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이사악
이사악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이며 레베카의 남편이다. 위대한 세 족장(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중 180세로 최고의 장수를 누렸다. 아들 ‘야곱’을 통해 태어나는 손자들과 그들의 자녀까지 보고 죽었다. 훗날 이스라엘 12지파의 뿌리가 되는 후손을 확인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후손’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악 역시 늦도록 아이가 없었다. 젊은 나이엔 주님께서 자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계약의 전수자인 그에겐 답답한 일이었다. 기도만이 그가 할 일이었다. 마침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은 레베카에게 쌍둥이를 주셨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에사우’였고 동생이 ‘야곱’이었다. 그때 이사악의 나이는 60살이었다.(창세 25장)
‘이사악’의 어원은 ‘웃다’라는 동사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들이 태어날 것이란 말에 부모는 서로 다른 웃음으로 답했다. 아브라함은 너무 좋아서 웃었지만 사라는 냉소(冷笑)를 띄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청해도 아이를 주지 않더니 이 늙은 나이에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이사악을 낳고는 전혀 다른 여인으로 바뀐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았을 때는 100살이었다. 그는 기적의 아이 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볼 때마다 웃음이 피어났을 것이다. 그러기에 ‘웃다’라는 동사와 연관된 ‘이사악’으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기쁨이’라고 지은 것과 같다.
성경에 의하면 이사악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이다. 하지만 인간적 계산으로는 완전히 불가능한 아이였다. 아브라함이 성경에 나타날 때는 75세의 노인이었고 사라 역시 70세가 넘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렸고 결국은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된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이다. 이제 남은 여생(餘生)은 축복으로 마무리될 것이라 믿었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주님께서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니!’ 아브라함은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번민에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순종한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창세 22,9)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다. 순교자의 심정으로 아브라함은 아들을 묶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살림을 맡고 있던 집사에게 명한다. 하란에 살고 있는 친척 중에서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 오라는 부탁이었다. 이방인 여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혈족에게서 며느리를 찾은 것이다. 그가 레베카다.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호르’의 손녀였다. 이사악에겐 조카였던 셈이다. 이후 이사악은 축복을 받는다. 재산은 백배 이상 불어나 거부가 된다. 모리야 땅에서의 시련이 보답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름에 어울리게 웃음으로 여생을 보냈다.
[2008년 6월 1일 연중 제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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