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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복음: 서로 사랑하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1 조회수7,452 추천수1
[요한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친구 되기]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직후에 나온다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심을 보여주시는 행위이다.

곧 종으로서 제자들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예언적인 상징의 행위라 할 수 있다. 1세기 유다 문화에서 발을 씻어주는 것은 매우 천한 일로서 유다인 남자 종들에게는 시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한 일은 이방인 노예, 여자들, 아이들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위해, 자녀가 부모를 위해, 학생이 스승을 위해서는 발을 씻어줄 수 있는데, 그것은 항상 극단적인 헌신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발을 씻어주는 것은 사회적 의미를 담은 행위였기 때문에 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긴 예는 결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신 의미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신 의미는 두 가지로 소개된다. 그중 하나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13,8)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씻어준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의해 죄가 용서된다는 의미이다. “몫”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12지파가 약속의 땅을 분배받는 일과 관련되어 사용되는데, 여기서 그 몫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주어질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발을 씻어주시는 두 번째 의미는 ‘본’이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13,14-15). 씻음의 의미가 예수님에 의한 제자들의 죄에 대한 용서라면, 다른 이의 발을 씻어주어야 하는 제자들도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 계명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뒤에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할 것을 예고하셨다. 그리고 유다가 만찬상에서 나간 뒤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가실 것과 떠난 뒤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애정이 가득한 표현으로 “얘들아” 하고 제자들을 부르시며 그들의 생활 방침으로 새 계명을 주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이 떠나신 뒤에 제자들이 그와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유언을 지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돌아가시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레위 19,18에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닌데,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 서로를 사랑하되 예수님이 본보기를 보이신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주신 계명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며 완성한 계명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모든 생활의 특징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새 사람이 된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새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그러면 예수님 사랑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15,13에 나타난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1요한 3,16 참조). 그리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종과 친구 사이의 차이는 신뢰에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다 알려주었다. 하느님 아버지의 진리에 대해 다 알려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된 것이다. 제자들은 하느님이 사랑이시요 생명이심을 알고, 예수님은 그 사랑과 생명의 전달자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5-17).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은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신 것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곧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1요한 3,16).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까?

사랑을 명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왜 명령하셨을까? 하느님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감정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신다. 이웃 사랑은 오로지 하느님과 친밀한 만남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우리 감정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분의 친구는 곧 나의 친구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나뉠 수 없으며, 하나의 계명을 이룬다. 그러나 둘 모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외부의 ‘계명’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얻는 사랑의 체험에서 생겨난다. 이 사랑은 본질상 다른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통하여 자란다(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참조).


예수님의 품에 기댄 사랑받는 제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려주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최후만찬 상에서 예수님 품에 기댔던 사람이고, 수난 때 도망가지 않았으며,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였고, 성모님을 모셨으며 빈 무덤을 보고 믿은 사람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이다.

예수님이 아버지 품에 있었던 것처럼(1,18)사랑받는 제자는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있었다(13,23). 예수님이 아버지 품에 계시어 아버지의모든 것을 보고 배운 것처럼, 예수님 품에 기댄 사랑받는 제자도 예수님에 대한 신비와 사랑을 전해준 것이다.

예수님의 찔린 가슴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이 교회탄생과 세례와 성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묵상하면서,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갈빗대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마치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를 창조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창조되었음을 생각하니, 예수님께서 “너는 내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 책상 위에는 작은 산세베리아 화분이 있는데, 3년 동안 더 자라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물만 조금씩 주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새순이 나와서 순식간에 부쩍 자란 것이다.

그 화분은 방에서만 있었다. 그런데 베란다가 있는 방으로 옮기고 나서 여름이 되어 화분을 밖으로 내어놓았다. 비도 맞고 특히 뜨거운 여름 햇볕을 흠뻑 받은 것이다. 태양이 그것을 자라게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하느님 사랑을 먹지 않고서는 자랄 수 없다. 하느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자랄 수 없다. 나는 하느님 체험을 항상 하느님 말씀과 성찬례에서 얻는다. 성체 앞에 그냥 앉아있어도 자라게 해주신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과 산세베리아가 햇볕을 받은 뒤 폭풍성장한 모습이 준 깨달음은 가슴을 벅차게 하여 나의 생활지침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5,9-10).


기도

예수님, 저희도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와 같이 주님의 가슴에 의지하며 저희의 마음을 주님의 성심 위에 두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사랑 안에서 살다가 사랑 안에서 죽게 하소서.

* 이혜자 인덕마리아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학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요한 복음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 글 이혜자 · 그림 조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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