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탈출기 - 나는 있는 나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 내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다.” 주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나는 주님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주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과거 속에서 살아갈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 살아갈 때 참으로 힘들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었던 자로서 이다(I Was)’가 아니다.” 네가 미래 속에서 살아갈 때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으로 살아갈 때 네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을 자로서 이다(I Will Be)’가 아니다.” 하지만 네가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는 자로서 이다(I Am)’이기 때문이다.” - 헬렌 말리코트(송봉모, 《광야에 선 인간》, 71-72쪽에서) 2,23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러자 고역에 짓눌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갔다. 24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탄식, 부르짖음,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모른 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삶을 직접 가까이서 ‘보고’ ‘들으시고’ 관계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이 하신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십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탈출 3,7을 통하여 강조됩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아신 그분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 인간사에 관여하시는 결정적 때가 이른 것입니다. 모세의 소명 이야기는 하느님을 향해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께서 구원의 응답을 시작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1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장인에게 빌붙어 사는 사위의 삶이 힘찰 리가 없습니다. ‘호렙’은 히브리어로 ‘황량한 곳’(불모지), ‘내버려진 땅’을 의미합니다. 호렙이라는 말처럼 모세는 지금 자신의 삶을 황량하고 내버려진 삶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죽했으면 희망찬 내일을 꿈꾸어야 할 아들의 이름을 ‘내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되었구나’ 하면서 ‘게르솜’이라 지었을까요?(탈출 2,22 참조) 비참하게도 젊었을 때의 열정은 사라지고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력감이 모세의 삶을 휘감지 않았을까요? 이렇듯 삶의 여정에 공허함과 쓸쓸함이 가득한 상황, 빈손을 내려뜨리고 어쩔 수 없이 하늘만 쳐다보는 버림받은 삶의 광야에 하느님께서는 놀랍게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성서와함께, 2009년 9월호, 배미향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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