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궁금증] (69)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어떠한 의미인가?
가나안 땅 허락은 신앙의 결과로 주어진 선물
-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이자 하느님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은 사해 근처 이스라엘 땅.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마디로 '땅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느님의 땅, 이스라엘인들이 치열하게 살고 전쟁하고 죽어간 땅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없던 시대에 가나안과 이집트 사이를 떠돌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가나안 땅은 단순한 지리적ㆍ정치적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세 12,1)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세켐에 이르러 그 땅에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창세 12,6)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신다고 약속한다. 따라서 구원사적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준 것은 하느님의 구원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즉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한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은총이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결과로 주어진 특권이다(창세 22,17-1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 땅은 백성의 종교적 행동을 반영하는 일종의 증거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에서부터 이미 조건은 주어져 있다(창세 15장). 따라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을 상실한 것은 그들의 죄가 땅에서 그들을 추방하게 한 것이다(창세 15,16).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땅은 이스라엘 민족을 버릴 것이다(레위 18,28). 따라서 땅으로부터 백성들이 추방됐다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느님 신앙은 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세 12,1)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자신들의 것이 아닌 땅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 땅에 대한 처리 권한은 전적으로 하느님에게만 있다. 마치 중세시대 영주가 충성한 종에게 하사하는 일종의 봉토로 해석한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땅은 후손들에게 계속 유전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다(민수 36,7). 하느님에게 속한 땅을 얻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계약을 기억하고 계명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땅을 잃거나 얻지 못하는 것과 땅이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다(신명 4,26). 이러한 관점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이뤄진 유다 백성의 바빌론 유배는 백성이 하느님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 심판은 하느님이 주신 땅으로부터 쫓겨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이자 하느님 역사의 현장이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2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실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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