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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저술배경과 용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6 조회수3,263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아가 (4) : 저술배경과 용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

 

현대 기호학의 대가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이라는 자신의 역작에서, 연인들 사이의 언어적 긴장감을 「기호」라는 학문적 틀을 통해 표현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연인들은 끊임없이 상대에게 신호를 보내고, 이 추상적 신호를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전화를 왜 했는지」, 아니면 「왜 전화를 안 하는 건지」, 사랑이라는 현상 안에는 모든 것이 아리송한 기호일 뿐이고, 연인들을 힘겹게 하는 것은 그 기호가 갖는 애매함이라는 것이다. 별로 명확한 줄거리 없이 다양한 사랑의 기호와 노래로 되어있는 아가가 도대체 어떤 책이었는지, 그 정확한 용도에 대하여 학계는 여러 의견을 제시해왔다. 대표적 가설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1) 결혼 잔치 때 불렸던 축가들의 모음

 

아가는 시리아의 혼인잔치 때 불렸던 축가들의 모음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학계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가를 극찬한 바 있던 랍비 아키바(지난 주 지면 참조) 역시 이 의견에 반대했는데, 만일 혼인잔치 때 불렸던 노래로 아가를 이해한다면, 글자 그대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연가(戀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2) 드라마(희곡)

 

아가를 의도적으로 구성된 드라마(혹은 연극)로 보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주로 18~19세기에 자주 거론된 가설이었다. 이에 의하면 아가는, 어느 양치기 아가씨가 솔로몬에게 간택을 받아 후궁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본래 애인이었던 목동을 잊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고, 왕은 결국 그녀를 돌려보내 목동과 결혼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는 「희곡」이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스토리를 통해, 아가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과 사랑을 위한 한 여인의 성실성, 의연한 태도 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학설 역시 전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드라마로 보기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동방 경신례설

 

스칸디나비아 학파에서 주창된 가설로, 아가를 동방 경신례에서 사용된 전례용 노래 모음집으로 보는 학설이다. 수메르-아카디아의 신화에는 여신인 이쉬타르와 남신인 탐무즈의 성혼(聖婚)을 기념하는 예식이 등장하는데, 농경사회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이 신화에 의하면, 겨울은 탐무즈 신이 죽어감을 상징하는 계절이고, 반면 봄은, 이쉬타르라는 여신이 죽음의 세계에 가서 애인 탐무즈를 찾아내어 결혼함으로써 도래하는 계절이다. 풍산을 최고의 관심사로 보던 당시로서는, 이쉬타르와 탐무즈가 결합하는 봄이야 말로 새 생명으로 충만한 계절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탐무즈-이쉬타르 신화가 가나안에 도입되면서 바알과 아세라의 전설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스라엘 안에 들어오면서는 모든 죽음과 고통의 상황을 청산하고 새 생명을 맞이하는 과월절과 연결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가를 과월절에 읽은 이유를 비교적 잘 설명하는 가설인 셈이다. 그러나 학자들은(예를 들어 뷔르트바인) 이쉬타르-탐무즈의 이방 전례가 어떻게 그토록 쉽게 이스라엘 경신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더구나 경전인 성문서 그룹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원하는 것

 

지난주 전 세계는, 러시아의 학교인질극 참사로 경악하였다. 어린이들을 방패막이로 앞세운 비인간적 행위는, 분명히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미쉘 푸꼬가 언급한 「광기의 시대」가 정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일까? 공포에 질린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이 시대를 지배하는 생존 법칙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지만 우리가, 그리고 저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것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투쟁」과 「테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만이 진정한 승리를 보장한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누구의 뒷모습도 아름다울 수 없다. 인간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혁명의 이름을 내세운 행위일지라도 그건, 스스로를 덫에 걸리게 하는 파괴적 광기일 뿐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9월 19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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