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22)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까
카인의 질투와 살해에 주목해야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창세 4,1-5).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제사는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카인의 질투가 결국에는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게 만든다. 하느님께서는 왜 카인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을까?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왜 카인의 제물을 거절하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래서 추측만 할 뿐이다. 이 질문에 많은 학자들이 해답을 시도했다. 이 이야기 배경에는 가나안지역의 민족들보다 이스라엘 민족을 더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가나안지역 사람들은 농경문화를 이루며 부유한 경제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목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지역 사람들에 비해 경제적 부를 누리지 못해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신들은 그래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우월감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성경 원어를 보면 카인이 바친 예물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바치는 예물이다. 그것은 속죄 제사도, 축제 제사도, 안식일 제사도 아니었다. 본래 속죄 제사 때 바치는 제물은 코르반(korban)이라고 한다. 본문대로 보면 카인은 자신이 수확한 것 중에서 맏배를 바치지 않았던 것이다. 맏배를 바치는 것은 인간이 취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첫 소출을 정성껏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다.
아벨은 카인과 달리 맏배를 정성껏 바쳤고, 그 결과 하느님께서 그의 예물을 받아들이셨다.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아벨은 예물과 함께 자기 자신을 바쳤던 것으로 묘사된다. 아벨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을 기꺼이 굽어보시고,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하느님께서는 장자 특권을 지닌 카인보다 오히려 기득권에서 밀린 아벨에게 더 호의를 보이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굽어보셨다고 해서 카인을 미워하거나 내치신 것은 아니다. 또 하느님께서 한쪽을 선택하셨다고 해서 다른 쪽을 버리신 것도 아니다. 카인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자기 제물을 받아 주시지 않은 것에 화를 내며 죄 없는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였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냐가 아니라 미움과 질투, 폭력의 문제다. 이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기본 자세다.
[평화신문, 2012년 2월 1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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