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여행] 제2 이사야서(이사 40-55장)의 신학 사상 (1)
이사야 예언서의 제2부(40-55장)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기원전 551∼529년)가 고대 근동 지역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한 때부터 기원전 539년 바빌론에 무혈 입성하기 직전까지의 기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1. 제2 이사야 예언서의 구분
50여 개의 작은 신탁이나 시들만이 나열되어 있는 제2 이사야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부분(40-48장과 49-55장)으로 명백히 나누어 볼 수 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된 대상이 첫째 부분에서는 주로 야곱 - 이스라엘, 둘째 부분에서는 시온 - 예루살렘으로 언급된다. ㉡ 첫째 부분에서는 야훼 하느님의 유일성과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바빌론의 멸망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맞게 될 해방을 노래하지만, 둘째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향에 이어 예루살렘과 시온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선택된 민족의 영화가 그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할 ‘기름부음 받은 이’로 선택한 키루스가 41-45장에만 등장할 뿐, 후반부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2. 제2 이사야 예언서의 신학 사상
1) 제2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 하느님
① 창조주 하느님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세상을 창조하신 야훼 하느님을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분으로 선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야훼 하느님의 창조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탈출(제2의 출애굽)과 연결되어, 그들의 바빌론으로부터의 탈출과 유다 땅으로의 귀향을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행위로 규정한다(43,1.7.15; 48,7).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완성자이시기 때문에 그분 이전에 또 그분이 후에 다른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으며(43,10; 44,9-20.24; 46,5-6), 당신의 역동적인 말씀으로(55,10-11)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다(44,24).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구약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전적으로 표현하는 히브리어 동사 ‘바라’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모두 54번 등장하는데, 이 중 16번이 제2 이사야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이 동사를 통해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펼치시는 하느님의 창조 행위와 구원 행위를 표현한다.
② 유일하신 하느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에 내포되어 온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예언자가 바로 제2 이사야이다. 그는 야훼 하느님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44,6; 45,18.22; 46,9) 지상의 어떠한 세력도 그분께 대항할 수 없는 분으로 표현하는(40,12-26) 반면에 이방인들이 믿는 신은 아무 쓸모도 없고(41,24; 44,9-20), 인간의 역사 안에서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는 나무토막들과 쇠붙이와 같은 존재라고 부른다(40,19-20; 46,5-7).
③ 구원자이신 하느님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님으로서(45,11-18; 48,12-16), 세상 창조 때부터 구원 계획을 구상하셨고, 아브라함과 야곱을 불러 이들을 출발점으로 하여 당신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도록 준비하셨다(41,8-10; 51,1-30). 다른 예언자들처럼 제2 이사야 예언자도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유배를 그들의 죄에 대한 야훼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보지만(42,24-25; 48,17-19),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당신의 본래 계획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정화하여 구속하는 것이 바로 그분께서 의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48,9-11). 그러므로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자신의 동포들에게 그들을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만을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라고 호소한다(40,27-31; 51,1-16). 이러한 호소를 통해 그는 바빌론 유배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시기를 보내며 실의와 좌절에 빠진 자신의 동포들에게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확신과 용기를 부르짖었다.
④ 아버지이신 하느님
제2 이사야 예언자는 그의 예언서에서 ‘사랑하다’는 동사를 두 번 사용하는데, 두 번 다 하느님이 주어로 한 번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48,14) 다른 한 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43,4).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당신 백성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자주 그리고 다양한 상징적인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임금이신 하느님께서(41,21; 43,15) 등 당신의 백성을 바빌론 유배로부터 구원하시려는 지금 그분의 왕권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데, 제2 이사야 예언자는 그 모습을 목자라는 은유를 통해 더욱 뚜렷이 표현한다(40,11).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그들에게 구원과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으로 이어진다(43,6; 45,10-11). 제2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강하다고 역설한다(49,14-15). 이스라엘을 ‘빚어 만드신’(45,11)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떤 어머니보다 더 자애로운 ‘어머니’이시다. [2010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예언서 여행] 제2 이사야서(이사 40-55장)의 신학 사상 (2)
2) 주님의 종
① 주님의 종은 누구인가?
