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티로
티로(Tyre)는 레바논의 항구도시로 아랍인들은 수르(Sur)라 부른다. 도시의 흔적은 기원전 이천 년까지 소급되며 ‘시돈’과 함께 고대 페니키아의 경제를 좌우해왔다. BC 9세기에는 티로의 개척자들이 북아프리카의 중심도시 ‘카르타고’를 건설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훗날 카르타고는 로마에 대항하는 도시로 성장한다. 그만큼 티로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한때 티로 왕 ‘히람’은 솔로몬과 거래하며 레바논의 백향목을 이스라엘에 수출했다. 그리고 기술자들을 파견해 성전과 왕궁건설에 종사하도록 했다(1열왕 5,32). 악명 높던 아합의 아내 ‘이제벨’ 역시 ‘티로와 시돈’을 다스렸던 ‘엣바알’의 딸이다(1열왕 16,31). 이렇듯 티로는 구약성경과 인연이 깊다. 더구나 이제벨은 티로의 수호신 ‘바알’을 이스라엘에 전파해 예언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당시 바알은 턱수염에 둥글고 높은 모자를 썼으며 치마를 입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발굴된 조각과 그림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막강했던 티로도 BC 8세기에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된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그들과 화의를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출현한 바빌로니아와는 끝까지 싸웠고 ‘네부카드네자르’의 오랜 공격을 견디어냈다. 근동을 지배하던 아시리아는 바빌론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티로는 살아남은 것이다. 한편 페르시아 시대에는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였지만 독립된 국가로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4세기 희랍의 침공으로 티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섬으로 이루어진 티로를 압박했고 인공둑길을 만들어 접근했다. 결국 티로는 항복했고 1만 명이 처형되고 3만 명이 노예로 팔리는 비운을 겪었다. 이렇게 해서 티로는 그리스 문화가 지배하는 셀레우코스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한편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둑길은 무너지지 않았고 티로 섬을 육지와 연결시켰다. 티로는 자주색 염료와 유리제품으로도 유명했다.
특히 자줏빛 염료는 뮤렉스(Murex)라는 조개껍질에서 추출했는데 지금도 티로 해안에서 잡히고 있다. 당시에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었다고 한다. 2세기에는 이곳에도 기독교 공동체가 성행했고 교회학자 ‘오리게네스’는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구약성경의 6가지 판본을 나란히 기록한 ‘헥사플라’(Hexapla)를 만든 사람이다.
[2011년 1월 30일 · 2월 6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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