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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17: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9 조회수4,457 추천수2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17)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


주님 은총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작가노트 = 철학과 정치, 학문, 예술의 도시 아테네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토론을 했다. 사도는 우상숭배에 젖어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참 하느님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청중들은 흥미롭게 그의 연설을 경청했으나, 예수님의 부활을 얘기하자 조롱하기 시작한다. 연설을 중단하게 되는 쓴 경험을 통해 사도는 주님 은총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릴 수 없음을 확인한다. 돌멩이 위에서 솟아나는 풀잎을 통해 주님 은총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그렸다.

 

 

밤을 틈타 바오로 사도는 실라스, 티모테오 등 협력자들과 함께 테살로니카를 떠났다.

 

열두 시간을 걷는 강행군 끝에 사도와 일행은 테살로니카에서 남서쪽으로 80㎞ 가량 떨어진 도시 베로이아에 이르렀다. 마케도니아 제3 행정구역에 속하는 이 조용한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사람들을 변호하는 자'라는 뜻)의 고향인 고대도시 펠라(Pella) 가까이에 있다. 그 용감한 군 통수자인 알렉산더 대왕은 이곳 베로이아를 출발해 고대 그리스 문화와 학문을 소아시아와 페르시아를 넘어 아시아에 전파했다.

 

바오로도 아시아에서 이곳으로 와서 그리스도교 문명과 한 분인 참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제국 백성들에게 보급했던 그리스어를 사용해 서방에 전파했다.

 

베로이아에는 하나의 작은 히브리 정착촌과 유다인 회당이 있었다. 바오로는 자주 그곳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성경에 근거해 선지자들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실현됐음을 증명했다. 베로이아 유다인들은 테살로니카 유다인 동포들보다는 친절했다. 그들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

 

또 이들만이 아니라 전에 우상숭배자였던 남자와 부인들, 그리고 상류층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됐다. 이들 가운데에 후에 바오로의 수행자가 된 베로이아 사람 피로스의 아들 소파테르도 있었다.(사도 20,4 참조)

 

 

훼방꾼에게 쫓겨 아테네로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테살로니카 히브리인들이 베로이아에서 활동하는 바오로의 선교 사실을 알게되자 이들의 활동을 저지하려 훼방꾼들을 보냈다. 그리스도인들은 조심스럽게 바오로를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시키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바오로는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베로이아에 남아 교회를 공고히 하도록 하고, 적에게 쫓기는 자신은 마케도니아를 떠나 그리스 중부로 가기로 결정했다. 베로이아 신자들 호위를 받으며 가까운 항구인 오늘날 엘레프테로호리온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피레아(Piraeus, '피레에프스'의 옛 이름) 항구로 갔다.

 

이제 그의 앞에 고대 세계, 그 오래되고 영광스러운 도시가 펼쳐진다. 아테네(Athenae) 여신의 도시! 여신의 이름을 본따 아테네로 불리는 도시! 대 철학자의 도시! 비극 작가들의 도시! 예술의 도시! 한 작은 민족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학문과 예술, 철학,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인류정신사의 최고봉에 도달한 경우는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우다. 그것이 아테네라 불리는 기적이다.

 

오늘날도 고대문명의 잔해 앞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바오로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오늘날까지도 고대 그리스문화의 비길 바 없는 예술품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감동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바오로가 아테네에 발을 내디뎠을 때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황금시대의 아테네가 아니었다. 로마제국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제국의 한 지역이었을 뿐이다. 도시는 쇠퇴기에 있음에도 로마 귀족사회와 로마 황족들에게 계속해서 매력을 끄는 도시로 남아 있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아우구스투스, 또 다른 황제들도 아테네의 훌륭함에 존경을 나타냈다.

