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를 재생의 성사라 하면, 견진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령의 성사로 우리를 쇄신케 하시고(요한 5, 3 : 티토 3, 5-6), 신앙을 성장하게 하시는 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견진 성사는 세례를 받은 자들만 받는 성사로 신앙을 보다 강하게 하고 신앙을 올바르게 고백하도록 하여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느님의 교회에서 좀 더 힘 있고 살아있는 몫을 차지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견진성사로써 그리스도교 입문 후의 길을 새롭고 힘차게 걷게 됩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로 새로 난 사람은 견진성사로써 성령의 선물을 받아 완숙한 신앙인이 되어 교회에 더 완전히 일치하게 됩니다(교회헌장 11). 결국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입문성사인 세례성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인 입문의 두 번째 성사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강하게 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생명을 완숙시킵니다. 또한 견진성사를 통해서 예언자이시고 사제이시며 왕인 그리스도를 보다 완전히 닮아가게 합니다. 또한, 말과 행실로써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자신 있게 전함으로 교회 사명에 충실하고 교회의 발전에 적극 참여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견진성사는 주교가 신자에게 안수, 성유의 도유 그리고 규정된 기도문을 외움으로 변함없는 신앙을 지니도록 성령을 받게 하는 성사입니다.
견진이란 말은 희랍어 "크리스마"에서 유래한 것으로 "도유", "기름을 바름"이란 뜻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신 분은 아오구스티노 성인입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의 보충, 완성의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완전한 성숙을 얻기 위해 성숙의 방편으로 필요한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의도적으로 거절하면 세례의 완성에 반대하는 것이므로 자기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시대는 성령이 충만한 시대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사도 2, 38 ; 갈라 3, 1-5). 이 성령은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보면 세례성사는 성령을 준다고 되어 있는데(사도 19, 1-7), 그러나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안수를 받게 한 것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하여 회개의 세례라는 심리 차원보다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의 능력적 선물을 받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안수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은 세례성사의 완성을 위한 견진성사의 설정을 의미한다고 사도행전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안수예절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의미와 효력을 낼 수 있습니다. 성령의 효과는 세례의 효과를 충만케 하고 신앙을 증거를 할 수 있는 굳센 힘을 내려 준다고 보았습니다(사도 1, 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견진의 표지를 무엇으로 정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바오로의 증언에 의하면 견진성사의 그 기초는 하느님의 계시로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라고 하는 점에서 세례 후 안수는 계시적 은총을 내리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19, 6).
교회의 전통에서 보면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아주 밀접히 연관되어 두 성사를 구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초 세기에는 두 성사가 동시에 수여되었습니다. 지금도 동방교회에서는 두 성사가 동시에 수여되고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노 교부는 "세례를 뒤따르는 것은 무엇보다 도유"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안수가 따르고 안수와 더불어 성령을 부르고 성령이 내린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치릴로 성인은 유체라 볼 수 있는 기름으로 도유될 때 영혼은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세례성사 후에는 인호와 영을 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제가 안수하며 삼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때 슬기, 의견, 굳셈, 지식, 통달, 효경, 두려움의 성령이 내려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견진성사의 설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고 그 예표로 그리스도께서 어린이들에게 안수하신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견진성사의 외적 표시에 대해서 초 세기에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다만, 사도행전에 안수와 함께 성령께 바치는 기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시대 이후 3세기 초에 안수가 교회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5세기 후에 이마에 기름으로 십자가를 긋는 예식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화를 거치지만, 견진성사의 본질은 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도유만을 통해서 성사가 집전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도유의 목적은 성령의 충만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것입니다.
견진성사의 집전 : 원천적으로 주교가 집전하도록 되어 있지만 주교의 유고시에는 사제들이 이를 대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반드시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견진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의 7은혜 : 견진성사는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게 되는데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의 일곱 가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은 믿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효경과 두려워함은 사랑의 실천과 그리고 굳셈은 주님을 향하는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신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므로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를 받게 됩니다. 곧 평신도는 세례성사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을 받아 강해지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 수행의 사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가 거룩한 백성으로서 왕다운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축성된 것은 생활 전반을 영적 제물로 모든 신앙 활동으로 봉헌하며,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은 원하시는 대로 은혜를 나누어 주시며,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은 각기 받은 은사에 맞게 서로 봉사하며, 성령께서는 또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은혜의 관리자가 되시어(1베드 4, 10), 사랑으로 몸 전체의 성장을 이루어(에페 4, 16)가도록 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은사라 해도 이런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람들의 행복과 교회의 건설을 위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권리와 의무가 각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 특히 사목자들과 일치하여 행사하여야 합니다.
사도직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실현되는 것이며 이 신. 망. 애 삼덕은 성령께서 교회의 모든 지체들의 마음속에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직무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성화하시는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이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1코린 12, 7).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3-8).”
인노첸시오 3세는 "이마에 도유로써 안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말로 견진이라고 하니, 이로써 성령이 더 주어지고 능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Cum venisset 편지)."고 설명하였고, 인노첸시오 4세는 "견진이나 혹은 도유라고 불리는 안수로써...(편지, Sub Catholica professione.) 사도들이 성령을 수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룩뚜노 공의회에서 낭독한 미카엘 팔레올로고 황제의 신앙 고백에도 견진성사에 관한 구절은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성유를 바르는 주교의 안수"로 견진은 집전된다고 하였습니다. 플로렌스 공의회에서 선포된 아르메니아 인들을 위한 교령에서 견진성사의 재료는 기름과 발사마로 만든 크리스마라고 하였습니다(플로렌스 공의회 1권 A집 2부, 1944 로마). 트리엔트 공의회는 견진성사를 크리스마 성사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뜨리덴띤 공의회 회의록 제 2부 1911년).
베네딕토 9세께서는 "그러므로 논쟁 없이 확실한 것은 라틴 교회에 있어서 견진성사는 크리스마 성유, 즉 올리브기름과 발사마를 섞어 주교가 축성한 성유로 집전자가 이마에 십자표를 그음과 동시에 형식화한 말을 외움으로써 집전한다(편지. Ex quo primum tempore. 52)"고 하였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견진성사는 한 손의 안수로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써 수여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라는 말마디를 외운다(1971년 8월 15일 견진성사에 관한 교황헌장)고 요약 결정 발포하였습니다.“
미사 중의 견진예식은 복음 낭독 후에 실시합니다. 그 순서는 주교님의 훈시, 세례서원 갱신식, 안수의식,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으로 본 성사는 이루어지며 이어서 신자들의 기도로 시작하여 미사의 성찬전례로 이어집니다.
훈시의 내용은 독서의 내용을 설명하며 견진자와, 그 부모와, 대부, 대모와 모든 교우들에게 견진성사의 깊은 뜻을 이해시켜 주며, 세례 서원 갱신은 끊어버릴 것과 믿는 내용을 고백하는 것이며, 안수예식은 견진자들 위에 손을 펴들고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전능하신 천주여, 여기 있는 이 교우들을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시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니, 이 교우들에게 파라클리토 성령을 보내주시고, 지혜와 깨달음의 성령과, 의견과 굳셈의 성령과, 지식과 효성의 성령을 보내 주시며, 주를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크리스마 성유를 바름은 견진자들에게 한 사람씩 이마에 십자표를 그리며, " 성령특은의 날인을 받으시오."하고, 견진자는 "아멘" 으로 받고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 16- 17, 2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