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그때 그 자리]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산은? “나 요한은 타보르 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순수한 신성을 보여 주셨다”(위경 <신학자 요한의 묵시록>에서).무엇을 찾으려는지 산으로 가는 발길이 분주하다. 갈릴래아 남녁의 한 산에도 오르내리는 발걸음이 잦다. 그러나 제주 오름과 퍽 비슷한 그 산을 터벅터벅 오르는 이는 적고, 차량들만 쏜살같이 오르내린다. 도대체 그곳 타보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복음서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타보르 산에서 변모하셨다고 말한다. 허나 복음서의 증언은 애매하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마르 9,2). 그곳이 어딜까? 본문의 범위를 넓히면 두 단락 앞에 지명이 언급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마르 8,27). 출발 지점은 갈릴래아 호수 최북단의 ‘벳사이다’다(마르 8,22 참조). 그러니까 헤로데 필리포스의 영토에서 제일 남쪽인 벳사이다에서 북쪽의 수도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향해 가셨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런 문맥에서 ‘높은 산’을 이해하는 이들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에서 가장 높은 산, 곧 헤르몬 산에서 변모하셨으리라 제안한다. 그 산은 해발 2770m로 매우 높지만,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는 로마군 진지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종의 군사 지역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과연 그리로 가서 변모하셨을까? 그래서 일부 학자는 골란 고원의 텔 엘 아크라르, 또는 제르카크 산을 후보지로 제안한다. 심지어 갈릴래아에 있는 ‘하틴의 뿔’이라는 높은 언덕도 후보지의 하나다. 왜 높은 산인가? 가나안 사람들을 비롯한 셈족은 굳건하게 존속하는 산들이 창공을 지탱하고 있으며, 신들이 산꼭대기에서 은밀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산과 높은 언덕에서 제사를 드렸다(호세 4,13; 참조 신명 12,1; 예레 3,23). 이스라엘 사람들도 산을 거룩한 곳, 하느님을 체험하는 곳으로 여겼다. 특히 ‘주님의 산’(미카 4,2; 즈카 8,3; 시편 24,3)이라 불린 성전 산에서, 마지막 때에 하느님의 잔치가 베풀어지리라고 선포하였다(이사 25,6 참조). 그러나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일은 일찍이 시나이 산에서 이루어졌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주님의 세 제자처럼)를 데리고 시나이 산에 올라가 하느님을 뵈었다(탈출 24,9-10 참조). 또 그는 ‘엿새 뒤’인 ‘이렛날’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시나이 산에 올라갔다(탈출 24,16 참조). 엘리야 예언자도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현현을 체험하였다(1열왕 19,13 참조). 주님의 거룩한 변모 장면에는 그 두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그리하여 ‘높은 산’이 시나이 산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산을 능가하는 결정적 계시의 장소임을 드러낸다.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신원을 밝히고 바로 앞에 나오는 그의 수난 예고를 손수 보증해 주신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예수님께서도 산에 올라 모세의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고(마태 5,1 참조), 산에서 부활하신 당신 모습을 드러내셨다(마태 28,16 참조). 그분은 올리브 산에서 맞은편 산에 있는 성전의 파괴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일을 일러 주셨고(마르 13,3 참조), 그곳에서 하늘로 오르셨다(사도 1,12 참조). 이런 여러 배경에서 보면, 시나이 산의 위치를 알 수 없듯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가 이루어진 ‘높은 산’의 실제 이름과 위치도 알 수 없을 듯하다. 그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기보다 그분의 신원과 부활을 예시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태 4,8의 ‘매우 높은 산’ 참조). [성서와 함께, 2010년 8월호, 이용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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