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엘리야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어떤 산’으로 가시어 갑자기 천상모습을 드러내신다. 타볼산(Mount Tabor)이다. 갈릴래아 호반 도시 ‘나자렛’ 인근에 있는 해발 588미터의 바위산이다. 현재 정상에는 ‘예수님의 변모사건’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다.
성전 내부의 천장에는 엄청나게 큰 모자이크가 있는데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예언자’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성당 입구 왼쪽에는 엘리야 예언자를 기념하는 작은 경당도 있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승천하는 예언자의 그림이 경당 내부를 압도하고 있다.
엘리야 예언자는 북 이스라엘 출신으로 평생을 ‘바알 우상’ 타파에 헌신했던 분이다.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서서히 우상숭배에 빠져 들어간다. 사회가 불안하니까 감각적인 ‘가나안의 바알신앙’에 심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북쪽은 잦은 정변으로 백성들을 다잡아 줄 인물이 없었기에 더욱 심했다. 다음은 북 이스라엘 초기에 일어났던 정변의 내용이다.
첫 임금 예로보암이 죽자 그의 아들 ‘나답’은 왕권을 이어받지만 2년 만에 ‘바아사’의 쿠데타로 살해된다. ‘바아사’는 철권통치로 24년을 버티다 죽고 아들 ‘엘라’가 왕이 되지만 ‘지므리’의 모반으로 처형된다. ‘지므리’ 역시 왕이 된지 7년 만에 ‘오므리’의 쿠데타로 제거된다. ‘오므리’ 왕의 아들이 유명한 7대 임금 ‘아합’이다. 이렇듯 초기 이스라엘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예언자 엘리야는 아합 치세에 등장하여 생의 대부분을 그와 투쟁하며 보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850명의 예언자들과 겨루었던 ‘카르멜 산의 대결’도 아합 때의 일이다.(1열왕 18,19) 엘리야는 바알우상의 어리석음을 백성들 앞에서 폭로했던 것이다. 이후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고 죽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인물이 되었다.(2열왕 2,11)
아합은 바알 신앙에 젖어 있었지만 엘리야를 존경했고 예언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민중을 배려해 주었고 때로는 이용하였다. 아합은 뛰어난 정치가였던 것이다. 그의 치세에 이스라엘 정국은 비로소 안정을 되찾게 된다. 엘리야는 전통신앙을 지켜냄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도왔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부강을 위해 정략 혼인한다. 당시 북쪽의 강국이었던 ‘페니키아’와의 유대를 위해 ‘시돈’ 호족의 딸 ‘이제벨’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1열왕 16,31) 당시 시돈은 페니키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하지만 이제벨은 이스라엘 왕궁에 우상을 가져왔고 자신의 세력구축을 위해 아합왕을 흔들었던 막강한 여인이었다.
[2009년 6월 7일 삼위일체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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