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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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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십 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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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십계명

2056 ‘십계명’(Decalogus)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열 마디 말”(탈출 34,28; 신명 4,13; 10,4)을 뜻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열 마디 말”을 거룩한 산에서 당신 백성에게 계시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모세가 쓴 다른 법령들과는(6) 달리 “손수”(7) 쓰셨다. 십계명은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들’이다. 이 계명들은 탈출기와(8) 신명기(9) 씌어져 우리에게 전해졌다. 성경은 구약에서부터 십계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10)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완전한 의미가 계시될 것이다.
2057 십계명은 먼저, 구약에서 중심이 되는 하느님의 위대한 해방 사건인 이집트 탈출 사건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금지 곧 부정적인 계명으로 표현되었건, 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처럼) 긍정적인 계명으로 표현되었건, 십계명은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삶의 조건들을 가리키고 있다. 십계명생명의 길이다.
주 너희 하느님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신명 30,16).
십계명이 지닌 이 해방하는 힘은, 예를 들어, 이방인들과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안식일휴식에 대한 계명에서 드러난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신명 5,15).
2058 십계명은 하느님의 법을 요약하고 선포한다. “주님께서는 구름이 덮이고 어두운 산 위 불 속에서, 큰 소리로 너희 온 회중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아무것도 보태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 돌 판에 이 말씀을 쓰시어 나에게 주셨다”(신명 5,22).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돌 판을 “증언판”(탈출 25,16)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 돌 판에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 서로 맺은 계약의 조목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 “증언판”(탈출 31,18; 32,15; 34,29)은 “궤”(탈출 25,16; 40,1-3) 속에 넣어 두어야 했다.
2059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어 선포하신 것이다(“그 산 위 불 속에서 너희와 얼굴을 마주 보고 말씀하셨다.”, 신명 5,4). 이 십계명은 당신 자신과 당신 영광에 대한 하느님계시이다. 십계명이라는 선물은 바로 하느님 자신과 당신의 거룩한 뜻을 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심으로써,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다.
2060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과 율법은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의 일부를 이룬다. 탈출기에 따르면, 백성이 이 십계명계시를 받은 것은, 하느님께서 계약을 제안하시고(11) 체결하시는(12) 그 중간에 이루어진다. 백성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실행하고” 거기에 “따르기로”(13) 약속한 후, 비로소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주 우리 하느님께서는 호렙에서 우리와 계약을 맺으셨다.”, 신명 5,2).
2061 계명은 계약 안에서 그 완전한 의미를 얻게 된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윤리적 행동은 계약 안에서 그리고 계약을 통해서 그 본래의 모든 의미를 갖게 된다. 십계명의 첫 마디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주도적인 사랑을 상기시켜 준다.
죄에 대한 벌로, 인간자유낙원에서 이 세상의 종살이로 옮겨 왔다. 이러한 이유로 십계명의 첫 마디, 곧 하느님의 열 마디 말씀의 첫 조목은 자유에 관한 것이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신명 5,6).(14)
2062 계명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차적인 것이다. 계명계약의 성립으로 하느님께 속한 인간 조건을 말해 주고 있다. 윤리적인 삶은 주도적인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알아 뵙고 그분께 바치는 충성이며, 감사의 예배 행위이고, 하느님께서 역사를 통해 추진하시는 계획에 협력하는 것이다.
2063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대화에서는, 하느님께서 일인칭으로(“나는 주 하느님이다.……”), 모든 의무를 다른 한 주체(“너는……”)에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모든 계명에서는 단수 이인칭 대명사로 상대방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그리고 동시에 개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신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명령하시고 이웃에 대한 정의를 가르치시어, 인간이 의롭지 못하여 하느님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십계명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벗이 되고 이웃과는 화목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십계명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생하셨다는 사실로 이 계명들이 폐지되기는커녕,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더욱 충만하게 드러났고 또한 깊어졌습니다.(15)

희생 제사

2099 하느님께 흠숭과 감사, 탄원과 일치의 표징인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거룩한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여 행하고 또 그럼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참다운 제사이다.”(11)
2100 진실한 제사가 되려면, 외적 제사는 영적 제사의 표현이어야 한다. 곧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시편 51[50],19)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내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12) 이웃 사랑과 상관없이 바쳐지는 제사(13) 자주 비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호세아 예언자의 말을 상기시키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12,7).(14) 유일하고 완전한 제사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그 제사이다.(15) 예수님의 희생 제사와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제물봉헌할 수 있다.

