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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예언서 여행: 에제키엘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7-28 조회수5,879 추천수2
[예언서 여행] 에제키엘서 (1)


1. 에제키엘 예언자는 누구인가?

‘강하다’ 또는 ‘힘이 세다’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하자크’에서 유래한 에제키엘 예언자의 이름은 ‘하느님은 강하시다’ 또는 ‘하느님께서 힘을 주신다’는 의미를 지닌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본래 차독 계열의 사제인 ‘부즈’의 아들로 태어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에제1,3). 그는 자신의 집에 이스라엘 백성의 원로들을 모아 놓고 말을 하거나, 원로들이 그의 집으로 찾아와 자문을 구할 정도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에제 8,1; 20,1 참조).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신비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에제키엘 예언자는 환시들을 보고 때로는 며칠씩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1,1.4-28; 3,10-15; 37,1-10 등),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의 예언을 선포하기도 했으며(3,25-26; 4,1-15; 5,1-4; 12,1-7; 24,15-18; 37,15-17 참조), 이따금 실어증(失語症 : 3,26; 24,27; 33,21-22) 및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또 집에 앉아 있으면서 환시 속에 예루살렘을 돌아다니기도 했다(8장).


2. 에제키엘 예언자가 활동하던 역사적인 배경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불행하고도 비참한 시기에 활동했다. 기원전 587년 8월 바빌론 제국이 예루살렘을 함락함으로써 남부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치드키야 임금은 눈이 뽑힌 채 귀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또한 솔로몬 임금 이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현존하시는 장소로 인식되던 예루살렘 성전은 이교도들의 손에 의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2열왕 25,1-21). 이러한 상황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남부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침없이 다가오는 이 큰 불행을 유배지에서 바라보면서 폐허가 된 조국과 뿔뿔이 흩어진 동족들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3. 에제키엘 예언서의 구조와 내용

에제키엘 예언서는 예레미야서나 이사야서처럼 도입부(1-3장)를 빼면, 크게 ①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선포(4-24장)와 ②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심판 선포(25-32장), 그리고 ③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 선포(33-48장)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도입부(에제 1-3장)

에제키엘 예언자가 받은 환시와 그의 소명을 전하는 도입부는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크게 손질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에제1,1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제삼십년 넷째 달 초닷샛날”에 환시를 보고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1인칭으로 고백하는 반면에, 2절은 “그달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이라는 또 다른 연대를 언급하면서 에제키엘 사제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고 3인칭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오리제네스(?∼54년) 때부터 에제1,1에 언급된 ‘삼십’이라는 말이 에제키엘의 나이를 가리킨다는 추측이 제시되었다. 만일 이러한 전통적인 추정이 맞을 경우 에제키엘 예언자는 25세(기원전 597년)에 여호야킨 임금과 수천 명의 유다인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와(2열왕 24,14-16 참조) 유배 생활을 하던 중 그의 나이 삼십세가 되던 바빌론 유배 제오년인 기원전 593년에 바빌론에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 기원전 571년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소명 사화는 그 내용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설화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첫 번째는 ‘병거와 옥좌가 등장하는 환시’(1,4-28) 안에서 받은 에제키엘 예언자의 부르심에 대한 설화이며, 두 번째는 ‘환영받지 못할 말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먹는 예언자의 행동을 기술한 설화’(2,1-3,3)이다. 이어서 에제키엘은 넓은 계곡에서 ‘주님의 영광’에 관한 다른 환시를 본 후, 집에 격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듣는다. 이때 그는 얼마 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3,22-27). [2011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예언서 여행] 에제키엘서 (2)


2)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선포(에제 4-24장)

에제키엘 예언서에 40번 등장하는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25개의 담화로 이루어진 본문에서 예언자는 이 표현을 통해 역사를 섭리하고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강조한다.

4-5장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한다. 6장에서는 예언자 자신을 지칭하는 전형적인 호칭인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초월자 하느님과는 대조되는 그분 앞에서 제 발로 일어설 수조차 없이 비천하고 비참하며(창세 2,7 참조)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 존재를 표현한다.

8-11장은 에제키엘 예언자가 기원전 592년에 보았던 세 번째 발현 내용을 묘사한다.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예언자가 예루살렘으로 인도되어 성전과 그 경내를 돌아다니던 중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멀어지는 것을 본다(11,22-23). 이는 주 하느님께서 솔로몬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당신께 봉헌하던 날부터 당신께서 머무시던 당신의 거룩한 거처인 시온(예루살렘)을 떠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하느님의 영광(10,18 이하; 11,22 이하)은 예루살렘에 새롭게 건설될 새 성전을 묘사하는 에제 43,1에서 다시 그 성전으로 들어간다.

12장에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를 예고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두 가지 상징행위(12,1-16의 예루살렘으로부터의 도주와 12,17-20의 두려움으로 빵을 먹고 떨면서 물을 마심)와 유배를 떠난 사람들과 에제키엘 예언자가 벌인 두 가지 논쟁이 묘사된다(12,21-28).

