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17) 인간이 땅을 지배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느님 뜻에 맞갖은 다스림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내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땅을 지배하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 이 구절은 마치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고 훼손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유를 갖고 있는 것처럼 잘못 해석되기도 했다. '땅을 지배하여라'의 성경적 의미는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땅은 온전히 하느님에게 종속돼 있는 그분 소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땅의 창조주로서 땅에 대해 절대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여기에 숨을 불어넣어주셨다. 이것은 이 땅을 인간에게 맡기시어 그 주인으로 삼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인간은 땅을 지배하게 됐던 것이다(창세 1,23-28).
하느님의 피조물이자 소유물인 땅은 하느님께서 만드셨다. 성경은 땅이 인간보다 먼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하느님께서는 물 가운데서 마른 곳을 드러나게 하시어 땅이라 부르시고, 여기에 식물과 동물을 번식시키신다(창세 1,3-27). 이처럼 땅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인간의 생활 터전이다.
고대로부터 땅은 인간 생활의 터전일 뿐 아니라 땅과 인간 사이에는 밀접한 유대관계가 존재한다. 성경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통해 인간이 장차 땅과 관련을 맺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신다.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창세 15,18).
따라서 땅은 인간이 관리하는 하느님의 정원과도 같다. "주님께서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정해진 날수와 시간을 그들에게 주시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다"(집회 17,1-2). 이는 하느님에게 속한 땅을 얻는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느님 계약을 기억하고 계명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인간이 땅을 잃거나 얻지 못하는 것과 땅이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엄하신 심판은 하느님께서 주신 땅으로부터 쫓겨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하느님의 역사적 현장과도 같다. 그런데 자연이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하느님 뜻에 맞갖은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이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창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서 번성하고 땅을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땅을 지배한다는 것은 창조의 완성이자 구원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땅에서 일어나는 각종 질병과 자연재해, 농사의 악조건 등 자연을 잘 다스려야 한다.
'땅을 지배하여라'의 성경적 의미는 인간이 자연을 훼손시키거나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이 인간 삶의 공간으로 의미가 있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1년 12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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