 생명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 성사를 통해서 자비로우신 성부의 은총을 더욱 자주 받으면 성부와 같이 자비로워지는 힘을 얻는다.(55)
-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의 죄를 질책하시는데, 그대도 자신의 죄를 질책한다면 그대는 하느님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과 죄인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그대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대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죄인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을 구원하시도록 그대가 만든 것을 부수십시오.……그대가 만든 것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자신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이기에, 그대의 선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시작입니다. 그대는 진리를 행하고 빛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56)
- 보속
- 1459 많은 죄들이 이웃에게 해를 끼친다. 이를 갚기 위해서 가능한 일들을 해야 한다(예를 들어 훔친 물건을 되돌려 주는 일, 모함당한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 손해를 배상하는 일 등). 단순한 정의도 이런 일을 요구한다. 그러나 죄는 결국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약하게 하며, 하느님에 대한 관계, 이웃에 대한 관계를 해친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 주지는 못한다.(57)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하여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속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補贖)이라고 부른다.
- 1460 고해 사제는 고백자에게 보속을 정해 줄 때,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그의 영적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보속은 가능한 한 지은 죄의 경중과 특성에 맞아야 한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 행위, 이웃을 위한 봉사,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보속들은 우리가 우리 죄 때문에 한 번에 영원히 속죄하신 그리스도를(58) 닮도록 도와준다. 보속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기”(로마 8,17)(59) 때문에 우리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해 준다.
- 그러나 우리의 보속, 곧 우리 죄 때문에 치르는 보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 처지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60) 이처럼 사람은 결코 자신을 영광스럽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모든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61) 보속한다. 이 열매는 그리스도에게서 힘을 얻고,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부께 바쳐지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받아들여진다.(62)
- VIII. 고해성사의 집전자
- 1461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도들에게 화해의 직무를 맡기셨으므로,(63)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주교들의 협력자인 사제들은 이 직무를 계속 수행한다. 실제로 주교와 사제들은 성품성사의 힘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게 된다.
- 1462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느님과 화해할 뿐 아니라 교회와도 화해한다. 그러므로 개별 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인 주교는 예로부터 화해의 주된 권한과 직무를 가진 사람으로 당연히 인정되어 왔다. 주교는 고해성사 규율의 감독이다.(64) 주교의 협력자인 사제들은 교회법을 통해서 주교나 (또는 수도회 장상이나) 교황에게 위임을 받아 고해성사의 직무를 수행한다.(65)
- 1463 특히 중대한 어떤 죄들에 대해서는 가장 엄한 교회의 벌인 파문이 내려진다. 파문을 당하면 성사를 받지 못하며, 일정한 교회 활동을 하지 못한다.(66) 이러한 파문을 푸는 권한은 교회법에 따라 그 지역의 주교와 교황, 또는 이들에게서 권한을 받은 사제들만이 가지고 있다.(67) 파문된 사람이 죽을 위험에 있을 때에는,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사제가 모든 죄와 파문에서 그를 풀어 줄 수 있다.(68)
- 1464 사제는 신자에게 고해성사를 받도록 권고해야 하며, 신자가 합리적으로 이 성사를 요청할 때마다 언제나 기꺼이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69)
- 1465 고해성사를 거행할 때 사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상처를 싸매 주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탕자를 기다리다 맞아들이는 아버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고 자비로운 판결을 내리는 의로운 재판관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제는 죄인에 대한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표지이며 도구이다.
- 1466 고해 사제는 하느님의 용서를 마음대로 다루는 주인이 아니라 종이다. 이 성사의 집전자는 그리스도의 뜻과 사랑에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70) 그는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인간사에 대한 경험도 터득해야 하며, 죄에 떨어진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고해 사제는 진리를 사랑하고 교회의 교도권에 충실해야 하며, 고백하는 사람을 치유와 완전한 성숙으로 인내로이 인도해야 한다. 그는 고백자를 자비로우신 주님께 맡겨 드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속죄해야 한다.
