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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9: 세계의 사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3 조회수2,885 추천수1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9) 세계의 사도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우다

 

 

작가노트 = 주님의 부르심으로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선교여행을 떠나는 바오로 사도의 해상 길을 담았다. 풍랑 속 작은 배는 바오로 사도의 믿음을 나타낸다. 바르나바와 함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오로는 새롭게 세운 초대교회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정신적 도움과 물질적 보답으로 서로 도와가며 점점 커져 가는 교회와 두 사도 사이 다짐을 나타내 봤다.

 

 

주후 42년 봄, 바르나바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떠나 타르수스로 간다. 바오로를 찾아 히브리인 거주 구역으로 간 그에게 누군가 말해준다. "계속 걸어가세요. 샘이 하나 보일 텐데, 그 옆에 사울의 집이 있습니다"(이 샘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바오로 사도의 샘'이라고 불린다). 예기치 못한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바르나바, 여기까지 어떻게, 그 먼 길을 오셨습니까?"

 

"사울 형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안티오키아에 있는 주님 교회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사울 형제를 찾아온 바르나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두 친구는 그간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며, 그날 밤 참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설명하고, 그곳에서 행했던 복음 선포에 대해 알려줬다.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들이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에게 복음을 설교했는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집단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렇지만 이제 많은 문제들이 뒤따르게 돼 나 혼자서는 그 문제들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소. 형제여, 와서 나를 도와주시오."

 

바오로에게는 이것이 타르수스에 은거하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예루살렘에서 환영으로 나타난 예수님은 그에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 22,21). 이제 그때가 온 것이다.

 

주님은 자주 우리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이들 두 형제는 아마도 더 빠른 길인 해상 길을 택했을 것이다. 타르수스에서 킨토스 강 어귀까지는 작은 배를 타고 내려갔으며, 거기서부터는 상선을 타고 셀레우키아 항구에 도착했다. 그곳은 안티오키아의 교역항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체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숲이 우거진 언덕 안에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다섯 시간을 걸은 뒤에 작은 산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오론도스 강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만난다.

 

그들 앞에 안티오키아가 펼쳐져 있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세 번째 가는 로마 제국의 대도시다. 기원전 293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인 니카토라스 즉, 셀레브콘 1세가 자기 아버지 안티오키아를 기념해 세운 도시다. 그 후 23개 도시가 같은 이름으로 세워졌으므로, 이 도시는 '대 안티오키아'로 불리게 된다.

 

시리아 수도이기도 했던 이 도시는 많은 그리스인들(아테네인, 마케도니아인, 크레테인, 키프로스인)에 의해 건설된 식민도시로 그리스화해 정신적, 상업적으로 대단히 번영한다. 이곳은 철학을 가르치는 학원이 특히 유명했는데, 여기서 후에 유명한 철학자 리바니오스가 가르친다. 리바니오스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우리에게는 요한 금구로 더 익숙한 성인의 스승이다.

 

그러나 이 세계적 대도시에는 프리기아와 이집트, 피닉스(또는 베누), 시리아, 페르시아 등 여러 다른 나라 신들에 대한 광적 숭배가 만연해 있었다. 피닉스 여신인 아스타르테에게 어린아이와 성인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인신공희(人身供犧)나 음란행위, 과음은 신들에 대한 숭배 의식이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설교가 절실히 필요한 도시가 있었다면 그곳은 바로 안티오키아였던 것이다.

 

동시에 안티오키아 거주민의 상당수는 유다인들이었는데 그들은 회당으로 상당수 개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알고 있었고 할례를 받았으며 회당에 받아들여진 우상숭배자들이었다.

 

 

모든 사람이 믿음 받아들여

 

스테파노 일로 박해가 일어나자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안티오키아에 정착했다(사도 11,19-20). 그들을 도우려고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파견했고, 그는 열성을 다해 더 많은 유다인들과 우상숭배자들을 교회로 이끌었다.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데리러 타르수스로 간다. 바오로의 능력과 인품을 특별히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두 사도들은 안티오키아에 도착했고, 바르나바는 그의 친구를 교회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에 데려갔다. 모든 사람들이 사울을 존중하며 기쁨으로 인사했다. 그들은 주님을 봤던 그가 그들 앞에 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침내 바오로에게서 그의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 시작됐다. 일 년 내내 이 두 형제는 서로를 도와 이 새로운 교회에서 주님 은총으로 일했다. 돛에 성령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고, 그래서 배는 희망을 가득 담고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계층 사람들이 생명의 씨앗인 믿음을 받아들였다. 보통 사람들과 노동자들, 하인들, 이들은 결코 너그러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로 교리문답이나 설교를 들으러 갔다.

 

어느 집에 모여 그들은 바오로가 하느님의 훌륭한 아들에 관해서 - 그가 낮은 자의 모습을 취했고, 희생하는 삶을 살았고, 대속하기 위해 죽었고, 또한 부활로 사람들에게 생명과 불멸을 주었던 것에 대해 - 말하는 것을 들었다.

 

주일로 가는 토요일 밤에 피를 흘리지 않는 신성의 희생과 감사의 의식을 행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 위해 모였다. 이러한 성찬식은 한 주 내내 정신적으로 교회를 살찌우고 신자들을 하나의 정신적 가족으로 연결했다.

 

각자가 세례받기 전에 누구였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유다인이든 우상숭배자이든, 종이든 자유민이든, 여자든 남자든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하고 바오로는 가르쳤다.

 

이렇게 안티오키아에는 나라나 출신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품어주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주님에 대해 예수라는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쓰인 처음의 일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사도 11,26 참조).

 

 

예수살렘에 구호 헌금 보내

 

이들 두 사도의 설교로 주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그 일년 동안 많이 늘어났다. 그들은 믿음을 단지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주후 44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굶주림에 처한 동포들을 위해 안티오키아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힘닿는 대로 구호 헌금을 가져와 바르나바ㆍ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다(사도 11,29-30 참조).

 

전에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안티오키아로 파견됐고, 그들을 통해서 진실된 믿음이 안티오키아에 전파됐다. 이러한 정신적 도움을 받고 물질적으로 보답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믿음의 결속은 사랑의 결속이 됐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이 고무시킨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1년 3월 20일,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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