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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복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3 조회수5,066 추천수2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근 영국에서 인류사에서 빛나는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는 인터넷이고 두 번째는 문자라는 의견이 수렴되었다. 인터넷과 문자는 현재 가장 큰 소통과 나눔의 수단이다. 예수님은 인터넷과 문자를 이용하시지 않고 어떻게 소통하셨을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지금까지(요한 4장)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직접 알려주신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6). 이 어구는 하느님이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시는 표현이다(탈출 3,14; 이사 43,10).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복음서의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길다. 이렇게 길게 대화하시는 이유는 그녀에게 하느님의 선물을 알게 하고 당신을 만나게 해주시기 위해서다.


하느님의 선물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시려는 하느님의 선물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오자 마실 것을 달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두 가지 핵심을 말씀하신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두레박도 없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생명의 물, 살아있는 물)를 마련하실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당신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힘차게 솟는 물의 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음서에서 야곱의 우물은 물이 고여있는 우물로 표현되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흐르는 샘으로 되어있다. 예수님이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생수는 성령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예수님은 이 선물을 주시려고 어떻게 하시는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정오에 물을 길러 온 불쌍한 여인에게 다가가 먼저 말씀을 건네신다. 그 당시의 유다 남자라면 절대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도 걸지 못할 상황에 물을 달라고 청하신다. 얼마나 놀랍고 감동적인가!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이유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하여 주민들을 아시리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다른 지역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옮겨와 살게 한다(2열왕 17장). 그 결과 아시리아 신과 야훼 신앙이 혼합되고, 혼혈민족 사마리아인들이 생기게 된다.

남유다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뒤(기원전 538년) 유다 민족과 다른 민족 간의 혼인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함께 성전을 짓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요청도 거절하면서 더 이상 서로 거래도 하지 않는다.

이에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짐 산에 성전을 짓고(기원전 400년경) 제사를 지냈는데, 유다 임금은 유일한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다며 그 성전을 파괴한다(기원전 128년).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계속 그 산에서 제사를 드렸고 이러한 갈등은 예수님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제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을 알려주시려고 남편 이야기를 꺼내신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명령하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여섯 번째 남자는 동거하는 사람이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알아맞히시는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을 보고 외친다. “예언자시군요!”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를 꾸짖지 않으시고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다. 그녀는 자신의 신세타령 대신에 영적인 것에 대해 묻는다. “당신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믿지만, 모세오경만 받아들이기에 온전한 예배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명령하신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6). 그녀는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고을로 뛰어가 말한다. “와서 보십시오.” 고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달려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한다. 그녀는 일곱 번째 남자, 곧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필요했다!(성경 전통에서 숫자 6은 상징적으로 불완전한 수이고 7은 완전수다. 카나 혼인잔치에서 물독 여섯 개, 요한 묵시록에서 666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과 친구 되기

필자는 이 이야기를 자세히 읽으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시지만 또한 권위 있게 여러 번 명령도 하신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명확하게 길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정확한 삶의 방향을 모를 때 방황한다. 예수님은 올바른 예배방법과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확실히 가르쳐주신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다 알려주었기에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시지 않으셨던가!(요한 15,15 참조)

우리 인생에서 삶의 인도자를 정확히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도 예수님을 진정한 친구로 만나고 싶다면 그분과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에 대해 물으셨을 때,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하고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과 머물며 솔직히 대화하면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구원의 빛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벅차고 환한 얼굴로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그들과 함께 “당신은 세상의 구원자이십니다.” 하고 노래했을까!

왜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실까? 성경에서 우물가는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곳이다(모세와 치포라, 야곱과 라헬).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시려고 우물가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미사와 성체조배 또는 성경이라는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음성을 들어보자.

우리 수녀원 성당의 난방을 켤 때 나는 소리는 마치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난방을 켜도 아무 소리가 없고 별로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보일러 관의 공기를 빼고 나니 보가 터지듯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성당 바닥도 금방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공기가 차서 물의 흐름을 막은 것이다.

요 근래에 필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의원에 갔더니 몸에 막힌 데가 있어서 아프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데도 소통이 중요하고, 공동체에서도 서로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몸도 막힘이 없이 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하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흐르는 샘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지속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의 어려움도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이웃과 소통하면 머리와 가슴은 시원하게 뚫린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머리’와 ‘가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머리로는 예수님과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슴으로는 그분 안에 머물며 말씀을 맛보고 진리의 영, 성령을 느껴보아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점차 성숙되어 갔다. 처음에는 ‘유다 남자’로만 알다가 ‘선생님’, ‘예언자’, ‘그리스도’ 그리고 이웃과 함께 ‘세상의 구원자’임을 고백했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분이 오셨다.”, “그분을 만났다.”라는 것을 체험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필자는 어느 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그분이 오셨음을 느낀 적이 있다.

요즈음 소통, 열린 대화, 섬세함, 영적 유연성, 그리고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요한 복음서 저자가 성령을 왜 ‘바람’ 또는 ‘흐르는 샘물’로 표현했는지도 알 것 같다.


기도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시겠다고 하신(묵시 21,6 참조) 주님, 삶에 지치고 무기력한 저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그 물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가 언제나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주시는 목자 - 어린양을 따라가게 하소서(묵시 7,17 참조).

* 이혜자 인덕마리아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요한 복음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글 이혜자 · 그림 조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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