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2) 나자렛 예수 -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천 2
예수 부활, 하느님 나라 선포 정당성 증거
예수는 제자들을 파견해 복음을 선포하게 하고, 그들에게 마귀 추방과 치유 능력의 권한을 부여했다. 또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는 새 세상이 오면, 그들 역시 옥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마태 19,28).
이처럼 예수는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재건을 위해 헌신했다. 또 어머니인 마리아와 형제들 역시 예수 활동에 함께했다(요한 2,1, 요한 7,3-10).
또 예수가 행한 기적과 구마행위는 군중을 모여들게 했다. 군중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려고 했다. 예수는 이를 피해 산으로 가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한 6,15), 이는 예수가 일부 군중에게 메시아로 간주됐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 예수와 율법
예수와 유다교의 두 개 기둥으로 일컬어지는 율법과 성전의 관계를 살펴보자. 예수는 복음서에서 흔히 율법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로 묘사된다. 그러나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고 말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현실에서 율법을 재해석하고 근본 취지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이와 등 굽은 여자, 앉은뱅이를 치유했다. 유다인들이 율법을 증거 삼아 항의하자, 예수는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하고 말했다. 병자가 병이 나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은 하느님 창조질서의 회복과도 같고, 그것이야말로 하느님 나라가 지상에서 이뤄지는 표지라고 해석한 것이다. 또 예수는 병자를 고쳐준 뒤 모세가 명한 대로 제물을 바치라고 명하거나, 십일조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르기도 했다. 즉, 예수는 일부 잘못된 율법주의적 해석과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를 내쫓았던 '성전 정화사건'은 사제가 백성을 참다운 진리와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 사건이다. 또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포했다. 요한 세례자 역시 회개의 세례를 베풂으로써 성전의 고유 권한인 사죄권을 행사했다. 성전 당국자들 입장에서 이러한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운 도발이었다. 로마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하고 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예수는 폭압적 권력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
예수는 결국 종교와 정치 지도자에 의해 체포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왜 십자가형이었을까. 이는 당시 로마제국의 형벌 중에서 정치범에게 가하는 가장 참혹한 것이었다. 벌거벗긴 죄수는 인간적 수모를 겪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탈진한 상태로 서서히 죽어간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는 뼛조각과 쇳조각이 감긴 채찍을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수에게 이런 끔찍한 형을 내린 것은 로마 제국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체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식민지 지배자들의 단호한 의지 표명이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로마제국에 대한 도전, 예수를 메시아라 떠받드는 군중의 기대는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으로 과연 예수 운동이 막을 내렸을까? 필자는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 중 예수 부활만큼 놀라운 반전은 없다고 생각한다.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고, 몇몇에게 예수가 발현함으로써 그들은 예수 부활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예수 체포 당시 도망쳤던 남자 제자들 역시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
일부 유다인은 제자들이 예수 시신을 훔쳐다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예수 시신이 다른 무덤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했기에 빈 무덤을 부활의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 발현은 제자들의 절망이 만들어낸 심리 현상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로는 도주했던 제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예수 부활을 드높이 외치는 반전을 설명할 길이 없다. 더군다나 예수 생전에 그를 만난 적도 없지만, 부활한 예수의 용감한 증인이 된 바오로 사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부활로써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비로소 활활 타오르게 됐다. 예수 부활은 하느님 나라 선포가 옳았으며 섬김의 삶이 승리를 가져오고, 나자렛 예수의 역사가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신약성경 전반을 살피는 이 대장정을 시작하며 나자렛 예수의 삶과 부활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개될 신약의 고백은 예수를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분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들 증언이다. 그들은 각자가 처한 고유한 역사적 상황과 공동체 특성에 따라 예수에 대한 표현과 소개를 달리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를 한결같이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3년 1월 20일, 정리=김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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