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예후
예후는 원래 북이스라엘의 군인이었다. 다마스쿠스와 아시리아를 마주보는 국경에서 전차부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었다. 당시 전차는 바퀴가 둘 달린 ‘이륜마차’로 전투의 핵심장비였다. 전차가 많을수록 강한 군대로 평가받던 시대였다.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곧 바로 전력이었던 것이다. 이런 부대의 사령관이었으니까 예후는 사실상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아합을 도와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고 ‘아람족’과의 전투에서 아합이 전사하자 그의 맏아들 ‘아하즈야’가 왕이 되는데 깊이 관여하였다(1열왕 22,40). 하지만 아하즈야는 옥상에서 떨어져 그 상처로 2년 만에 죽었다. 아들이 없었기에 동생이었던 ‘요람’이 7번째 왕으로 등극했다. 예후는 계속 사령관으로 있었다.
이때 예언자 엘리사는 아합 왕조를 전복시키라는 밀서를 예후에게 보낸다. 밀서의 핵심내용은 다음 말씀이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으로 세운다.”(2열왕 9,3) 밀서를 가져갔던 엘리사의 제자는 실제로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8번째 왕으로 선언했다. 당시의 ‘예언자 그룹’과 군부가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는 왕이 되자 이방인들과 동맹을 맺었고 그들의 문화와 자본을 수용하였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안정이 되었지만 종교적으로 우상숭배가 범람했다. 특히 가난안의 종교인 ‘바알신앙’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예언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많은 예언자들이 희생되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예언자 그룹은 예후를 부추겨 모반을 일으켰던 것이다.
예후는 예언자들의 지지를 받았기에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페니키아와의 군사동맹도 파기시켜 버렸다. 더구나 페니키아의 공주 이제벨을 죽였기에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그러자 틈새를 비집고 아시리아의 ‘살만에세르 3세’가 침입해 왔다. 그들은 먼저 페니키아를 점령했고 곧 바로 이스라엘도 굴복시켰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에는 살만에세르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예후의 모습과 이스라엘 시종들이 예물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예후는 ‘베텔’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상’을 철거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혹시나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를 드릴까봐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우상숭배 때문에 비참하게 몰락한 아합왕조를 보면서도 예후는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이다. 훗날 예후왕조도 ‘살룸’의 쿠데타로 끝나게 된다.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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