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창세기 - 베텔의 꿈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밤에도 그리고 낮에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수많은 세월 동안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내 마음속 미궁 같은 길로.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나는 숨었네, 겉으로는 연이어 웃으면서. 한순간 희망에 부풀어 오르다가도 두려움의 골짜기 거대한 울음 속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네. … ‘네가 나를 배반하기에, 모든 것이 너를 배반한다.’ … “내가 네게서 가지고 간 모든 것은 너를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것을 내 품에서 찾게 하려는 것이라….” (프랜시스 톰슨 ‘천국의 사냥개’에서) 천국의 사냥개는 인간의 모든 것을 다 빼앗습니다, 하느님 품에서 그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야곱은 하느님 품에서 그 모든 것을 다시 찾는 영적 여정을 베텔에서 시작합니다. 23,4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너무 극적인 장면을 접하고 나면 다음 장면에 대한 영상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23장과 24장이 그러하지만, 이 부분은 약속의 첫걸음이 실현되는 중요한 곳입니다. 23장의 첫머리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죽음이 곧바로 소개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는지 아브라함은 부랴부랴 아내의 묘지를 구입합니다. 이는 12장 이후에 나오는 첫 번째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묘지를 매매하는 절차가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이 내용은 선조 시대보다 훨씬 더 후대에 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팔레스티나에 있는 자신의 땅에 묻히고 싶은 유배민들의 원의를 선조 시대로 소급하여 기술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맥상으로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12,1),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12,7)고 하신 약속이 23장에 와서야 이루어집니다. 비록 동굴 하나지만 그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 전체를 품고 있는 씨앗입니다. 24장의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이 아름다운 ‘종의 기도’를 통해 개인의 삶에 드러납니다. 동시에 당신의 약속을 서서히 이루시는 하느님의 움직임도 드러납니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15,4-5)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이 혼인을 통해 후손과 연결됩니다. 땅과 후손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약속된 미래가 열립니다. 또 하느님의 섭리는 “낙타들도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계속 길어다 주겠습니다”(24,19), “가겠습니다”(24,58) 하는 등 너그러울 뿐더러 용기 있는 여성 레베카에게 아브라함의 종을 인도합니다. 시조모始祖母가 될 레베카는 주님의 이끄심을 믿고 기꺼이 낯선 땅으로 떠날 수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녔습니다. [성서와함께, 2009년 5월호, 배미향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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