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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에는 누가 살았을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3,298 추천수2

[복음의 그때 그 자리]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에는 누가 살았을까

 

 

예수님의 형제였던 유다의 손자를 포함하여 몇 사람이 고소당했다. 그들이 다윗 임금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81-96년 재위)가 물었다. “소유한 재산이 얼마며, 얼마나 많은 돈을 돌리고 있는가?” 그들이 대답하였다. “저희 중에 둘이 지닌 재산은 모두 9천 데나리온입니다. 이는 현금이 아니라 십만 평방미터(약 삼만 평)쯤 되는 땅의 가치입니다. 그 땅을 경작하여 세금을 내고 온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고된 일로 거칠어진 몸을 본 황제는 그들을 시시하게 여겨 경멸하며 풀어 주었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20 참조).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에 누가 살았나?

 

기원전 167/6년, 작은 고을 모데인에서 튄 불꽃이 순식간에 팔레스티나 전역으로 번져 갔다. 유다교를 지키려는 마카베오 가문의 항쟁이다.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배하는 셀레우코스 왕국을 상대한 이 항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초래했다. 바빌로니아에 멸망한 이후 4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유다인들이 자치권을 획득하였고 잃었던 땅도 회복하여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영역을 확보하였다. 이때 갈릴래아도 아시리아의 티글랏 필에세르 3세에게 정복당한 지(기원전 733년) 6백여 년 만에 유다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기원후 1세기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갈릴래아 북부와 티베리아스 골짜기에 주로 살았던 종족은 이투래아인들이었다. 그는 아리스토불로스 1세가 그들을 강제로 개종시켰다고 전한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탄생까지 대략 백 년이 흘렀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장하실 때 갈릴래아에는 어떤 사람들이 주로 살았을까?

 

학자들의 주장은 크게 셋으로 갈린다. 하나는 이곳이 본래 북이스라엘 영토였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줄곧 살아왔다고 한다. 소수의 유력자들만 아시리아로 끌려 갔고, 허다한 평민들은 그냥 남아 야훼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거주지를 잘 옮기지 않고 문화가 고착되었기 때문에 몇백 년 동안 동일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유다교로 개종하였지만 이투래아인들과 이방인들이 자기네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 하나는 예전에 이주해 왔거나 특히 하스모네아 왕조의 정복 이후 이주한 유다인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것이다.

 

 

누가 유다인인가?

 

갈릴래아를 집중 발굴하고 있는 고고학자 조나단 리드가 최근 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발굴 결과 이 지역이 철기 시대(왕정 시대)부터 예수님 시대까지 연속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투래아 사람들의 반유목 문화도 남부 갈릴래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힌다. 결론인즉, 유다와 갈릴래아의 문화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양쪽 모두에서 돌그릇과 정결례용 욕조(미크베)가 나왔고, 유골만 따로 모으는 장례 기법, 돼지를 먹지 않는다는 점이 일치한다고 제시하였다. 곧 1세기 갈릴래아의 주민은 유다인이라는 말이다.

 

같은 종교를 지녔다 해서 모두가 동등하지는 않다. 유다교의 주요 특징인 정결 체계에 따르면 거룩함에는 등급이 있다. 이는 사람이나 물건뿐 아니라 땅에도 해당한다. 그래서 가장 거룩한 성전의 지성소에서 멀어질수록 거룩함의 등급은 낮아진다. 갈릴래아는 사마리아보다 거룩하나 유다보다는 덜 거룩하다. 이른바 수도권인 유다 지역 사람들에게 갈릴래아는 모든 면에서 열등한 변두리 지방이었다.

 

[성서와 함께, 2010년 2월호, 이용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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