 

바오로는 아테네인들의 생각과 관습을 알고자 며칠 동안 도시를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세워져 있는 우상을 보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고 실망했다. 그리고서 단 한 분인 참 하느님에 대해 유다인 회당에서 적은 수의 유다인들과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또 갖가지 신을 숭배하는 이전 우상숭배자들과도 아고라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던 낮은 언덕 아레오파고스(Areopagos) 아래에 있는 아고라(Agora)는 오늘날까지 잔재가 남아있으며, 외국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바오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도 그곳에서 만났다. 이들은 바오로가 예수와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바오로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외국의 신들에 관해 말한다고 여겼으며 의문을 품었다. 저 떠버리가 우리에게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바오로가 가르치는 것을 정확히 알고자 바오로의 손을 잡고 아레오파고스로 데려갔다. 그곳은 고대도시의 최고 법정으로 대법관 회의가 열렸던 곳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보는 아레오파고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바오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라고 했다.

 

바오로는 처음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공공장소에서 설교를 했다. 아레오파고스 위에 서서 온 도시를 내려다 봤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아크로폴리스 신전 입구와 파르테논이 보였고, 파르테논 왼쪽에는 빛나는 투구를 쓴 아테네 여신의 거대한 청동상이 보였을 것이다. 여신은 한 손에 번쩍이는 방패를, 다른 손에는 금빛 창을 갖고 있었다. 철학과 학문으로 무장된 바오로는 가장 뛰어나고 선택받은 아테네 청중 앞에서 우상 숭배의 어둠에서 아테네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빛과 사랑, 삶이고 한 분인 참 하느님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설교는 바오로 사도가 이 오래된 고대도시에서 봤던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에 대해 말하며 시작했다. "당신들이 알지 못했던 바로 그 신에 관해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왔습니다"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학생 시절에 공부하며 외웠던 그리스 철학자들 말을 인용해 '하느님 본성은 하느님 창조물을 통해 드러나며 신과 교통하기 위한 인간 영혼의 추구'라는 의미들을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 영혼이 신의 속성을 가졌음을 발견했다. 아레오파고스에서의 바오로 설교는 고대 수사학의 백미로 특징지워진다. 정확한 아티카 방언을 성공적으로 사용했고, 특정 청중을 고려했으며, 때와 장소에 적합한 설교였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22절에서 31절에 기록된 이 훌륭한 연설문은 독자 여러분도 차근차근 읽어보기 바란다. 청중들은 흥미롭게 설교를 경청했으나, 바오로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말하자 청중은 웃음을 터뜨리며 조롱한다. 바오로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연설을 계속할 수 없어 중단하게 됐다.

 

 

아테네에 첫 교회를 세우다

 

누군가 사도에게 말했다.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하고 말했다.(사도 17,32) 바오로는 이 말을 알아듣고 슬퍼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아레오파고스에서 이뤄진 설교는 바오로에게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 주님 은총이 없이는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함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 이유를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2테살 3,2)하고 말한다. 만일 사람이 '이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하느님의 지혜를 갈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은 그 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바오로가 집으로 가려고 떠날 때, 몇몇 사람은 그를 따라왔다. 바오로가 뒤를 돌아보자 교양 있고 점잖은 한 남자가 자신을 대법관인 디오니시오라고 소개했다. 그들 속에 한 친절한 귀부인인 다마리스도 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몇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바오로는 그들을 맞아들여 새로이 입교한 형제들과 함께 밤늦도록 머물며 예수에 대해 그들에게 말했다.

 

이들이 아테네에 첫 교회를 세웠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던 디오니시오는 아테네 주교로 수품됐다. 오늘날 아테네에 가장 품격이 높은 지역에 사는 아테네인들은 그의 이름을 딴 아름다운 성당을 지었고, 주후 95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때 화형을 당하고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그를 그들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기념하고 있다. 또 해마다 수많은 신자들은 아레오파고스에 모여 아테네 교회 설립자로서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며 그의 축일을 지내고 있다.

 

[평화신문, 2011년 5월 29일,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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