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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대기계 역사서: 개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1 조회수4,075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1) : 개관

 

 

성전·전례부분에 관심 많이 갖고 제사장·레위인 임무 자세히 설명

 

구약성경 안에는 모두 두 개의 역사책이 포함되어 있다. 한권은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부르고 있는 책이고, 나머지 한권은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불린다. 전자는 모세오경 다음에 위치한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를 망라하며, 후자는 현재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성문서’에 속해 있는 것으로, 에즈라, 느헤미야, 역대기 상하를 포함한다. 이 책들은 성문서의 마지막 부분(그러므로 히브리 구약성경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위치해 있고, 따라서 구약성경 전체를 종합하고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 성서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해 있는 역대기계 역사서를 살펴보기로 한다.

 

 

내용

 

역대기계 역사서는 천지 창조부터, 두 왕국의 멸망, 유배, 귀환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의 개혁에 이르는 그때까지의 이스라엘 전체 역사와 주요 사건들을 개관하고 있다.

 

 

제작 연대

 

여기에서 보도되는 마지막 사건들은 기원전 400년경에 일어난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건만을 언급하고 있는 이 책에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이라는 대사건이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기원전 333년경), 헬레니즘의 그 어떤 영향도 직접적으로는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대기계 역사서는 적어도 기원전 4세기(그리스의 팔레스티나 정복 이전) 경에는 제작된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서와의 관계

 

신명기계 역사서는 가나안 진입부터 여호야긴의 석방(기원전 6세기) 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계는 그보다 훨씬 앞부분인 창조 때부터, 훨씬 후대인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유배 귀환 공동체까지를 서술의 범주로 삼는다(5세기). 결국 역대기계는 신명기계가 언급하지 않고 있는 다른 부분까지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계는, 역대기계가 이미 저술된 신명기계 역사서를 기본 자료로 이용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목적과 문체

 

역대기계 역사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성전재건, 국가체제, 북왕국 주민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는 목적으로 저술된 문헌이다. 귀환 이후, 이스라엘은 초토화된 국가의 재건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었고, 이러한 귀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 나선 신학자 그룹이 바로 역대기계 역사학자 그룹이었던 것이다. 당시 외부적으로는 페르시아 시대가 그 화려한 시대를 접고, 대신 헬레니즘 문화가 봇물 터지듯 휩쓸려 들어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위기 중에 어떻게 하면 야훼 종교의 전통이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 역대기 사가의 당면과제였던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경신례와 이를 통한 신정(神政, 메시아 통치)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대기계 역사서는 성전, 전례와 관련된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특수한 종교적인 절기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임무와 활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사울의 쇠퇴 이전까지의 역사를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족보로 만들어 모두 9장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1역대 1~9장). 즉 족보와 계보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를 총망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유

 

단풍이 한창이다. 언젠가 창밖에 예쁘게 물든 단풍들을 보면서, 단풍이 왜 저렇게 예쁜지를 문득 깨닫게 된 적이 있었다. 그건 단풍이 고단했던 지난 봄부터의 시간들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참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아픔 때문에 비록 빨간 핏빛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지만, 승화된 세월은 그 핏빛조차 섬뜩하지 않은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색으로 거듭 태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전에는 그냥 ‘나무니까’, 하며 그냥 지나가던 그 자리를 이제는 ‘나무구나!’, 하며 그 존재를 새삼 깨닫게 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신학생들과 근처를 다녀오다가 창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연발한 적이 있다. 바야흐로 가을 아니던가. 그런데 옆에 있던 신학생의 말이 뭉클했다. 아픔을 간직한 곳이니까요…가을 풍경에 수다스런 탄성만을 질러대는 나에게 신학생은 그 아름다움의 원인이 숨겨진 아픔 때문임을 알려준 것이다. 누가 선생인지, 원…하면서도 이내 뿌듯한 마음에 그날 하루를 더욱 감사할 수 있었다.

 

아픔이 있어야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아픔이 다가오면 더 예뻐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 여기면 되는 거니까. 그러면 되는 거니까.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13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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