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격변기의 예언자다. 북 이스라엘은 사라졌고 남쪽 ‘유다국’은 주변 강국의 눈치를 보는 민족으로 전락했다. 언젠가 다른 나라에 흡수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유다 왕조의 이러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인근의 ‘아나톳’ 마을 출신이다. ‘반골기질’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다윗이 죽자 솔로몬은 이복형 ‘아도니야’와 왕위 쟁탈전을 벌였다. 당시 대제사장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를 지지했다. 하지만 솔로몬이 승리하자 그는 파면되었고 ‘아나톳’으로 쫓겨 갔다. 이때부터 이곳은 반체제 마을이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의 제관 계급은 ‘차독가문’이 독식했고 ‘에브야타르’계 사제들은 출세 길이 막혔다. 예레미야의 부친은 아나톳에 살고 있던 사제였다.
예레미야는 16대 ‘요시야 왕’ 때 나타나 다섯 임금을 섬겼다. 17대 ‘여호아하즈’는 요시야의 장남이었지만 이집트 전쟁에서 포로가 된다. 이집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을 18대 왕으로 세웠다. 그가 ‘여호야킴’이다(2열왕 23,34). 그러나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반기를 들다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야킨’이 19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3달 만에 실각되고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이 20대 임금이 된다. 그가 유다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다(2열왕 24,17).
예레미야 예언의 핵심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민족 ‘바빌로니아’에 대항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설파했다. 다시 말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시야’의 뒤를 이은 4명의 왕들은 모두 예언을 무시한 채 전쟁을 일으켰다가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유다는 더욱 가중한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예레미야의 어원은 ‘이르므야후’(Yirmyahu)에서 왔으며 ‘야훼께서 내던지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름 자체에서 ‘선택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예언자는 20대 초반에 소명을 받고 평생을 오해와 편견과 테러에 시달리며 살아야했다. 그의 예언이 대부분 왕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야킴이 바빌로니아에 항전하려 조공을 중단하자, 예레미야는 성전을 빼앗기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화가 난 왕은 예언자를 가두지만 결국은 네부카드네자르에게 패하고 만다.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 역시 전쟁준비에 광분하자 예레미야는 백성들을 선동하며 반대하다 다시 갇히는 처지가 된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치드키야는 두 눈을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2009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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