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서 여행] 바룩 (1)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된 구약성경의 정경 목록에 따라 바룩서를 교회의 정경 목록으로 받아들이지만,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만 쓰인 구약성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유다교와 개신교에서는 바룩서를 정경 목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1. 바룩은 누구인가?
6장의 ‘예레미야의 편지’를 제외한 이 책은 전통적으로 남부 유다 왕국의 서기관이자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요 친구로서 그의 삶과 신탁을 후대에 전한 바룩(히브리어로 ‘바룩’이라는 말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에 의해서 쓰인 것으로 여긴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증언(예레 36; 43장)과 바룩서의 서문에 의하면, 바룩은 유다의 명문 가문 출신으로 “힐키야의 현손이며 하사드야의 증손이고, 마흐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바룩 1,1ㄴ)이다. 그는 남부 유다 왕국의 서기관으로 재임하고 있는 동안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레미야의 신탁을 두루마리에 적어 유다 임금 여호야킴에게 전달했으나(예레 36,1-21), 그의 신탁을 들은 여호야킴 임금은 그 내용이 실현되지 않도록 예레미야의 신탁을 적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칼로 조각내어 불살라 버렸다. 그러자 바룩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 내용을 더 늘린 두루마리를 다시 만들었다(예레 36,27-32). 예루살렘이 바빌론 제국에 의해 파괴된 이후 바룩은 예레미야와 함께 친바빌론파로 몰려 친이집트 세력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갔다(예레 43,6-7).
2. 활동 연대와 장소
바룩서가 언제 쓰였는지에 대해 성경 본문은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1,2은 바룩이 “칼데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불태운 지 오년째 되던 해”(1,2), 즉, 기원전 582년 바빌론(1,1ㄱ)에서 이 책을 썼다고 기록하지만, 1,9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여콘야를 비롯하여 고관들과 포로들과 세도가들과 나라 백성을 예루살렘에서 끌어내어, 바빌론으로 데려간 뒤의 일”, 즉 기원전 592년경으로 소개한다. 이처럼 바룩서는 바빌론 제국의 제1차 예루살렘 침공(기원전 597년)과 제2차 예루살렘 침공 및 파괴(기원전 587년)를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에서는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불태웠다고 전하는 반면에 1,7 이하에서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보존되어 있고, 그곳에서 전례가 거행되고 있는 것으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바룩 1,7 이하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 시절보다는 기원전 538년 이후 페르시아의 키루스 황제 통치 시절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에즈 1,2-7 참조).
3. 바룩서의 구조와 내용
바룩서는 내용과 문학양식에 따라 크게 네 부분(역사적인 서문 1,1-14; 유배자들의 참회 기도 1,15-3,8; 지혜에 관한 명상 3,9-4,4;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 4,5-5,9)으로 나누어진다.
1) 역사적인 서문 : 도입부(1,1-14)
바룩서의 서문(1,1-14)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의 역사적인 배경을 담고 있다. 표제(1,1-2)는 이 책의 저자인 바룩과 저술 연대에 대해 언급하고, 서문(1,3-14)은 바룩이 바빌론 제국의 포로가 된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고관들과 백성들 앞에서 이 책을 낭독했다고 보도한다(1,3-5).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다인들은 돈을 모금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면서 그 돈으로 번제물과 속죄 제물과 유향을 사고 곡식 제물을 장만하여 주 하느님의 제단에 바쳐 달라고 부탁한다(1,6-10). 그리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와 그의 아들 벨사차르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 책을 축일과 정해진 날에 주님의 집에서 봉독할 것을 당부한다(1,11-14). [2010년 12월 12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예언서 여행] 바룩 (2)
2) 유배자들의 참회 기도(1,15-3,8)
산문 형식으로 쓰인 이 부분에서 바룩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들이 하느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1,15-2,10)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청하는 참회 기도를 바친다(2,11-3,8).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때로부터 현재 바빌론 유배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그분을 거슬러 살았기 때문에(1,15-2,10), 모세를 통해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신명 27-30장)가 이스라엘 백성의 삶 안에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43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듯이,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느님께 되돌아 오면 바빌론 유배라는 참담한 현실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이다.
3) 지혜에 관한 명상(3,9-4,4)
“이스라엘아! 생명의 계명을 들어라. 귀를 기울여 예지를 배워라”(3,9)는 말로 시작하는 이 대목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임을 천명하는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지혜문학을 반영한다.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버린 것이 바빌론 땅에서 유배살이를 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하면서 하느님을 찾아 생명을 얻으라고 권고한다.
4) 예루살렘을 위한 권고와 위로(4,5-5,9)
“용기를 내어라”(4,5)는 격려의 말로 시작되는 이 대목은 4,9a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에게 내린 지혜의 말씀(4,5-8)과 그 뒤에 예루살렘의 자녀들에게 내린 위로와 권고의 말씀(4,9b-20; 4,21-29)으로 연결되어 있다. 4,30-35에서 바룩서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억압하는 도시들에게 내릴 영원한 파멸을 선포하고, 4,36-5,9에서는 하느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4. 바룩서의 신학사상
바룩서는 애가처럼 하느님의 자애와 공정을 재천명하면서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신명기 신학을 충실히 반영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재앙(바빌론 유배)의 원인을 자애롭고 공정하신 하느님께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나큰 자애를 베푸시어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 주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가나안 땅의 온갖 잡신(우상)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바빌론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애로우신 하느님께 호소하는 것뿐이다.
이처럼 바룩서의 저자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와 신명기의 신학사상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을 부각시킨다. ① 첫째로 바룩서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겪고 있는 바빌론 유배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유배는 그들의 조상들이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다시금 기억하고 그들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되돌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② 둘째로 바룩서의 저자는 토라, 즉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의 길에 들어선 것은 지혜의 샘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토라, 즉 율법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③ 셋째로 바룩서의 저자도 애가의 저자처럼 예루살렘을 여성으로 인격화한다(다만 애가에서는 시온 / 예루살렘이 딸로 표현된 것에 반해, 바룩서에서는 모든 것을 빼앗긴 홀어미로 표현된다). 바룩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낯선 땅에서 돌려보내시리라고 말하면서 절망에 빠진 홀어미를 들어 올리시고 정의와 평화와 거룩함을 전파할 새로운 소명을 주실 것이라고 선언한다(5,3-5). [2011년 1월 30일 연중 제4주일(해외원조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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