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주간] 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
1790년, 하느님이 우리말을 시작하시다
- 위쪽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한글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성경직해」, 「성경광익」, 「사사성경」, 한국교회 공식 성경인 「성경」,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공동번역 성서」.
성경 없는 그리스도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성경이 한글이라는 우리말 옷을 입은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성서주간(25일)을 맞아 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를 짚어본다. 변변한 성경 없이도 신앙만큼은 더 없이 철저했던 선조들을 함께 떠올리면 좋겠다.
「성경직해광익」과 「성경직해」
우리나라가 중국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처럼 성경 역시 중국을 통해 전해졌다. 다시 말해 초창기 한국교회 한글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신ㆍ구약 성경이 한꺼번에 번역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한글 성경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미미한 분량이었고, 그나마 온전한 성경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우리나라 최초 한글 성경은 1790년대 초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펴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성경직해광익」은 디아즈(예수회)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마이야(예수회) 신부가 1740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취합해서 한글로 옮긴 책이다. 중국에서 한문으로 쓰인 두 책은 주일ㆍ축일의 성경 본문, 본문 주해, 묵상, 실천 덕목 등을 종합적으로 담았다. 한글 신약성경의 효시가 되는 「성경직해광익」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거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다. 수록된 성경 본문은 신약성경 4복음서의 30% 분량이었다.
1890년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성경직해광익」을 「성경직해」로 이름을 바꿔 서울 성서활판소(가톨릭출판사 전신)에서 9권으로 간행했다. 「성경직해」는 1930년대까지 판을 거듭하면서 신자 애독서로 자리 잡았다.
「사사성경」과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
4복음서의 완전한 번역은 1910년에 이뤄졌다. 손성재 신부와 한기근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복음서를 번역한 것으로, 「사사성경」(四史聖經)이라 불린다. 번역 대본은 당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라틴어(불가타 역본) 성경으로, 한국교회 첫 번째 한글 4복음서다. 한기근 신부는 1911년 사도행전을 우리말로 옮겼고, 조선교구는 1922년 이를 「사사성경」과 합쳐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으로 발간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1935년 신약성경 나머지 부분 번역을 덕원 성분도수도원에 맡겼다. 수도원 소속 슐라이허 신부는 라틴어ㆍ그리스어 성서를 토대로 바오로 서간 14편, 기타 서간 7편, 요한묵시록을 번역한 뒤 이를 묶어 1941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으로 발행했다. 이로써 신약성경 전 권이 완역된 것이다.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과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은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교회(가톨릭) 유일한 신약성경으로 사용됐다.
구약성경 번역
구약성경 번역은 신약성경에 비해 매우 늦게 진행됐다. 구약성경 번역에 처음 손을 댄 이는 선종완 신부다. 가톨릭대 성서학 교수였던 선 신부는 히브리 성서에서 번역한 구약 낱권 14권을 1958~1963년에 펴냈다. 한국교회 첫 구약성경 번역이다. 이어 최민순 신부가 시의 운율을 살린 「성경의 시편」을 1968년 냈고, 서인석 신부는 「호세아ㆍ미카」(1977년) 등 소예언서 11권을 번역, 출간했다. 구약 전체가 번역된 것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온 1977년의 일이다.
「공동번역 성서」
196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성서 공동번역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듬해인 1969년 1월 가톨릭ㆍ개신교 성서학자들이 공동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를, 1977년에는 「공동번역 신약성서」(개정판)와 구약은 물론 구약의 외경까지 포함한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하게 됐다. 한국교회가 성경 전서(全書)를 갖기는 「공동번역 성서」가 처음이다.
「공동번역 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추진한 교회일치 운동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지닌다. 공동번역의 가장 큰 장점은 직역보다 의역에 초점을 맞춰 이전의 어떤 한글 성경보다 읽기가 편한 현대문이라는 점이다. 반면 의역에 치중한 까닭에 직역이 필요한 성서 공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번역 성서」는 개신교 측으로부터 외면을 받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공동번역 신약성서」의 한계를 느낀 가톨릭 측 성서학자들은 1974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지원을 받아 '200주년 신약성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리스어 원전에 충실한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1991년 「200주년 신약성서」 보급판을 낸 데 이어 1998년에는 이를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은 개정 보급판을 냈다. 2001년에는 자세한 해제와 주석을 곁들인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를 발간했다.
「성경」과 「주석 성경」
주교회의는 1988년 성경 본문에 충실한 「성경」을 출간키로 결정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 작업에 들어갔다. 임승필 신부가 주축이 된 번역팀은 1992년 「시편」을 시작으로 1999년 「마카베오 상ㆍ하」까지 구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8권을 출간했다. 또 2001~2002년 신약성경 새 번역 단행본 10권을 간행했다.
2003년 6월 '새번역 성서 합본위원회'를 구성한 주교회의는 윤문과 용어통일 작업 등을 거쳐 2005년 10월 출판 기념회를 갖고 「성경」을 한국교회 공식 성경으로 선포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가톨릭이 신ㆍ구약 성경 73권 전체를 독자적으로 번역하기로는 처음인 성경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번역된 모든 한글 성경 중 본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1년 「성경」 각 권마다 입문과 각주를 붙인 「주석 성경」을 출간했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25일,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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