13장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대한 거짓 평화를 부르짖는 거짓 예언자들을 질책하고, 1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민족들의 신께 예배드리는 우상 숭배를 단죄한다. 모세의 중재를 통해 하느님과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첫째가는 하느님의 명령은 우상 숭배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14,1-11)이었으나 그들은 하느님의 이 뜻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죽음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이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15-23장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다 왕국의 역사를 비유적이고 우화적인 설화로 표현한다. 땔감으로밖에 쓸 수 없는 포도나무에 관한 비유(15장)를 통해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 위에 내릴 하느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고 취소될 수 없음을 선포한다. 그는 또한 불충실하고 은혜를 모르는 아내(16장), 죄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역사(20장), 창녀 오홀라와 오홀리바(23장) 등의 비유를 통해서 남편이신 야훼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방탕한 여인인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고발한다.

18장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예레 31,29)는 잠언이 널리 유포된 시대에 살았던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 잠언이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선포하며 “죄지은 자만 죽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고, 아버지는 아들의 죗값을 짊어지지 않는다. 의인의 의로움은 그 자신에게만 돌아가고, 악인의 죄악도 그 자신에게만 돌아간다”(18,20)고 말한다. 이제는 주 하느님을 향한 개인의 신앙의 결단과 그에 따른 책임만이 요청될 뿐이다. 에제키엘 예언자에 의하면 예언자의 사명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깨어 지키면서(파수꾼) 그들의 회개를 설교하고, 그들과 연대성을 갖고 기도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대신 짊어지는 것이다(예언자).

3)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심판 선포(에제 25-32장)

이방 민족들을 향한 심판 선포는 암몬, 모압, 에돔, 필리스티아(25장), 화려한 배로 묘사되는 티로와 시돈(26-28장), 이집트(29-32장) 등 지리적인 조건을 참조해서 전개된다. 티로의 멸망에 관한 신탁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29,17-21에서는 이 신탁을 수정해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티로를 포위한 보상으로 이집트를 얻으리라고 예고한다. [2011년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예언서 여행] 에제키엘서 (3)


4) 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 선포(에제 33-48장)

에제키엘 예언자는 바싹 말라버린 해골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시’(37,1-14)를 통해 주 하느님께서 당신 영의 뜨거운 ‘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어넣으심으로써 그들을 다시 살리실 것임을 선포한다. 이를 통해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에 의해 다시 깨끗해질 것이며(36,16-38), 찢겨진 그들이 재결합되어 남과 북의 왕국이 통일되고(37,15-28), 이스라엘 민족을 위협하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38-39장).

40-48장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새 땅과 미래에 새롭게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질 예배에 대해 언급한다. 세상의 생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이 새롭게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오고(47장),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유배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전례가 40장과 46장에 언급된 모든 규정에 따라 거행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은 주 하느님만을 섬기는 참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야훼 삼마’, 즉 ‘야훼님(주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이다(48,35).


4. 에제키엘서의 중심 신학사상

1) 존엄하신 하느님(주님의 영광)

에제키엘 예언자는 유한한 인간이 마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존엄하심을 묘사하기 위해 ‘주님(또는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1-3장에서 환시 중에 ‘주님의 영광’을 통해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에제키엘 예언자는 8-11장의 환시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5년 전(기원전 592년)에 ‘주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보았고, 유배 생활 25년(기원전 562년)에 ‘주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한다(40-48장). 이러한 환시들을 통해 에제키엘 예언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자리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들과는 달리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근접할 수 없는 지엄한 영광으로 드러난다.

2) 인간의 나약함(벤-아담)과 죄

에제키엘서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93번에 걸쳐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제키엘서에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존엄하신 하느님의 영광 앞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자신의 발로 일어설 수조차 없이 비천하고 비참하며(창세 2,7 참조),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임을 표현한다(에제 1,3.6.8).

에제키엘 예언자는 죄인으로서 인간이 겪는 이 비참한 현실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루신 업적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도 ‘역겨운 짓’을 저지르고(7,3), 그분을 저버린 채 온갖 우상, 즉 ‘구역질나는 것들’을 섬김으로써(5,11) 그들 안에 머무르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그분의 현존의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시게 만든다(8,6). 인간이 당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현존의 장소에서 몰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비천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하느님을 자신들의 삶에서 내쫓게 된 것이다.

3) 회개의 중요성

에제키엘 예언자도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얼룩진 과거의 모든 행실로부터 몸을 돌려 주님을 향해 돌아가는 회개(悔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온 세상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거룩하심’(聖性)을 모독했던 우상숭배(11,18; 36,29-32.33-36; 37,23)와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속되게 만들었던 모든 부정함을 씻어버리고(36,25.29.33; 37,23) 죄악을 버리고(18,27; 33,14) 하느님을 벗어난 악한 길에서 하느님께 돌아와야 한다(13,22; 18,20.21-23; 33,9). 이를 위해 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실 것이며(18,31; 36,2 이하), 당신 백성을 선택하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신다(36,22-25). [2011년 9월 18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전주주보 숲정이 3면, 서동원 다미아노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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