점과 마술

2115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들이나 다른 성인들에게 미래를 계시하실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미래와 관련된 모든 것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섭리의 손길에 맡겨 드리고, 이에 대한 불건전한 호기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일은 무책임한 과오가 될 수 있다.
2116 모든 형태의 점(占)을 물리쳐야 한다. 사탄이나 마귀들에게 의뢰하는 것, 죽은 자를 불러내는 것, 미래를 ‘꿰뚫어 본다’고 하는 그릇된 추측 등이 그러한 예이다.(45) 탄생 별자리를 믿는 것, 점성술, 손금, 전조(前兆)와 운명에 대한 해석, 환시 현상, 점쟁이(무당)에게 물어보는 일 등에는 시간역사, 나아가서는 인간까지 지배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감추어져 있으며, 신비로운 능력들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당연히 하느님 한 분께만 드려야 하는, 사랑의 경외심이 포함된 영예와 존경을 거스르는 것이다.
2117 신비로운 능력들을 복종시켜 뜻대로 사용하고, 이웃에게 ─ 비록 이웃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려고 할지라도 ─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술이나 요술 행위는 경신덕에 크게 위배되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남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향을 지녔거나 마귀의 개입을 청하는 것이라면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부적을 지니는 것도 비난받을 일이다. 강신술에는 흔히 점이나 마술 행위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교회신자들에게 그러한 행위를 멀리하도록 가르친다. 민간요법이라고 일컫는 치료법을 쓰면서 악한 능력의 힘을 비는 일이나 다른 이들의 잘못된 믿음을 악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주일의 성찬례

2177 주님의 날을 경축하고 주님의 성찬을 거행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중심이다. “사도전승에 따라 수난부활신비를 경축하는 주일보편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 축일로 지켜야 한다.”(9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성탄 대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 승천 대축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과 성모 승천 대축일, 성 요셉 대축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그리고 모든 성인 대축일도 지켜야 한다.(96)
2178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모이는 관습은 사도 시대의 초기부터 시작된 것이다.(97)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다음과 같이 환기시키고 있다.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히브 10,25).
성전은 언제나 실질적인 한 권고 말씀을 생생히 전해 준다. “일찍 교회에 나와서 주님께 가까이 가며,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기도 중에 참회하십시오.……하느님의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고, 드려야 할 기도를 마치고 파견을 받기 전에는 떠나지 마십시오.……우리가 자주 말한 바와 같이, 기도휴식을 위해 이날이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입니다. 이날에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98)
2179 “본당 사목구는, 그 사목교구장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로서의 본당 사목구 주임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 내에 고정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동체이다.”(99) 본당은 주일의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모든 신자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이다. 본당은 신자들에게 전례 생활의 일반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신자들을 이 전례 거행에 불러 모으며,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고, 선행형제애로써 주님사랑을 실천한다.(100)
그대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집에서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하느님의 백성이 모이는 곳이며, 그들은 그곳에서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환호합니다. 교회에는 그 외에도 정신의 일치, 마음의 합일, 사랑의 유대, 사제들의 기도 등이 있습니다.(101)

정치 공동체와 교회

2244 어떤 제도이든지, 은연 중에라도, 인간인간의 소명에 대한 시각을 지니고, 그 시각을 판단 기준과 가치 체계와 행동 노선의 근거로 삼는다. 대부분의 사회 제도들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종교만이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신 하느님인간의 기원과 목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해 왔다. 교회정치권력들에게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하느님인간에 대한 이 진리에 비추어 내리라고 권고한다.
진리를 무시하거나, 하느님에게서 독립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거부하는 사회들은, 그들의 판단 기준과 목적을 자체 내에서 찾거나 어떤 이데올로기에서 이끌어 오게 된다. 또한 역사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선과 악의 객관적 기준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공공연하게든 또는 음험하게든, 전체주의적인 권력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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