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해설과 묵상 (4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기드온은 해마다 계속되는 미디안족의 침략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구해낸 영웅이었다. 판관기 6-8장 기드온의 이야기도 전형적인 틀에 맞춰 구성되었다.
1) 6장 1절 배반 :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다.
2) 6장 1-6절 처벌 :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칠년 동안 미디안 사람들에게 노략질당하게 하셨다. 미디안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온 땅을 망쳐놓았다.
3) 6장 7-10절 호소 :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부르짖었다.
4) 6장 11절-8장 32절 구원 : 하느님께서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기드온을 뽑아 미디안 사람들을 무찌르게 하고, 이스라엘에 평온을 되찾아 주셨다. 이 부분은 기드온의 승전을 자세히 전하는 보고문으로, 판관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극적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전한다.
5) 8장 33-35절 다시 배반 :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은덕을 잊어버리고 다시 바알들을 섬겼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이야기 두 개가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곧 판관기 7장 1절-8장 3절과 8장 4-21절로 나눠볼 수 있다. 7장 1절-8장 3절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성전(聖戰) 사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역사성이 의심스럽다. 그러나 8장 4-21절은 역사적 신빙성이 있다. 제바와 찰문나에게 행한 피의 복수는 기원전 12세기의 상황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미디안족에게 승리를 거둔 덕분에 기드온은 임금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실 분은 주 하느님 한 분뿐이라고 하며 그런 제안을 거절했다(판관 8,23).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정제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주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임금이기 때문에, 그분의 임금 자리를 넘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왕정이 하느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판관기 9장 아비멜렉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기드온 이야기의 부록이다. 스켐에 있는 기드온의 소실에게서 난 아비멜렉은 스켐 일가가 준 돈으로 건달패를 사서, 기드온의 아들 일흔 명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탐은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의 왕국을 공박했다. 요탐은 당시 이스라엘 부족동맹 내의 보수파들이 지녔던 왕정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사실 아비멜렉의 주요 지지기반은 중앙집권 체제를 주장했던 바알 브릿 신전(판관 9,4 참조)의 사제들이었다. 아비멜렉은 3년 동안 다스렸지만, 임금이 되려던 야망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강력한 임금을 원할 만큼 외부적인 위협이 없었기 때문에 아비멜렉의 왕권은 정통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나중에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위협하는 상황에서 백성이 임금을 요구했고, 그래서 시작된 사울의 왕권은 그런 점에서 정통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묵상주제
“의인들이 승리하면 그 영광이 크지만 악인들이 일어서면 사람들이 숨어버린다.”(잠언 28,12)
[2013년 5월 5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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