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신명기 -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할지 모릅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 불치병 환자들의 글이 얼마나 진솔하고 절실한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영향을 준 분들이 남기고 간 글을 자주 대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황혼에 접어들어 파란만장한 삶을 남김없이 펼쳐 보이고자 자서전을 쓰기도 하지만,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일상에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죽음을 묵상하며 남긴 글들이 참으로 힘 있게 마음을 울립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기에 더욱 애틋하게 전해 옵니다. 1,1 이것은 모세가 요르단 건너편 아라바에 있는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다.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는 옷깃을 여미며 정신을 모아 말씀을 경청하고 마음 깊이 새기도록 초대합니다.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모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일종의 ‘유언’처럼 온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그는 율법을 성찰하고 지나간 구원 사건을 요약하며, 마지막 장까지 ‘말씀’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앞에 놓인 미래의 구원사를 위한 머리말입니다. 곧 모세는 이집트를 탈출한 후 40여 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의 백성에게 한결같이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하느님을 오로지 믿고 의지하며 율법에 순명하기만 하면, 약속의 땅에서 행복의 미래를 펼 수 있으리라고 격려합니다. 종살이와 같은 어둔 밤이 지나고 이제 새날이 동트고 있음을 일깨웁니다. 이 새날은 태양이 비추는 대낮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신명기는 구약성경의 어떤 책보다 우리에게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보여 줍니다. 세상에서 구현될 하느님의 뜻과 길을 밝히며 그것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 가르침이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반영되기를 희망하며 다시 신명기의 첫 장을 엽니다. 1,5 모세는 요르단 건너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머리말(1,1-5)은 신명기 전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을 읽을 때 두 가지 사실이 두드러집니다. 첫 번째, 여행일지처럼 시간과 장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아라바, 숩, 파란, 하체롯, 열하루, 사십 년째 되던 해, 열한째 달 초하루….’ 여기에 제시된 시간과 장소가 탈출기와 민수기, 신명기의 광야 여정을 연결시키고 있어 섬세하게 짚고 읽어야 합니다. 모세 오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면, 이스라엘은 탈출 19,1에서 시나이 산에 도착하여 레위기를 걸쳐 민수 10,10까지 진지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민수 10,11에서 다시 시나이 산을 출발하여 광야 여행을 계속하였고, 마침내 요르단 기슭 모압 땅에 도착합니다. 신명기의 전체 무대는 오로지 모압 땅입니다. 신명기를 여는 장소도 모압 땅이고(신명 1,5 참조), 모세가 죽는 곳도 마찬가지로 모압 땅입니다(신명 34,5 참조). 여러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신명기가 아주 구체적 방법으로 역사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책으로 읽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명기는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하느님과 동행한 특별한 백성의 구체적 삶과 체험에서 발생되었습니다. 그 체험은 하느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율법 형성에 영향을 끼쳤고, 토라는 특정 시대에만 제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에 가르침을 준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에도 우리 삶을 비추어 줄 수 있습니다. [성서와함께, 2010년 11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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