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욥
욥은 에돔 지역의 ‘우츠’라는 곳에 살았던 족장이다. 아들 일곱에 딸이 셋이었고 7천 마리의 양과 3천 마리의 낙타를 가진 대부호였다. 종들도 많았고 농사짓는 황소도 500마리나 되었다(욥기 1,1-3). 동방에서도 보기 드문 거부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이었다.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었고 사람들 앞에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욥을 두고 사탄은 시비를 건다. 그가 누리는 ‘부귀’를 거두면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 장담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욥은 시험을 당한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테스트’였다. 갑자기 가축들이 약탈당하고 종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식들이 함께 죽는 참변까지 일어났다. 욥은 겉옷을 찢으며 땅에 엎드려 외친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욥기 1,21)
사탄은 ‘욥의 소유’가 사라지면 무너질 줄 확신했다. 그런데 절망을 받아들인 것이다. 욥의 승리였다. 하지만 사탄은 물러서지 않았다. 욥의 몸에 병을 퍼뜨린 것이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고약한 부스럼이 번졌다. 진물이 흘러내려 잿더미 위에 앉아야 했다. 너무나 가려워 잠시도 긁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욥의 아내는 탄식했다. 그러나 욥은 비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욥은 다시 승리한다(욥기 2,10).
그런데 정작 그를 괴롭힌 것은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꾸짖는 듯 심문하며 토론을 벌인다. 하느님 앞에 문제가 있기에 저주받는다며 끝없이 몰아 부친다. 욥의 처지를 전혀 모르면서 ‘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욥은 받아들인다. 원망과 저주 속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마침내 그의 인내는 보상을 받는다. 하느님께서는 ‘예전의 소유’보다 두 배나 많은 축복을 내리신 것이다(욥기 42,10).
이후 욥의 존재는 고난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아무튼 그는 ‘의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많은 질문을 남겼다. 평범한 고통에도 의미가 있음을 암시했고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고통 역시 신비임을 입증한 것이다.
욥기의 기록 연대는 설이 많다. 모세시대부터 마카베오 시대까지 다양하다. 일반적인 견해는 ‘바빌론 포로시대’ 이후로 보고 있다. 예전부터 전해져 오던 이야기가 오랜 기간의 형성과정을 거치다가 포로기 이후에 정착되었을 것이란 견해다.
[2010년 2월 7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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