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에즈라
에즈라의 말뜻은 ‘주님의 도움’이란 의미다. 그는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의 후손으로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차독’의 후예다. 그는 바빌론의 포로지에서도 율법학자로 처신했고(에즈 7,6)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 제2차 포로 귀환(BC 458년)이 있었는데 이때 유다인들을 인솔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에즈라는 율법에 정통했다. 그러기에 같은 포로 신분이었지만 백성들을 가르쳤고 율법에 관한한 최고 권위자였다. 그는 민족을 이끌고 귀환할 때도 페르시아 군대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식과 기도를 통해 주님께만 의지했다. 주님께서는 청원에 응답하셨고 이스라엘은 어려움 없이 귀환할 수 있었다(에즈 8,21-23).
2차 귀환 때는 4만 여명이 움직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던 ‘금은보화’와 황제가 선물한 보물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다 백성들이 모든 성금도 있었다. 당연히 위험한 여행이었다. 실제로 도적들의 잦은 침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넉 달 가량의 여정을 끝내고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에즈라는 바빌론을 떠나올 때 ‘두루마리’ 한 권을 갖고 온다. ‘모세의 율법책’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모세오경’으로 추정하는 두루마리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날을 잡아’ 백성들을 광장에 모았다. 그리고는 온 회중이 알아듣게 두루마리를 읽었다. 포로생활 이후 처음으로 선언하는 율법이었다. 백성들은 율법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느헤 8,9).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공동체로 다시 출발하게 된다. 율법 중심의 공동체였다. 모든 법의 근본으로 율법이 자리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척도 역시 율법이 되었다. 철저히 지키면 지킬수록 그만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율법최고 주의의 ‘리더’는 에즈라였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에즈라는 여러 개혁을 단행했다. 특히 그는 이방인 여인과 혼인한 이들에게는 이혼을 강요했다. 율법정신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 보내야했다. 에즈라서 10장 18절 이하에는 이방인 여인과 혼인했던 사람들의 명단이 나온다.
에즈라는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제3차 포로귀환(BC 444년) 때도 율법 교육과 개혁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다. 훗날 에즈라는 왕의 명령으로 바빌로니아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바빌론에 있는 그의 무덤은 오랫동안 성지가 되었다.
[2009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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