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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대기계 역사서: 역대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1 조회수4,781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4) : 역대기

 

 

이 사회 어리석음 독설로 매도말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해 · 용서해야

 

‘퍼햅스’, 삶을 살아가면서 문득 각별하게 다가오는 말이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아마도’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용서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듯해서….

 

‘역대기’는 이러한 지나간 역사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다시 서술된 역사서’이다. 모래 위에 내 발자국만 찍혀져 있어서, 어려운 시절 나를 외면하신 하느님을 원망하며 지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모래 위에 찍혀있던 두 개의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 아니라 나를 업고 오신 하느님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되는 체험, 바로 그런 체험 속에 ‘다시 쓰인’ 역사서가 역대기인 것이다.

 

 

개관

 

역대기 상하는 아담에서 유배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후의 이야기(귀환 공동체)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서가 담고 있는데, 이 두시기를 연결해 주는 고레스 칙령은 역대기 하권의 마지막(2역대 36, 22~23)과 에즈라서의 첫 부분(에즈 1, 1~4)에 중복되어 등장한다.

 

역대기는 히브리 성서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책이다. 칠십인역의 구성을 따르는 우리 성경에서는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지만, 히브리말로 서술된 히브리 성경(BHS)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역대기가 등장하고 있고, 이는 역대기야 말로 구약성경 전체를 종합적으로 수렴함을 의미한다.

 

 

구조와 내용

 

이 책의 내용은 아담에서 바빌론 유배, 그리고 귀환하기 직전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어서 창세기에서 열왕기까지 서술되고 있는 내용의 반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오경과 신명기계 역사서의 내용보다 훨씬 더 해석되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와 편집

 

역대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유다와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2역대 16, 11; 2역대 27, 7), 열왕기 주석(2역대 24, 27),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쓴 기록(2역대 26, 22) 등 다수의 문헌들을 참조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역대기는 1) 사무엘서와 열왕기를 기본 문헌으로 참조하고 여기에 2) 여러 역사 문헌들, 3) 예언전승들을 참조하여 현재의 역대기를 완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수한 생략기법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나 많은 부분 신명기계 역사서가 언급했던 내용들을 삭제하고 있다. 특별히 생략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출애굽 사상의 부재: 역대기에 출애굽, 족장들, 시나이 계약 사건들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역대기가 이스라엘 사고의 핵을 사건들보다는 예루살렘 성전 예배로 집중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2) 북 왕국에 대한 언급이 부재: 북왕조에 대하여는 거의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남북 분열이후, 북 이스라엘을 더 이상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는 다윗 왕조의 정당성과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정통성을 합법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3) 다윗왕조에 대한 이상화: 하느님을 섬긴 대표적인 왕으로 다윗을 추대하기 위하여 그 위상에 방해가 되는 사건들(다윗의 간통, 압살롬의 반역, 솔로몬의 통치 말년의 사치와 우상 숭배 등)이 통째로 빠져있다.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픈 역사가 소중한 이유

 

지나간 역사의 우여곡절과 아픔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선물이요 은총일 수 있다.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을 행동을 지금은 선뜻 할 수 있게 하는 동인(動因)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 아무리 애원해도 야멸차게 거절하고 그냥 자신에게만 연연하던 이들도, 오류와 실패, 좌절의 역사를 거치면서,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나처럼 존중받기를 원하는 인격체임을 깨닫게 되지 않던가. 이스라엘은 유배라는 혹독한 고통을 통해, 고통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고통이 왜 자신들의 역사가 되어야만 했는지를 절절히 깨닫게 된다.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지 못했기에 다가온 고통이 유배였음을, 그리하여 무엇이 그들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회의 어리석음을 비판이나 독설로만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안고, 진심어린 미소로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는, 나 역시 철없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어리석었던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아는 ‘진정한 나’를 만들어 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각자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4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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