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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께 형제들이 있었는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22 조회수2,72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예수께 형제들이 있었는가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주님의 형제들
 
예수께 형제와 자매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매우 실제적인 문제다. 신앙 안에서 양육되는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부정적인 의미로 대답할 것이고, 반대로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성서에서 출발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할 것이다. 가톨릭 신자는 마리아를 “평생 동정이신” 분으로 공경하는 전승에 호소할 것이고,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빈번하게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해 말하는 복음서들을 신뢰할 것이다.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반성서적인” 가톨릭 전승을 거부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교회 일치 시기에 이러한 대조는 고통스럽고도 불유쾌한 일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복음서에는 몇 차례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분이 나자렛에 나타나셨을 때에만 마태오와 마르코한테서 네 명의 이름이 언급된다. 나자렛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묻는다. “저 사람은 그 목수이며, 마리아의 아들로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또한 그의 누이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은가?”(마르 6,3; 마태 13,55).
 
예수께 형제들이 - 게다가 특별히 지명되어 - 있었다는 명확한 말로 언급되는 이 본문에서 또한 분명하게, 마치 그에게 형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예기하듯, 그가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외아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형제”라는 말을 더욱 폭넓은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일단 예수와 그분의 형제들 사이의 구별 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본문들도 같은 일에 대해 암시한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네번째 복음서 저자가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 머무시는 것에 대해 기록할 때(요한 2,12), 구절 가운데 분명한 구분을 두고 있다. “이 일이 있은 뒤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예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만일 형제들이 마리아의 아들들이라면 이상할 것이다. 사도행전(1,14)에서도 같은 구분이 나타나며, 나아가 전치사 “함께”로 강조된다. “이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부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여기서도 지적은 “형제”라는 말을 총칭적인 의미로 이해하도록 한다.
 
마르코 복음서 끝에 예수의 두 형제 야고보와 요셉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짝짓고 있다. “또 여자들도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마태 27,56). 이 본문으로부터 예수의 두 형제는 동정녀 마리아가 아닌 다른 어머니를 두었으며, 따라서 더욱 넓은 의미의 말로 형제로 부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언어든 고유한 색조와 독특한 관습을 갖는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많은 언어에서는 일련의 친척들에 대해서 “조카”라는 말을 채택하는 용법이 있다. 좁은 의미로 그것은 형제나 자매의 이름들에 대해 사용되나, 또한 숙부나 숙모의 아들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조카”라는 말은 따라서 일의(一意)적이 아닌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증손(曾孫) 혹은 먼 조카를 단순히 “조카”라고 부를 때 뜻은 더욱 모호해진다. 그런 경우에 어떤 친척 관계를 뜻하는지 정확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더욱 명료한 자료 없이 그것을 정했다면 동음 이의어(同音異意語)로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성서 언어에서 “형제”라는 말은 유사한 탄력성을 지닌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구약 성서에서 같은 아브라함의 형제로도 불린다(창세 13,8; 14,14.16). 성조들의 공동체에서 성조의 친척들은 서로 형제라고 불린다. 오늘날 팔레스티나의 아랍인은 아직도 모든 친척과 - 특히 외국인들 앞에서 같은 종족의 모든 자손을 “자신의 형제”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서 본문에서는 “형제”라는 용어를 잘 이해된 맥락 안에서 취할 필요가 있다. 협의의 문자적인 의미로 그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보통 “형제들”을 읽을 때 우리는 “친척들”로 이해해야 한다.
 
주님의 형제들이 실제로 먼 친척이라는 것은 결국 네번째 복음서에서 끌어올  수 있다. 거기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보호를 요한에게 맡기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이 마리아를 한 제자에게 맡기는 것은 분명히 그녀가 오로지 예수 외에 다른 아들들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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