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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도덕 해설: 무지개, 계약의 표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3 조회수5,557 추천수1
[성경과 도덕 해설] 무지개, 계약의 표지


‘구약, 신약’이라는 말 자체가 ‘옛 계약, 새 계약’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 성경에서 얼마나 여러 곳에서 계약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대충 상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꼭 계약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지 않더라도 성경에서 는 늘 계약이라는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리라.” 이것이 계약의 핵심이라면, 성경이란 다름 아닌 서로에게 속하는 백성과 하느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약성경에 나타난 계약에 대해 말하자면 구약성경을 모두 공부해야 하겠지요. 그건 물론 한두 달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과 도덕」에서는 간략하게나마 구약성경의 여러 부분들에 나타난 계약을 살펴보는데, 그것을 더 요약했다가는 살 없는 생선 가시만 남게 되겠기에 이번에는 다른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차라리 살 있는 생선 두 토막만 먹자는 것입니다. 생선에서 제가 택한 부위는 노아의 계약과 십계명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계약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단연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에 있었던 시나이 계약이고, 그 계약에서 인간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길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은 다음 달에 보기로 하고, 이번 달에는 노아의 계약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노아의 계약은 특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위하여 중요한 메시지들을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에게 보여주신 무지개

10년 전의 시험 문제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노아의 홍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창세 8,21의 말씀을 가지고, “인간 앞에 선 하느님”에 대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답을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없지요. 하여튼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인간과 계약을 맺으시는 하느님께서 인간 앞에서 어떤 분으로 나타나시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처음으로 계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입니다. 홍수 때에 물은 온 세상을 덮습니다. 이것은 꼭 이스라엘과 하느님 사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살덩어리”가 타락했고(창세 6,12) 그래서 하느님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들까지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생각하십니다(창세 6,7). 죄가 보편적인 그만큼 징벌도 보편적입니다.

그렇지만, 죄와 징벌이 보편적이었던 그만큼 홍수가 끝난 다음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맺어주시는 그 계약도 보편적입니다. 그 계약은 노아나 노아의 후손, 이스라엘 또는 인간하고만 맺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짐승들을 포함하는, “모든 살덩어리”와 맺으신 계약입니다.

그 계약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은 “하느님 주도권의 무상성과 그것의 보편적인 성격”(「성경과 도덕」, 21항)입니다.

무상성! 조금 전에, 10년 전의 시험 문제가 창세 8,21에 대한 것이었다고 했었지요. 홍수가 그친 다음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창세 8,21).

하느님은 인간이 “악하지만” 눈감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악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것이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약함이고 한계인 줄을 아시기 때문에, 그 약함보다 더 크신 당신의 자애로 인간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무상성”입니다. 인간이 훌륭해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하기에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인간을 그저 당신 것이라고 아껴주시는 것이 무상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10년 전 그 시험 문제에 저는, 창세 8,21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시편 103편이라고 썼었습니다. (그리고 100점 받았습니다.) “해 뜨는 데가 해 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신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시편 103,12-14).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계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세워주십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창세 9,13)라고 되어있지요. 여기서 “무지개”라고 번역된 단어는 무지개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보통은 활을 뜻합니다. 지금의 본문에서도 “활”이라는 의미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 활은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로서 “하느님과 새로이 태어난 구원된 인류 사이에 맺어진 계약”(「성경과 도덕」, 21항)을 상징하는데, 하느님의 활이 땅을 향해있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땅에 평화를 약속하심을 뜻합니다. 활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면 화살이 땅을 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아와 맺으신 계약의 의미

노아의 홍수 이야기, 그 신화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엄청나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만이 아니라 기원전 2천 년기 고대 근동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노아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홍수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생태학적 관점에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과 폭력이 우리가 사는 곳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하느님의 창조 업적을 혼돈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갖가지 환경 재앙을 눈앞에 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보았듯이,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것이 후쿠시마 원전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연 질서를 존중하지 않을 때에 인간에게는 천재지변보다 훨씬 더 무서운 재앙이 닥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간학적 관점에서, 타락한 세상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존엄을 보존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창세 9,6 참조). 인간이 비록 죄에 떨어졌고 노아 세대처럼 그 결과로 닥친 재앙을 겪는다 하더라도, 다시 그 인간에게 첫 창조 때와 같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창세 9,7)는 축복이 주어집니다. 인간이 망가뜨린 세상을 다시 하느님의 계획대로 되살리는 것 역시, 다른 어떤 피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하느님의 뜻을 알아 행할 수 있는 인간에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자원 관리의 관점에서, 인간에게는 동물의 생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한이 주어집니다. 창세 1,29에서 인간은 풀과 과일을 양식으로 받는데, 이제는 동물들도 양식으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창세 9,3). 그러나 창세 9장은 창세 1장의 세상을 다스리라는 말씀과 연결되고, 인간은 모든 생명을 신비한 것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약속

여기에서, 「성경과 도덕」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지만 제가 소중하게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창세 8,21)는 약속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땅을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땅이 인간 때문에 멸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오늘의 세상을 보면, 어쩌면 이 지구는 인간들의 손에 머지않아 죽임을 당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이 땅과 함께 아파하고 땅을 살리고자 애쓰는 작은 노력들은 인간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모습”(창세 1,27)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2).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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