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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20: 예리코의 눈먼 이 (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7 조회수4,761 추천수1
[마르코 복음서 다시 읽기] (20) 예리코의 눈먼 이 (2)


10,46-52에서 우리는 마르코 복음서의 주제인 ‘예수님의 정체’와 ‘예수님 뒤따르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작은 등장인물인 예리코의 눈먼 이를 만난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러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신앙을 표현한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뒤따르는 참된 제자이다. 지금까지 10,46-52 본문을 자세히 읽은 우리는 이제 본문의 문맥을 살펴볼 것이다. 본문이 위치하는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본문의 역할과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③ 문맥 살피기

마르코 복음서 전체에서 10,46-52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을 보도하는 8,27-10,52의 끝 부분에 위치한다. 즉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여정과 예루살렘 입성 사이에 위치한다. 전체 문맥에서 본문을 전후 본문과 비교해 보자.

10,46-52의 앞 문맥

먼저 10,13-16과 10,46-52을 비교해 보자. 두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10,13에서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10,47에서는 눈먼 이가 예수님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방해를 받는다. 두 본문에서 동사 ‘꾸짖다(ejpitiman)’가 동일하게 사용된다. 10,14-16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에 대해 가르치시어 제자들이 그들에게서 배우도록 초대하신다. 즉 어린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리코의 눈먼 이 바르티매오에게서 이 어린이의 조건을 발견한다. 그는 신체적·사회적 조건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에 대한 그의 믿음에서 눈먼 이는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모범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10,17-22과 10,46-52의 비교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에게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10,21)고 말씀하신 후 “나를 따라라”고 초대하신다. 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떠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 뒤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전형을 발견한다. 이에 반해 본문의 눈먼 이는 ‘가라(u{page)’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그가 가진 것의 전부인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을 뒤따른다. 여기서 눈먼 이는 예수님을 뒤따르는 사람의 전형으로 나타난다.

10,23-27에는 재산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서술된다. 26절에서 제자들은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tiv?duvnatai swqh'nai?”라고 묻는다. ‘구원되다’는 17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다’로 표현된다. 부자가 ‘예수님 뒤따르기’를 거부하여 구원에서 멀어졌다면, 본문의 눈먼 이는 ‘예수님 뒤따르기’의 모범일 뿐 아니라 구원된 사람의 전형이다. 또 10,28에서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포기와 추종의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리고 32절과 33절에서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는 언급은 10,46-52의 공간적 배경인 예리코와 연결된다.

또 흥미로운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두 본문의 시작 부분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언급한다. 예수님과 관련되는 인물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소개된다. 10,35에서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으로 소개되고, 10,46에서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 두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0,36)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10,51) 이 질문에 대하여 제베대오의 아들들은 영광 중에 예수님과 함께 앉기를(kaqivswmen) 원하지만(10,37 참조), 더 이상 앉아 있지(ejkavqhto) 않는 눈먼 이는 다시 보기를 원한다(10,51 참조). 이 대답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아들들을 나무라신다. “너희는 … 알지도 못한다”(10,38).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와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다시 보게 되어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는 본문의 바르티매오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본문 바로 앞에 위치하는 10,41-45에서 예수님께서는 권위와 봉사에 대해 가르치시는데, ‘높은 사람’과 ‘섬기는 사람’, ‘첫째’와 ‘종’이 각각 대조된다. 이 대조는 10,13-45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대조와 연결된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다’와 ‘어린이처럼 되다’(10,13-16 참조), ‘재산을 버리다’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다’(10,17-22 참조), ‘사람에게 불가능하다’와 ‘하느님께 가능하다’(10,27 참조), ‘포기’와 ‘추종’(10,28-31 참조), ‘죽음’과 ‘부활’(10,33-34 참조), ‘영광’과 ‘수난’(10,35-40 참조). 이 대조되는 문맥에서 본문의 눈먼 이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포기의 모범이며, 수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을 뒤따르는’ 모범이다.

[성서와함께, 2012년 2월호, 송창현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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