- 1467 이 직무는 미묘하고 중대한 것이며,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므로, 교회는 고백을 듣는 모든 사제가 고백자에게서 들은 죄에 대해 절대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매우 준엄한 벌을 받는다고 천명한다.(71) 고해 사제는 고해를 통하여 고백자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인용해서도 안 된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이 비밀을 ‘성사의 봉인’(고해 비밀)이라고 한다. 고백자가 사제에게 말한 것은 성사로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 IX. 고해성사의 효과
- 1468 “고해성사의 완전한 효능은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켜 주고 지고한 우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하게 해 주는 것이다.”(72) 그러므로 이 성사의 목적과 효과는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이다. 통회하는 마음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양심의 평화와 안심이 따르고, 힘있는 영적 위로가 더해진다.”(73) 실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고해성사는 참된 ‘영적 부활’과 하느님 자녀로서 지니는 품위와 삶의 선익을 회복시켜 주며,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하느님과 나누는 사랑이다.(74)
- 1469 이 성사는 우리를 교회와 화해시켜 준다. 죄는 형제적 친교를 약화시키거나 파괴한다. 고해성사는 그 친교를 바로잡고 회복시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그 사람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가 지은 죄 때문에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75) 성도들과 친교를 회복하거나 이를 확인받은 죄인은, 아직 나그넷길에 있거나 이미 천상 고향에 있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살아 있는 모든 지체와 영적인 자산을 나눔으로써 굳건해진다.(76)
- 하느님과 하는 이 화해는 죄가 만들어 냈던 균열을 다시 메우는 여러 수준의 다른 화해에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용서받은 참회자는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과 화해하며, 거기서 참된 자아를 회복합니다. 그다음에, 그는 자기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친 형제들과도 화해하게 됩니다. 그는 교회와도 화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온 창조계와도 화해하게 되는 것입니다.(77)
- 1470 이 성사에서 죄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심판에 맡겨 드림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 받게 될 심판을 앞당겨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현세 생활에서 영원한 생명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며, 대죄를 지은 채로는 들어갈 수 없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회개밖에 없기 때문이다.(78) 죄인은 참회와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돌아섬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24).
- X. 대사
- 1471 교회 안의 대사(大赦)에 대한 교리와 관습은 고해성사의 효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 대사란 무엇인가-
- “대사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79)
- “대사는 죄 때문에 받게 될 잠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 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80) “어느 신자든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대사를 얻을 수 있고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81)
- 죄에 대한 벌
- 1472 교회의 이러한 교리와 관습을 이해하려면 죄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죄는 우리에게서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를 박탈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하는데, 이처럼 영원한 생명을 상실하는 것을 죄의 ‘영벌’이라고 한다. 한편 모든 죄는, 소죄까지도, 피조물들에 대한 불건전한 집착을 초래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나 죽은 뒤에 연옥이라고 부르는 상태의 정화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정화로 이른바 죄의 ‘잠벌’에서 벗어난다. 이 두 가지 벌을 하느님께서 외부에서 가하시는 일종의 복수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열렬한 사랑에서 나오는 회개는 죄인을 온전한 정화에 이르게 하여 아무런 벌도 남지 않게 할 수 있다.(82)
- 1473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맺는 친교를 회복하면 죄의 영벌은 면제되지만 잠벌은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은 갖가지 고통과 시련을 인내로이 견디고, 때가 되면 죽음을 차분한 마음으로 맞음으로써 죄의 잠벌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비와 자선의 행위와 더불어 기도와 여러 속죄 행위로 “묵은 인간”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83) 갈아입도록 힘써야 한다.
-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 1474 자신의 죄를 깨끗이 정화하고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은 외롭지 않다. “하느님 자녀 각자의 생명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초자연적 단일성 안에서, 마치 신비로운 한 인격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생명과 놀랍게 연결되어 있다.”(84)
- 1475 성인들의 통공 안에는 “신자들 ─ 이미 천상 고향에 이른 사람들, 연옥에서 속죄하고 있는 사람들, 아직 지상에서 순례하고 있는 사람들 ─ 사이에 변함없는 사랑의 유대와 모든 선의 풍부한 나눔이 있다.”(85) 이러한 놀라운 교류로, 어느 한 사람의 죄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었던 손해보다는, 한 사람의 거룩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선익이 훨씬 더 크게 된다. 따라서 성인들의 통공에 의지하면 통회하는 죄인이 죄의 벌에서 더 일찍, 더 효과적으로 정화될 수 있다.
- 1476 우리는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이 영적인 재산을 교회의 보화라고 부른다. “이 보화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쌓이는 물질적인 부요와 같은 어떤 재물의 총화가 아니라,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를 이루도록 바쳐진 우리 주 그리스도의 속죄와 공로이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무한하고 무궁한 가치가 있는 보화이다.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는 속량 공로가 충만하다.”(86)
- 1477 “이 보화에는 무엇보다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기도와 선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그들은 모두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그분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며 성부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얻었고 신비체의 일치 안에서 형제의 구원에 협력하였다.”(87)
-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대사를 얻는다
- 1478 교회를 통하여 대사를 얻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매고 푸는 권한으로 그리스도인을 위해 중개하여, 그의 죄로 말미암은 잠벌의 사면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얻도록,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의 보고를 그에게 열어 준다. 이처럼 교회는 그 신자를 도울 뿐 아니라, 신심 행위와 참회와 자선을 행하도록 그를 격려하기도 한다.(88)
- 1479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잠벌을 사면해 주는 대사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 XI. 고해성사의 거행
- 1480 다른 모든 성사와 마찬가지로 고해성사도 전례 행위이다. 이 전례의 거행은 보통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사제의 인사와 축복, 양심을 비추고 통회를 일으키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읽음, 뉘우치도록 권고함, 죄를 인정하고 사제에게 밝히는 고백, 보속을 정해 주고 받음, 사제의 사죄경, 감사의 찬미, 사제가 고백자를 축복하여 돌려보냄 등.
