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아도니야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 ‘헤브론’에서 태어났으며(2사무 3,4) 어머니는 ‘하낏’이다. 이름으로 미루어 블레셋 여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했고 어려서부터 다윗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다윗은 한 번도 그에게 섭섭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윗은 노년에 쇠약했다.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을 정도였다. 보다 못한 신하들이 수발할 처녀를 소개했다. 수넴 여자 ‘아비삭’이다(1열왕 1,3). 훗날 아도니야가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싶어 했을 만큼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다윗의 건강은 그만큼 악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후계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맏아들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살해되었고 둘째 아들 ‘킬압’은 일찍 죽었다. 셋째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제거되었고 넷째가 아도나이였다. 당연히 왕위 계승권은 그에게 있었다. 이를 부정하거나 반박하는 신하들은 없었다.
더구나 그는 헤브론 출신이었다. 헤브론은 초기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를 관장하던 중심도시였다. 다윗도 이곳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2사무 2,4). 이후 이곳은 다윗의 든든한 지지기반이 된다. 하지만 다윗은 12지파를 통합하자 신흥도시 ‘예루살렘’을 건설하고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도시로 만들어갔다. 당연히 헤브론 사람들은 떨떠름해 있었다.
압살롬이 다윗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헤브론 사람들이 가담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은 차기 왕권은 ‘헤브론 출신 왕자’에게 돌아갈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솔로몬이었다. 예루살렘 출신의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사람이 뽑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선택하실 일이었다. 다윗 역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였을 것이다.
아무튼 아도니야는 먼저 움직였다. 사령관이었던 ‘요압’을 포섭하고 제사장 ‘에브야타르’와 손을 잡았다. 당연히 수하사람들도 가담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세력을 결집한 뒤 제사를 지내며 왕위 계승을 기정사실화 하려했다. 그러나 이날의 모임은 화를 자초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다윗이 생존해 있었기에 반역 행위로 간주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후계자로 임명한다. 대사제 ‘차독’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다음 왕으로서의 선언을 공식화했다. 당연히 아도니야 진영은 흩어진다. 이후 솔로몬의 추종자들은 끈질기게 아도니야의 제거를 건의했다. 그가 살아있는 한 솔로몬의 왕위는 안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날개가 꺾인 독수리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1열왕 2,25)
[2009년 2월 22일 연중 제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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