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카인과 아벨
농부였던 카인은 자신의 수확을 주님께 바쳤다. 목동이었던 아벨 역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아벨은 가축 가운데서 처음 난 것을 골라 바쳤다. 그만큼 정성을 드린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더 기쁘게 받으셨다. 소외감을 느낀 카인은 화를 낸다(창세 4,5). 마침내 그는 동생을 꾀어내어 살해했다. 어이없는 살인이었다.
주님께서 카인을 추궁하시자 변명으로 둘러댔다. 하지만 하느님을 속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낯선 곳으로 추방된다. 카인은 두려웠다.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만 같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보호받는 증표’를 주시며, 너를 해치는 자에게는 ‘하늘의 응징’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창세 4,15).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아들 ‘에녹’을 낳았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며 건실한 지도자로 변신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설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담과 하와의 설화가 ‘신화의 옷’을 입고 있었다면 이들의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주변 민담을 이용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이다. 첫째는 원죄의 무서움이다. 질투 때문에 형이 동생을 살해할 만큼 타락했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구원 계획이 없었다면 인류는 파멸로 갈 수밖에 없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인간의 이중성(二重性)이다. 카인의 폭력적 성향과 아벨의 순응적 자세가 한 사람의 내면에 ‘공존’한다는 메시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두 얼굴’은 본질에 속하는 문제이기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아벨이 죽자 아담은 또 다른 아들을 낳았다. 그가 ‘셋’(seth)이다. 당시 아담의 나이는 130살이었다(창세 5,3). 그렇다면 아벨이 죽을 때의 나이는 100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역시 신화적 표현이다. 옛 사람들에게 있어 장수는 주님의 축복이며 하늘의 보호가 그를 지키고 있다는 증표였던 것이다.
하와는 카인을 낳고 벅찬 감회에 젖어 외친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구나.’(창세 4,1) 카인이란 이름은 이 외침에 등장하는 ‘얻다’라는 단어와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벨의 말뜻에는 ‘공허’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억울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창세기 저자가 붙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아벨을 언급하셨다(루카 11,50). 희생의 죽음이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후 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고 ‘아벨이 죽었기에 그를 대신하는 다른 자식을 주셨다’고 고백한다(창세 4,25). 셋의 말뜻은 ‘대신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아담의 뒤를 잇는 약속의 상속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등장한다(루카 3,38). 셋 역시 912살까지 장수했다.
[2010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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