제2 이사야 예언서에는 ‘주님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네 가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이사 42,1-4(5-9); 49,1-7(8-13); 50,4-9(10-11); 52,13-53,12]. 지금까지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노래들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2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하고 있는 ‘주님의 종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로, 거의 모든 유다교 주석가들은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LXX)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아적 해석에 반대하면서 ‘주님의 종’을 현존하는 또는 이상적인 이스라엘 백성, 혹은 그 가운데에서 선별된 단체로 해석한다(집단적 해석). 이 해석의 출발점은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이사 49,3)는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종으로 불리고, 자주 한 개인처럼 말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사 49,5-6에서 ‘주님의 종’이 이스라엘 백성을 복구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종을 이스라엘 백성 또는 그 가운데에서 선별된 단체로 해석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 둘째는 개인적 - 예언자적 해석이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주님의 종’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에서 활동한 이사야, 예레미야, 또는 제2 이사야로 보기도 하고, 장차 재림할 모세 또는 세상의 종말에 나타날 예언자로 보기도 한다.
㉢ 셋째는 개인적 - 왕적 해석이다. 비록 제2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의 종’에게 ‘임금’이라는 칭호를 한 번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주님의 종’은 예언자보다는 임금의 모습을 더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주님의 종’을 다윗의 후손으로 바빌론에 끌려간 임금 또는 그의 자손, 또는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로 불렸던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이사 45,1)로 제시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이상적인 임금으로 제시된 메시아로 이해하기도 한다.
② 주님의 종의 노래에 대한 설명
첫째 노래(42,1-4)는 주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시어 당신의 영을 불어 넣은 ‘주님의 종’을 장엄하게 소개한다. 이 노래에서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충실히 선포하고, 이 땅에 하느님의 가르침(율법)을 전하는 제2 이사야 예언자 자신에 비유되기도 한다. 주 하느님께서 민족들을 다스릴 전권을 위임하신 이 종은 세상의 다른 통치자들과는 달리 조용하고 부드럽게, 또 절망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다.
둘째 노래(49,1-7)는 ‘주님의 종’이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모태에서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49,1-4; 참조 예레 1,5) 주님의 구원이 세상 끝까지 미치도록, 세상의 빛이 될 사명을 받았다(49,5-6 참조)고 만민에게 선포한다. ‘이스라엘’로도 불리는 이 종(이사 9,3 :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실패해 사람들로부터 심한 멸시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종으로 빚어 만드신 하느님께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심을 확신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는 일꾼만이 아니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우심으로써, 세상 임금들이 그를 경배하게 된다(7절).
셋째 노래(50,4-9)에서 ‘주님의 종’은 자신의 존재와 사명 수행의 역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밝힌다. 주님의 특별한 제자인 이 종은 자기 임무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을 때리며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비켜서지도 않는다. 그는 주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해주시기에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걷는다.
가장 긴 넷째 노래(52,13-53,12)는 당신의 ‘의로운 종’에 대한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52,13-15; 53,11-12). 그 사이에(이스라엘인들이나 이민족들, 또는 둘 다 일 수도 있는) 일단의 사람들의 보고와 고백이 나온다. 이 종은 학대받고 천대받다가 마침내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죄가 ‘우리’의 죄임을, 그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짊어지고 갔음을 그가 자신을 ‘많은 이들’을 위한 ‘속죄제물’로 내놓은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주님은 당신 종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음을 선포하고 그를 ‘더없이 존귀하게’ 들어 높이신다.
③ 신약성경 안에서의 주님의 종의 노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의인으로서 ‘고난받는 주님의 종’(50,4-9), 특히 속죄의 죽음을 겪는 주님의 종(52,13-53,12)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고 실현되었다고 해석한다. 신약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된 주님의 종의 노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사 53,12 ⇒ 루카 22,37; 이사 53,10-12 ⇒ 마르 10,45; 14,24; 이사 53,1-12 ⇒ 사도 8,26-39 등.
[2010년 6월 6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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