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자리] 역사서 해설과 묵상 5 : 역사서의 주제 (1)
역사서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땅과 왕권, 예루살렘 성전, 하느님의 말씀’이다. 여호수아의 영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것과 이스라엘 안에서 왕정체제의 형성과 몰락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사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말씀,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하는 경신례가 역사서의 큰 주제를 이룬다.
역사서는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땅을 약속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여호 1,1-9) 여호야킨이 은덕을 입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역사서에는 복잡한 형태의 이야기가 집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일관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땅과 왕권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약속은 결코 파기되지 않으며 하느님의 약속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실현된다는 사상의 일관성이 배경에 깔려있다.
‘땅에 대한 약속’은 이미 모세오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 최초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은 그 후손들에게 반복되고 재확인되다가 결국 여호수아 시대에 가서야 실현된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머물던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행위가 ‘가나안 정착’이다. 여호수아기는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약속을 성실히 지키시는 분임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판관기부터 열왕기까지는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느님께 불충실하여 약속된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는지 말한다.
둘째 주제는 ‘왕권’이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왕권 특히 다윗왕조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판관기 9장을 보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켐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고 시도하는 사건이 나오는데,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이런 시도를 부정적으로 보도한다. 또 판관기 17-21장을 보면 이야기의 끝에 후렴식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 이것은 판관시대의 무정부적인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한다. 드디어 판관시대 말기의 혼란기를 거쳐 기원전 1040년경 왕정이 출현했다. 사무엘기 상권 8-12장은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왕정체제가 시작되는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이 최초의 왕정체제 곧 사울의 왕권에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이 신정체제였고, ‘주님만이 유일한 임금’이라는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상승과 함께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가 사라진다. 물론 다윗이 여러 가지 실수와 심지어 윤리적인 죄악까지 저질렀지만,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다윗왕조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엘기 하권 7장에서처럼 다윗왕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는 것으로 역사가는 다윗왕조에 거는 희망을 표현한다.
묵상 주제
하느님은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분이다. 충실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012년 8월 5일 연중 제18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역사서 해설과 묵상 6 : 역사서의 주제 (2)
역사서의 셋째 주제는 ‘예루살렘 성전’이다. 사무엘기 상권 시초부터 역사서 저자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궤’다. 실로 성소에 있다가 필리스티아 사람들 손으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 키르얏 여아림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하느님 법궤의 행방에 용의주도한 관심을 기울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법궤를 모시려고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했고,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했다. 이 성전이야말로 유일하고 정통적인 예배장소며, 여기서만 하느님을 섬기는 경신례를 거행해야 한다는 것이 신명기 학파 역사가의 생각이었고 역대 임금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북왕국의 모든 임금은 이 규정을 어겼고, 남왕국의 임금들 역시 히즈키야와 요시아를 제외하고는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바로 그 때문에 남북왕국이 멸망했다는 것이 역사서 저자의 관점이다.
마지막 주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역사서 안에는 많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드보라, 사무엘, 나탄, 가드, 아히야, 미카야,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등 ……. 역사서 저자가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을 보면 예언자들이 맡은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언자들은 임금을 세우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것은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역사서 저자의 견해로 본다면 ‘역사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일단 발설된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이 역사서 저자의 믿음이었다. 그 예로 우리는 열왕기 상권 21장 아합 가문에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들 수 있다.
‘땅, 왕권,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 역사서를 이루는 주제다. 이 가운데 땅, 왕권, 예루살렘 성전은 박탈, 소멸, 파괴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게 되지 않고 그대로 실현되어 역사를 이끌어나간다. 역사서 저자는 이런 사상을 예언서에서 배웠다. 역사서 저자의 시대가 정경 예언자들 시대보다 후대이므로 역사서 저자들은 정경 예언자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느님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지고,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실현된다는 예언자들의 사상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중인 역사서 저자에게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이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 곧 여호야킨의 은덕사건(2열왕 25,27)에 잘 나타난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역사를 쓰지만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구원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무엘 시대나 다윗 시대가 중요했지만 과거회귀 자체가 구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가 과거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교육적인 관심으로 이야기와 교훈의 형태로 하느님의 업적을 상기시킴으로써 당대 사람들이 선조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이끌어주려는 목적에서다. 곧 잃어버린 땅과 왕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그러나 반드시 실현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배우라는 것이다.
묵상 주제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2티모 3,16). [2012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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