- 1481 비잔틴 전례에서는 용서의 신비를 놀랍도록 잘 표현하는 여러 가지 탄원 형태의 사죄경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때 예언자 나탄을 통하여 그를 용서하셨으며, 베드로가 슬피 울었을 때 그를 용서해 주셨고, 죄 많은 여자가 당신 발에 눈물을 쏟았을 때 그를 용서해 주셨으며, 세리와 탕자를 용서해 주셨으니, 그 하느님께서 죄인인 나를 통하여 이 세상과 내세에서 그대를 용서하시어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 대전에 섰을 때 그대를 단죄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아멘.”(89)
- 1482 고해성사는 여럿이 함께 고백을 준비하고, 받은 용서에 대해 함께 감사하는 공동 거행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때 개인적인 죄의 고백과 개별적인 사죄는, 독서와 강론, 공동의 양심 성찰, 공동의 용서 청원, 주님의 기도, 공동의 감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말씀 전례 안에 삽입되어 있다. 고해성사의 이 공동 거행은 참회의 교회적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한다. 고해성사는 그 거행의 방식이 어떠하든, 본질상 언제나 전례 행위이며, 교회적이고 공적인 행위이다.(90)
- 1483 중대한 필요가 있을 때에 일괄적으로 고백하고 일괄적으로 죄를 용서해 주는 고해성사의 공동 거행이 가능하다. 중대한 필요란, 죽음의 위험이 임박하여 한 사제나 여러 사제가 고백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백을 들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을 경우를 말한다. 중대한 필요는, 또한 고백자들의 수로 보아, 적절한 시간 안에 각자의 개별 고백을 듣기에는 고해 사제의 수가 부족하여서, 고백자들이 자기들의 탓 없이 오랫동안 성사의 은총을 받지 못하거나 영성체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 사죄가 유효하려면 신자들이 적절한 때에 자신들의 대죄를 고백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91) 일괄 사죄에 요구되는 조건의 여부는 교구장이 판단한다.(92) 큰 축일이나 순례를 위해 많은 신자가 모이는 것은 이 중대한 필요성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93)
- 1484 “물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사죄를 받는 개별 고백은, 신자들이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일반적 방식이다.”(94) 여기에는 깊은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하나의 성사 안에서 활동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신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병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95) 정성을 기울여 고쳐 주시는 의사이시다. 그들을 일으켜 형제들과 다시 친교를 이루게 하신다. 그러므로 개별 고백은 하느님에 대한 화해와 교회에 대한 화해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형식이다.
- 간추림
- 1485 부활하신 날 저녁,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도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 1486 세례 받은 다음에 지은 죄의 용서는 회개의 성사, 고백 성사, 참회의 성사, 화해 성사라고 불리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주어진다.
- 1487 죄를 짓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예와 그분의 사랑을 손상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자신의 인간적 품위와, 그리스도인이 그 살아 있는 돌이 되어야 하는 교회의 영적 선익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 1488 신앙의 눈으로 보면, 죄보다 더 중대한 악이 없고, 죄인 자신과 교회와 세상 전체에 이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없다.
- 1489 죄로 잃었던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는 것은, 자비로우시고 인간의 구원을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에서 생기는 변화이다. 자신과 남을 위해 이 귀중한 선물을 청해야 한다.
- 1490 회개와 참회라고 불리는, 하느님께 돌아오는 이 전향은 지은 죄에 대한 고통과 후회,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과거와 미래에 관계되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힘을 얻는다.
- 1491 고해성사는 고백자의 세 가지 행위와 사제의 사죄로써 이루어진다. 고백자의 세 가지 행위는 통회, 사제에게 죄를 말하는 고백, 그리고 보속하겠다는 결심과 그 이행이다.
- 1492 통회라고도 하는 참회는 신앙의 동기로 일어나야 한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통회를 하였다면 ‘완전한’ 통회라 하고, 다른 동기에 근거를 두었다면 ‘불완전한’ 통회라 한다.
- 1493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 소죄의 고백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이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 1494 고해 사제는 고백자에게 죄로 생긴 손해를 갚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합당한 생활 태도를 다시 갖추기 위한 ‘보상’이나 ‘속죄’를 하도록 권한다.
- 1495 교회 권위로부터 사죄권을 받은 사제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
- 1496 고해성사의 영적 효과는 다음과 같다.
- - 고백자에게 은총을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과 화해
- - 교회와 화해
- - 죽을죄로 받게 되었던 영벌의 사면
- - 죄의 결과인 잠벌의 적어도 부분적인 사면
- - 양심의 평화와 안온, 영적 위안
- -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을 위한 힘의 증대
- 1497 개인적으로 대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그에 따른 사죄를 받는 개별 고백만이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통상적 방식이다.
- 1498 신자들은 대사로써 자신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을 사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