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아가 (2) : 명칭과 저자 진실된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 견뎌낼 수 있어 삶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고통들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여러 선수들은 그들의 승리를, 사랑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니 혹독한 사랑을 치르거나, 그런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결국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 아닐까. 선수들의 경기를 가슴 졸이고 지켜봐야 했던 그들의 연인들과 어머니들은 그런 의미에서 공동의 승리자들이다. 가슴을 몇 번이나 조각내는 고통의 순간들이라 해도 단 한번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는,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가졌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수들과 그들의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아직은 그런 사랑과 아름다움에 근접조차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한 올림픽이었다. 아울러 우리의 아가서 연구가 각자의 사랑을 돌이켜보고 각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혹독한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세상을 이길 수도,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난해한 단어들 지난주에 우리는 아가서가 1) 메기롯(축제 두루마리)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과, 2) 아가에는 신앙 관련 구절이 부재한다는 점 등을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제시될 수 있는 특징은, 아가서가 성서 안에 대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희귀한 표현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은 시적인 아름다움과 뛰어난 문학성의 결실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후대 독자들에게는 극복해야할 여러가지 해석의 난제로 남아 있다. 명칭 아가 1, 1은 일종의 「표제」에 해당되는 구절로서, 이 책을 『솔로몬에게 속하는 노래중의 노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노래 중의 노래」라는 표현은 「쉬르 하쉬림」이라는 히브리 구절의 번역으로, 히브리어 고유 문법의 하나인 최상급 표현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히브리어는 같은 어근을 두 번 혹은 세 번 반복하는 것으로 최상급 표현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아가는 「노래」라는 명사를 두 번 반복함으로써 이 책이 히브리 노래들 중 가장 으뜸가는 노래이며 솔로몬의 여러 노래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노래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 성서와 라틴어 성서에서도 이러한 최상급 표현은 그대로 직역되고 있다(칠십인역-아스마 아스마톤; 불가타-깐띠꿈 깐띠꼬룸). 이러한 아가 1, 1의 표제는 본문보다 상당히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또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아가서가 가지는 여러가지 문제점들(남녀간 사랑에 대한 노골적 표현과 신앙관련 표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노래 중 가장 아름답다는 후대인들의 긍정적 평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아가의 표제는 분명히 이 책이 솔로몬의 작품임을 명시하고 있고, 1, 1이외에도 3, 7. 9. 11; 8, 11. 12에 솔로몬이 직접 등장하고 있어서, 아가서가 솔로몬의 작품이라는 통념을 이끌어내었다. 더욱이 여인과의 사랑이라는 전체적 줄거리는 거대한 규모의 하렘(harem)을 소유하고 있었던 솔로몬의 여성편력과도 잘 어우러졌기에 솔로몬 저작설을 더욱 일반화시켰던 것이다(전도 2, 8; 1열왕 11, 1~3 참조). 그러나 아가에 사용된 문체와 단어들이 매우 후대의 것(페르시아 시대 혹은 헬레니즘 시대)이라는 점이 판명되고 있어서, 학자들은 솔로몬 저작설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표제에 등장하는 「솔로몬의」라는 표현은 후대 편집자에 의한 첨가일 뿐이며, 수천개의 잠언과 노래의 작가로 알려진(1열왕 4, 32; 5, 12) 솔로몬의 권위와 명성을 빌어 이 책의 사회적-문학적 위상을 격상시키고자 했던 「문학적 설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어떤 경위를 거쳐 아가의 표제에 삽입되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그 정확한 과정을 추적해 내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가서가 그를 저자로 내세움으로써 잠언, 지혜서와 함께 이스라엘의 지혜전통을 이어가고자 했고, 솔로몬의 이름과 권위를 통해 노골적 성애 묘사라는 걸림돌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랑 마음안에 사랑이 있다면, 굳이 견뎌내지 못할 일도 없는 듯하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에 사랑을 품고 있다면 누구보다 귀한 재산을 갖고 있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나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문득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부모님 생각이 났다. 『도대체 그 마음에 어떤 사랑을 품고 있길래 그토록 힘든 삶을 지금껏 잘 견뎌오신 것일까』하는 가슴 아픈 질문과 함께…. [가톨릭신문, 2004년 9월 5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