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히타이트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지역의 한 동굴에 장사지냈다. 그런데 그 동굴은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은 장차 이곳에 자신과 후손들이 묻히기를 바라면서 그 동굴을 은 400 세켈에 샀다(창세 23,16). 이렇듯 히타이트 사람들은 아브라함 초기부터 이스라엘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들의 본거지는 하투사(Hattusha)였다. 오늘날 터키 수도인 ‘앙카라’에서 동북쪽으로 대략 200km 지점에 있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했고 한때는 이집트까지 점령한 적도 있었다. 역사상 어떤 나라도 그만큼 단시일에 대제국을 형성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원인은 그들이 자랑하던 전차에 있었다. 두 명이 탄 전차에서 한 사람은 말을 몰고 다른 사람은 활을 쏘는 속도전으로 중동지역을 누볐던 것이다.
한편 이들이 인류 최초로 철기문화를 시작한 민족임이 고고학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수메르 인들의 설형문자에도 이들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그만큼 뛰어난 기술을 지닌 민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12세기부터 내분으로 몰락을 자초해 ‘아시리아’에 흡수되고 만다.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 상류에서 시작된 나라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국가였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뒤 그곳의 ‘니네베’를 수도로 정했다.
다윗의 군사 가운데는 히타이트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그들은 용병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있었을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심복으로 따라다녔던 아히멜렉도 히타이트 출신이었고(1사무 26,6) 솔로몬의 어머니 ‘밧 세바’의 첫 남편 ‘우리야’ 역시 히타이트 사람이었다(2사무 11,3). 그는 이스라엘 군대의 뛰어난 장교였지만(역대 11,41) 다윗에 의해 제거되었다.
밧 세바의 아버지는 ‘엘리암’인데 그는 다윗의 후원자였던(2사무 15,12) ‘아히토펠’의 아들이다(2사무 23,34). 그러니까 우리야는 이스라엘 명문가에 장가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훗날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반란에 아히토펠이 가담하여 다윗진영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는 다윗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손녀 ‘밧 세바’를 탐내어 우리야를 죽인 것에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1년 5월 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이민의 날, 생명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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