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소 야고보
소 야고보라 불리는 알패오의 아들 역시 열두 제자 중 한 분이다.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마태 13,55)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승천 사건 후 예루살렘에서 결의를 다지던 열한 제자 중의 한 분이기도 하다(사도 1,13). 바오로는 그를 ‘주님의 형제’라고 불렀다(갈라 1,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발현하신 적이 있다(루카 24,13-35). 그중 한 사람이 클레오파스다. 알패오는 클레오파스를 희랍어로 음독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던 다른 마리아의 남편 클로파스(요한 19,25)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뒤 야고보에게 알리라고 한다(사도 12.17). 야고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시리아에서 선교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몽둥이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교회 미술에서는 곤봉이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야고보는 분명 초대교회의 중심인물이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신앙 문제를 토의하는 사도단의 모습이 실려 있다. 당시 이방인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하는 것이 논쟁거리였다. 유다인으로 교인이 된 이들은 당연히 할례를 주장했다. 베드로는 반대 입장을 밝힌다. 사도회의를 마무리하며 결론을 내린 이는 야고보였다(사도 15,13-21).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야고보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의 조언을 듣는다(사도 21,17-26). 유다인으로 신자가 된 이들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바오로가 선교 중에 할례를 부정하는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로 보아 야고보는 권위 있는 사도였다. 초대교회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분명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다. 어떻게 그런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예수님의 형제였기에 사람들이 따랐고 예수님의 형제답게 사셨기에 사람들이 승복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곳이었기에 중요한 성지였다. 그리고 유다계 교인들이 세력을 펼치고 있었다. 야고보는 이곳 교회의 수장이었던 것이다. 물론 초대교회 전체의 중심은 베드로였다. 주님께서 반석이라 부르시며 으뜸 목자로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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