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풀이 FREE] 카인과 아벨, 그리고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이 쓴 유명한 소설 중에는 형제 간의 갈등을 다룬 “에덴의 동쪽”이 있었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타이틀은 카인이 벌을 받아 쫓겨간 지역 이름에서 파생했는데, 아담과 하와의 “에덴”에 얽히어 노스텔지어적 향수를 일으키는 신비스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나오면서 가장 먼저 친구가 되는 형제 자매 사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관계가 될 수 있지만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되묻는 카인이 되기도 하는 사이(창세 4,9). 그런데 하느님은 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어 동생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을까? 카인은 히브리어로 ???(Cain), “얻다”라는 뜻이고,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라는 하와의 탄성에서 유래했다(창세 4,1). 아벨은 히브리어로 ???(Hebel)이고, 창세기 4장에는 의미가 나오지 않았지만 “허무”, “한숨”의 뜻을 지녀 짧게 지나가는 그의 운명을 짐작하게 한다(코헬렛 1,2: “허무(Hebel 헤벨)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카인처럼 이름의 어원이 성경에 언급된 것도 아니고, 행동 묘사는 있지만 실제적인 대화는 빠져 있기 때문에 허무한 그의 존재를 다시 한번 투영시킨다. 그럼에도 하느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이유는 어쩌면 창세기 4장 3-4절에 숨어 있는 듯하다(“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점이 없지만, 제물 묘사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벨은 양의 맏배와 굳기름을 바쳤고, 굳기름(??? halav)은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바람직한 부분이었다(탈출 29,13 등). 첫 소출도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탈출 23,19 : “너희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즉, 아벨에게는 하느님께 소중한 것을 바친다는 뉘앙스가 존재하는 반면, 카인은 땅의 소출을 바쳤다는 언급만 있고 아벨에게 붙여진 그 특별한 표현이 빠져 있다. 어쩌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듯이, 적당히 필요 없는 것을 이해 관계에 맞추어 베풀거나 바치는 것은 그 정도까지 아끼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카인에게 하느님은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존재가 아니었나보다. 동생을 죽이고 끝끝내 에덴의 동쪽, 하느님이 계신 에덴을 비껴서 유배된 카인. 타산에 맞게 적당한 것을 바치면 동등한 애정을 받을 줄 알았었다. 관심과 사랑을 바랐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이 되었고, 나보다 다른 이를 탓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찾으려 했던 카인은 경쟁 사회 안에서 누군가에 대한 애증으로 괴로워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2012년 9월 16일 연중 제24주일 인천주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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